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업주부 강민아는 연애 9년, 결혼 10년, 도합 19년을 자신의 곁에 있던 남편이 웹소설 남주보다 더 남주 같다는 걸 깨달았다. 어제까지 남편이었던 사람이 왜 내 최애가 되는 거죠? 문제는 내가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남편을 소설로 써버렸다는 것. 더 큰 문제는 그 소설이 플랫폼 연재가 돼버렸다는 것 그리고 제일 큰 문제는... 남편 회사 직원이 내 독자라는 것이다. 독자들은 남편을 ‘그분’이라 부르고, 민아는 데뷔 첫날, 실수로 새 장르를 탄생시키는데... 이미 결혼했습니다. 아이도 둘입니다. 피폐는 텍스트로만. 세상 안전한 내 남자, 송현우. 북부대공은 성을 주고. 재벌남은 블랙카드를 주고. 송현우는 아이들을 씻긴다. 집게 들고 고기 굽는 남편이 왜 남주가 되는 거죠? 세상에 없던 현우물의 탄생이 지금 시작됩니다. ※ 본 작품은 창작된 웹소설입니다. 작품 속 등장인물과 설정은 특정 실존 인물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 아니며, 실제 인물·단체·사건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1화. 손목만 귀하겠니?
“아, 진짜 송현우. 뭐냐고?”
“현생에서 이게 말이 돼?”
지난 며칠, 민아의 인생에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그것도 남편 송현우 때문에.
연신 감탄사를 내뱉던 민아가 재빨리 휴대전화에서 AI 앱을 켰다. 상담이 필요했지만 지인들에게는 절대로 말할 수 없었다.
[민아: 있잖아. 내가 웹소설을 쓴다면 이런 남주 어때?]
민아는 남편 송현우의 특징을 하나씩 적어 내려갔다.
· 키 180cm, 눈웃음이 매력적.
· 배는 조금 나왔지만 코트 입으면 티 안 남.
· 첫사랑과 결혼함. 연애 9년 + 결혼 10년.
· 대기업 팀장, 특진 경험 있는 핵심인재. 재테크로 외벌이를 맞벌이급으로 만듦.
· 주말이면 혼자 애 둘 데리고 나가고 아내 없이 1박 2일로 주 양육자 역할 가능.
· 자기 관리로 새벽 네 시 기상. 『코스모스』 읽고, 다섯 시에 운동함.
‘내가 이걸 왜 이렇게 진지하게 쓰고 있지?’
잠시 후 AI의 답변이 돌아왔다.
[AI: 민아야. 그거 남주 ‘어때?’가 아니라 남주 ‘이미 확정’이야.]
“뭐야, 송현우. 너 진짜 남주였냐고.”
민아는 화면을 한참 내려다보다 다시 키보드를 두드렸다.
[민아: 그럼 지난 몇 주간 나한테 일어난 일인데 한번 보고 송현우가 진짜 남주인지 판단해줘. 그러니까 3주 전, 작년 크리스마스였어.]
민아는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시작된 순간을 떠올리며 쉴 새 없이 타이핑을 치기 시작했다.
***
크리스마스 날 아침이었다.
아직 침대에 누워 있는 민아를 향해 현우와 아이들이 인사를 건넸다.
“민아야, 애들 데리고 놀고 올게. 저녁 먹을 때까진 안 들어올 테니까 푹 쉬고 있어.”
“엄마, 다녀오겠습니다.”
“엄마, 사랑해. 이따 보자. 푹 쉬어.”
현관문이 닫히자 집 안이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또 무리하네.”
휴일에 쉬어야 하는 사람은 민아가 아니라 몇 주 전에 팀장이 된 현우였다. 현우가 바쁠수록 민아가 감당해야 할 몫은 많아졌다. 켜켜이 쌓이는 서운함을 풀어낼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그래도 오늘 같은 날은 혼자 있기 싫었는데...
