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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파는 바리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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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토마토🧩
15화무료 15화

자유 연재 | 글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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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이 넘은 시각. 도시의 모든 불빛이 잠들고, 후미진 골목의 어둠이 가장 짙어지는 시간. 누군가는 길을 잃고, 누군가는 과거에 갇히고, 또 누군가는 간절히 어젯밤을 후회하는 그 시간. 골목 가장 깊숙한 곳. ‘시간의 틈’이라 불리는 낡은 네온간판이 아주 희미하게 빛난다. 이곳의 주인은 손님이 원하는 커피를 내린다. 아주 쓰거나 아주 달콤하거나, 혹은 아주 신비로운 커피를. “이 커피는 과거의 시간을 보여주는 것만 가능합니다.” “바꾸는 거나 돌아가는 건 하지 않습니다.” 차가운 눈빛의 바리스타, 한도국. 그는 오늘도 커피를 팔아 자신만의 평화로운 밤을 늘린다. 하지만 그가 도망친 어둠은 그의 시간마저 집어삼키기 위해 다가오고 있다. ... 간절히 돌아보고 싶은 순간이 있는 이들에게만, 오늘 밤 이 카페의 불빛이 보인다.

공모전 참여작#현대판타지#로맨스#먼치킨#능력남#능력녀

 자정이 넘은 시각, 도시의 불빛이 닿지 않는 후미진 골목. 세찬 빗줄기가 아스팔트를 때리는 소리만이 가득한 어두운 골목.


 ‘시간의 틈’이라는 낡은 네온간판만이 희미하게 빛을 깜박였다. 


 딸랑-.


 메마른 풍경 소리와 함께 카페 문이 열리자, 안쪽에 있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차가운 밤공기와 함께 흠뻑 젖은 여자가 들어섰다. 젖은 우산에서 떨어진 빗물이 현관 바닥을 적셨지만, 그녀는 그것을 추스를 경황조차 없어 보였다.


 “어서 오세요.”


 안쪽 바 테이블에 있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남자의 이름은 한도국. 심야 카페의 주인이자 유일한 바리스타이다. 피곤에 젖은 일상, 깊게 파인 아이홀과 짙은 눈썹 아래로 손님을 향한 따뜻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린넨 행주로 방금 닦은 유리잔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낮은 재즈 선율과 짙은 원두 향이 공기 중에 배어 있었다.


 “오늘은 좀, 많이 쓴 커피를 마셔야 겠어요.”


 바 테이블에 흘러내리듯 기댄 손님은 이하진이다. 취업 준비의 현실에 무너져 어둠 속을 걷던 그녀가 우연히 이 카페를 발견한 뒤, 벌써 세 번째 방문이었다. 도국은 그녀의 눈웃음이 유독 인상깊어 이름을 기억했는데, 오늘따라 보이지 않는다.


 도국은 말없이 끄덕였다. 카페 손님에게 깊이 관여하지 않는 것이 그의 원칙이다. 그는 타인의 상처에 깊이 공감하는, 과묵한 관찰자다.


 원두가 갈리는 소리가 고요한 카페를 채웠다. 이윽고 진한 향기와 함께 커피 한 잔이 그녀 앞에 놓였다.


 “오늘의 커피입니다.”


 이하진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잔을 바라보았다. 

 이 카페의 커피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다. 마시는 사람을 원하는 시간으로 잠시 보내주는 힘.


 한도국이 나지막이 덧붙인다.


 “되돌림 아메리카노입니다. 너무 쓰지만은 않게 과일 시럽으로 포인트를 주었습니다.”


 하진은 익숙한 듯 웃었다.


 “여긴 올 때마다 거짓말 같아요. 되돌린다니.”


 “잠을 못자는 사람들에겐 진지한 농담이 도움이 되죠.” 


 도국이 냅킨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오늘은 특별히 원하시는 시간이 있나요?”


 하진은 기다렸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뭐 맨날 똑같죠. 면접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오늘 면접도 망한 것 같거든요.”


 “그래요. 좋습니다.”


 도국은 다시 커피잔을 닦기 시작했다. 잔에 은은한 조명이 비쳐 광택이 났다.


