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에 모든 걸 잃고 회귀 후 왕자인 나는 더욱 철저한 왕정주의자가 되었다.
“이제 와서 네 목에 그다지 큰 가치는 없어.”
철창 너머에 선 남자가 말했다.
“그래도 뭐... 꼴에 왕자전하시니 여기서 죽어줘야지.”
라파엘 코르방, 나를 잡은 혁명군의 간부였다.
7년.
노르가르트에서 에스텔리아, 그곳에서 또 벨카리아로.
거기서도 쫓겨나 마지막에는 세르니아의 뒷골목까지 숨어들었다.
그 긴 세월 동안 나를 쫓던 혁명의 사냥개로 불린 이 사내가 결국 내 목줄을 잡아챈것이다.
코르방은 철창에 등을 기대며 담배를 한 모금 빨았다.
“세드릭 바르셀 총재께서 왕족은 씨를 말리라 하셨거든.”
“…….”
“네놈이 반란을 준비했든, 외국군을 끌어들였든, 아니면 평생 술이나 퍼마셨든 상관없어.”
희뿌연 연기가 감옥 안으로 흘러들었다.
“아르디에.”
그가 내 성을 유난히 길게 발음했다.
“그거 하나면 충분하니까.”
나는 그말에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두 손에는 쩔그럭거리는 굵은 쇠사슬이 채워져 있었다.
손등은 말라붙은 피로 검붉었다. 굳이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 꼴이 어떤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수염은 제멋대로 자랐고, 볼은 움푹 파였으며, 손목에는 뼈가 도드라졌다.
한때 왕자였던 인간이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을 몰골이었다.
실제로 이제 나는 왕자도 아니었다.
왕국은 완전히 패망했고, 왕좌도 연기처럼 사라졌다.
마찬가지로 이와 함께 아르디에 왕가 역시 거의 사라졌다.
남은 건 고작—
‘처형해야 할 왕족.’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도 나는 다른 것부터 물었다.
“셀린은?”
코르방의 눈썹이 당혹스레 꿈틀거렸다.
“뭐?”
“셀린.”
목소리가 생각보다 턱 걸린것마냥 긁히며 잘 나오지 않았다.
목 안쪽이 말라붙은 것 같았다.
나는 한 번 침을 삼켰다.
“셀린 베르네는 어떻게 됐지?”
그 이름을 입 밖으로 내놓는 것조차 얼마 만인지 몰랐다.
나는 외국을 떠돌았다.
그동안 레비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신문 조각과 소문으로만 접했다.
셀린이 총재가 되었다는 것도.
반대파를 대대적으로 숙청했다는 것도.
급진적인 개혁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도.
그리고—
결국 실각했다는 것도.
거기까지였다.
체포에 이어 그녀가 투옥된 이후의 소식은 완전히 끊겼다.
세르니아에서는 레비엔 신정부의 신문을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살아남는 데 급급했다.
그래서 혹시나 했다.
아직 감옥 어딘가에 갇혀 있지는 않을까.
망명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코르방이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태우며 물끄러미 그런 나를 내려다봤다.
그러더니 슬쩍 낮게 웃었다.
“아.”
그 비웃음이 소름끼치게 싫었다.
“아직도 몰랐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코르방은 담배를 바닥에 뱉고 꽁초를 구두 끝으로 짓이겼다.
“죽었어.”
“…….”
“한참 전에 말이야. 모가지가 매달려서 말이지.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코르방이 끌끌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 뭐, 교수형으로 굳이 끝낸거 보면 보여주기식이라는게 참 중요하단 말이지? 네가 세르니아 어느 하수구에 숨어 있었을 때였나?”
철창 안쪽으로 한 걸음 들어왔다.
“대단한 여자였어.”
말과 달리 목소리에는 경멸밖에 없었다.
“왕정을 없애겠다면서 제 정적들은 모조리 잡아 처넣고, 신문사는 폐쇄시키고, 군대까지 자기 손에 쥐었지.”
코르방은 내 앞에 쪼그려 앉아 말했다.
“그러고도 자기는 왕이 아니라고 했으니 웃기잖아?”
“…….”
“결국 똑같았어.”
그의 입꼬리가 경멸하듯 비틀렸다.
“왕관 대신 총재라는 이름을 썼을 뿐이지.”
그 말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코르방은 그녀에 대한 험담을 서슴치 않았다.
“그년도 결국 아르디에였다는 거다.”
그리고.
“퉤.”
칵 뱉어낸 뜨거운 침이 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피는 못 속여.”
나는 차마 움직이지 못했다.
분노할 힘도 없이 그저 멍하니 바닥을 바라볼 뿐.
셀린이 죽었다. 이미 오래전에.
그 사실이 이상하리만큼 현실감이 없었다.
내 기억 속 셀린은 언제나 꼿꼿했다.
어린 시절과 혁명 직전에도.
모두가 왕궁에서 춤을 추고 있을 때 혼자 신문을 읽고 있던 여자였다.
나보다 다섯 살 많았던 사촌 누나.
내가 한 번도 제대로 마음을 전하지 못했던 여자.