민아가 힘들어 보이는 날이면 현우는 이렇게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다.
그럴 때마다 민아는 고맙다는 생각보다 먼저 죄책감을 느꼈다.
“청소라도 해야겠다.”
민아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지만 아이들이 놀다 남긴 장난감이 가득한 거실을 보자 금세 답답해졌다.
결국 그대로 거실을 지나 현우의 서재로 들어갔다. 집에서 유일하게 아이들의 흔적이 닿지 않은 방이었다.
모니터 화면을 멍하니 보다가 고개를 돌리자 노트북 거치대 앞에 꽂힌 키보드가 눈에 들어왔다. 현우가 타건감이 제일 좋은 제품이라며 선물해주었던 블루투스 키보드가 벌써 몇 달째 주인을 잃은 채 방치되어 있었다.
잠깐만 써 볼까.
민아는 가벼운 마음으로 키보드를 꺼냈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적은 한순간도 없었다. 그럼에도 글을 몇 번 써봤던 건 퇴사를 결심한 날 건넸던 현우의 말 때문이었다.
[민아야. 우리 인생을 길게 보면, 네 연봉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거 포기하기 쉽진 않지. 그래도 지금은 내가 시간을 벌게. 대신 다음 먹거리는 네가 찾아줘.]
마음을 편히 가지라고 건넨 그 말은 오히려 민아의 가슴에 오랜 부채감으로 남아 있었다.
“어? 이게 왜 되지?”
4년 전 한 번, 8개월 전 또 한 번 멈췄던 원고가 거짓말처럼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고가 쌓일수록, 이번엔 빚처럼 남아 있던 현우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민아는 키보드를 멈출 수 없었다.
***
그날 저녁, 아이들과 하루 종일 놀고 마트에서 장까지 보고 돌아온 현우는 집을 나설 때와 다를 바 없는 집안 풍경에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이럴 리가 없는데... 강민아, 진짜 아무것도 안 하고 푹 쉬었나 보네.”
현우의 입에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차라리 싸우기라도 해. 외면하고 싶다면 이제 나도 더는 안 해.]
얼마 전, 민아가 보낸 메시지에는 아내가 얼마나 무너져 있는지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그래서 오늘만큼은 민아에게 여유를 주고 싶었다.
외투를 놓기 위해 들어간 서재에 민아가 앉아 있었다. 제법 심각한 표정으로 집중하느라 자신이 들어온 기척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 왔어. 잘 쉬었지? 집 완전 나 나갈 때 그대로던데?”
“아, 왔어? 애들 보느라 힘들었지? 나 하나도 안 쉬고 글 썼어. 청소 못 해서 미안해. 얼른 가서 할게.”
민아는 허투루 시간을 보내지 않은 자신을 칭찬해 달라는 듯 말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현우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오늘 왜 그렇게 애를 썼는데.’
“쉬라고 나갔더니 이딴 글이나 쓰고 있고.”
순식간에 민아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현우는 황급히 말을 멈추고, 곧바로 사과를 건넸다.
“미안.”
“내가 뭐 때문에 글 쓰는데?”
“그만하자. 내가 말실수했어. 미안. 좀 쉬어.”
현우가 조용히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자 민아의 울음소리가 커졌다.
민아는 글을 쓰는 게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현우에게 전하고 싶었지만 현우는 그의 방식대로 아이들을 씻기고, 마트에서 사온 간편식으로 아이들의 저녁을 챙겨 먹였다.
[민아: 그렇게 3주의 시간이 흘렀어.]
[AI: 그래서 남편이 어쩌다 남주가 된 건데? 계속 말해봐.]
벌써 3주째 베란다엔 빨래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싱크대에는 씻지 못한 그릇들이 쌓여 있었다.
민아는 오늘도 식탁에 앉아 원고를 쓰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이후 강행하고 있는 고속 집필에 손목이 욱신거렸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멈추는 순간, 영영 현우와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것만 같아서.
2026.10.10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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