 “하지만 늘 말씀드리지만, 이 커피는 과거의 시간을 보여주는 것만 가능합니다. 바꾸는 거나 돌아가는 건 하지 않아요.”


 “... 알아요.”


 하진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한, 익숙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도국은 매일 해준 말이지만 또 다른 말을 덧붙인다.


 “한 장면만 볼 수 있습니다. 소리 없이, 손도 닿지 않고. 대신 돌아오면, 조금 더 분명해질 거에요.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하진은 깊은 생각에 빠진 듯한 표정이다. 벌써 세 번째 방문하여 커피를 마셨지만, 좀처럼 분명해지지 않는 삶에 지쳐가고 있다.


 “대가가 뭐였죠?”


 “손님에게 가는 대가는 없습니다.” 도국이 희미하게 웃었다.


 “대신, 제 밤이 좀 더 깁니다.”


 그녀가 의아한 얼굴을 하자, 도국이 덧붙였다. “손님께 드릴 안내는 하나뿐입니다. 관찰만 됩니다. 결정은 돌아와서 하세요.”


 여자는 숨을 들이켰다. 


 “... 괜찮아요.”


 생각이 많아보이는 그녀는 조용히 커피잔을 내려다봤다. 따뜻한 연기가 피어오른다. 천천히 커피향으로 그녀의 눈앞이 물든다. 조용이 커피잔을 들어올려 한 모금 마신다. 


 혀끝에 감도는 쌉싸름한 산미와 달콤한 과일 향. 그것이 목구멍을 넘어가는 순간, 그녀의 눈앞이 물 속처럼 흐려졌다.


 여자의 눈동자가 멈췄다. 그리고 어딘가 멀어진 듯이 멀뚱히 앉아있다.



*



 어딘가에서 떨어지던 느낌을 받은 그녀. 어느 순간 눈을 다시 떴다.


 그녀는 그 순간에 서 있었다. 

 정장을 입고 긴장한 채 대기석에 앉아있다. 냉랭한 형광등 불빛 아래의 면접 대기실.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에 수 십명의 ‘이하진 들이 앉아있는 듯했다. 모두가 같은 검은 정장에, 같은 불안한 표정이었다.


 중얼거리며 각자의 면접을 연습하는 사람들 틈. 하진은 유독 긴장했다. 연습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올해만 10번 째 면접이지만, 볼 때마다 긴장한다. 아무 말도 못하고 뛰쳐나온 면접도 있었다. 


 하진은 긴장에 떨고 있는 자신을 본다. 하진의 시선이 바닥에 고정되어 있다. 신발 코 끝으로 바닥을 계속해서 찌른다. 불안한 듯이 손금을 긁고, 호흡이 빨라진다. 도망치기 직전의 신호였다. 늘 그랬다. 


 누군가의 이름이 불리고, 문이 열리고 닫힌다.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손도 닿지 않는다. 그저 본다. 떨어질까 무서운 게 아니라 또 일어나기 전에 포기할 내가 더 무서웠다. 하진은 아무 것도 만질 수 없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저, 끝까지 본다. 자신의 어깨가 살짝 흔들리고, 시선이 비상구 쪽으로 반 걸음 향하는 그 찰나까지. 그리고 안다. 문제는 결과가 아니었다. 항상 먼저 도망치는 습관이었다.


 그 순간 비상구 표지의 초록빛이 깜박이며 눈 앞이 깜깜해진다.


 어딘가로 떨어진다. 어딘가로 끝없이 떨어지는 감각.



*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순간 하진의 눈동자가 멈췄다. 숨은 이어지지만 표정은 비워져있다. 도국은 이 정지를 수없이 봐왔다. 사람들이 과거를 보러 떠날 때 몸은 이곳에 남고 영혼만이 떠난다. 그는 매번 맥박과 호흡을 눈으로 확인한다. 그리고는 건드리지 않는다. 과거를 보러 간 이들에게 지금을 흔드는 것은 금지다. 오로지 자신의 과거를 느끼고 오게 하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사람들은 대개 과거에서 정답을 훔치러 간다. 하지만 돌아올 때 들고 오는 건 정답이 아니라 책임에 가깝다. 아니, 어쩌면 그 어떤 것도 가져오지 못할 수도 있다. 


 그의 밤은 또 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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