그리고 훗날—
왕정을 끝장낸 여자.
그 사실을 상기하자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왜 웃지?”
코르방이 의아한듯 내게 물었다.
“니들이 하도 우스워서 말이지.”
“뭐가 말이지?”
나는 벽에 등을 기댄채 힘을 빼고, 그대로 주저앉듯 몸을 맡겼다.
“네가 한 말 말이야 멍청아.”
“…….”
“셀린이 왕이 되고 싶어 했다고?”
목구멍에서 바람 빠지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 여자가?”
우습다. 정말 우스웠다.
“셀린은 왕관 따위에 집착하지 않았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왕궁을 싫어했다.
귀족들의 예법을 우습게 여겼고, 아르디에라는 성을 자랑스럽게 여기기는커녕 혁명이 일어난 뒤에는 제 손으로 버렸다.
그런 여자가 왕이 되고 싶어 했다고?
“너희가 셀린을 죽인 이유는 그게 아니야.”
코르방의 눈빛이 이내 차갑게 식었지만,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너희들은 그저 겁났던 거지.”
“입 조심해라.”
“대가리 위에 누가 있는 게 싫었으니까.”
왕이든, 총재든, 귀족이든.
아니면 혁명가든.
그들에게 그건 딱히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자기 머리 위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을 참지 못했을 뿐.
“셀린은 다름아닌 너희 편이었어.”
그녀는 끝까지 공화주의자였다.
나 같은 왕족과는 절대로 함께할 수 없을 만큼.
“그런데 니들 손으로 결국 죽였단 말이지.”
왕족의 피가 조금 섞였다는 이유로.
아니.
어쩌면 그것조차 핑계였겠지.
권력을 가진 자를 끌어내리고 자신이 그 자리에 앉기 위해서.
나는 눈을 살짝 감은채 한탄했다.
“어리석군.”
“뭐?”
“참으로…… 어리석어.”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나 자신도 몰랐다.
저들인가, 셀린인가.
아니면—
나를 포함한 우리인가.
아르디에를 비롯한 왕족가와 귀족들.
레비엔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수백 년 동안 쥐고 있던 인간들.
혁명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다름아닌 바로 우리가 만들었다.
군량을 빼돌린 귀족과 흉년에도 세금을 올린 영주.
국고가 비었는데도 무도회를 열던 왕궁.
평민의 자식에게는 장교가 될 기회조차 주지 않던 군부.
그 모두가 바로 우리의 원죄였다.
그런 나라가 영원할 리 없었다.
그것을 그때의 나는 몰랐다.
아니.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왕자였으니까.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이 있었고.
추우면 장작을 더 넣으면 됐다.
총을 잘 쏘면 귀족들이 박수를 쳤다.
나는 내 재능으로 사슴이나 죽이며 살았다.
나라가 곪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그러다 모든 것이 터졌다.
왕정이 무너지고 성난 민중들에게 왕족과 귀족들이 대부분 몰살당했다.
민중은 이에 열렬히 환호했다. 혁명이라는 미명하에 벌어진 대학살은 그렇게 모두가 만족하는듯 했다.
그리고—
그다음은?
나는 눈을 떴다.
“그래서 지금은?”
코르방이 미간을 찌푸렸다.
“뭐?”
“셀린을 죽였으면 나라가 좀 나아졌나?”
“…….”
“그 여자가 추진하던 토지개혁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장교 선발제 개편은?”
“ 그입 닥쳐라.”
“귀족 재산을 몰수해서 만든 지방학교는?”
코르방의 표정이 굳었다.
나는 웃었다.
그것만으로도 답은 충분했다.
없어졌겠지. 바로 셀린이 만든 것이니까.
새로운 권력자는 이전 권력자의 흔적부터 지우는 법이다.
“결국 다 폐기했군.”
“그건 정치적인—”
“그리고 전쟁은?”
이번에는 코르방이 입을 다물었다.
이미 다 알고 있었다.
끌려오는 길에도 보았다.
불탄 마을과. 절뚝거리며 수도로 향하던 부상병.
성벽 위에 새로 설치된 대포.
레비엔은 이미 외세와 전쟁 중이었다.
노르가르트,벨카리아, 그리고 국경 너머의 다른 군주국들.
혁명이 자신들의 나라로 번질까 두려워한 왕들은 군대를 움직였다.
레비엔 내부에서도 권력을 차지하려는 인간들이 서로를 죽이고 있었다.
“왕이 없어지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나?”
코르방의 얼굴은 이미 처참히 일그러졌다.
“왕족 주제에 잘난듯 설교하지 마라.”
“설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죄인이야.”
오히려 그래서 더 잘 보였다.
우리는 실패했고 그 대가로 왕정은 사라졌다.
그리고 저들 역시—
결국 같은 길을 걷고 있었다.
“권력을 잡는 데만 미쳐 있잖아.”
“입 닥쳐!”
쾅!
코르방이 철창을 걷어차자 쇳소리가 감옥 안에 울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곧 단두대에 내 목이 날아갈 테니까.
2026.09.16 12:12
2026.09.16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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