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 기다림 끝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날, 윤슬아는 남편 이지훈과 14년 지기 절친 이민아의 불륜을 목격한다. 심지어 두 사람은 부모의 재혼으로 가족이 된 의붓남매였다. 자신들의 관계를 ‘이루어질 수 없었던 운명적인 사랑’이라 합리화하는 두 사람과 맞서던 슬아는 결국 죽음을 맞지만, 눈을 뜬 순간 결혼 전인 7년 전으로 돌아와 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함께 회귀한 사람이 하나 더 있다. 이민아의 남자친구, 민지안. 각자의 연인에게 배신당한 두 사람은 같은 목표를 위해 손을 잡는다. “지안 씨, 우리 회귀도 한 김에 맞바람 어때요?” 복수를 위해 시작한 가짜 맞바람. 하지만 과거를 하나씩 되짚을수록 슬아는 자신이 지훈과 민아에게 능력과 평판, 인간관계까지 빼앗기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지안 역시 자신이 오랫동안 기다렸던 어린 시절 첫사랑의 진짜 정체가 슬아였음을 알아간다. 빼앗긴 자신의 삶을 되찾으려는 여자와, 그 여자를 다시 사랑하게 된 남자. 불륜으로 시작된 복수 끝에서, 두 사람은 과연 이번 생의 사랑만큼은 자신의 선택으로 완성할 수 있을까?
1화. 이딴 게, 고결한 사랑이라고?
‘지금 내가 뭘 들은 거지?’ 슬아는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멍한 기분이 온몸을 감싸는 듯했다. 분명 눈앞의 의사는 늘 자신이 더 착잡하다는 표정으로 좋지 않은 소식만 전하던 사람이었다. 이번에도 임신이 되지 않았다면 정말 다 포기하겠다는 결심까지 하고 온 터였다. 그런데 오늘은 처음으로, 그와 정반대되는 한마디가 슬아의 가슴을 울렁이게 만들었다.
“정말이죠? 선생님, 진짜…… 진짜로 여기에 아가가…….”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 만큼 머리가 뺑뺑 도는 기분이 들었다. 너무 행복하면 눈물이 날 수 있다는 말이 이런 걸까? 지금 심정을 표현하고 싶은 말은 수도 없이 많은데 입이 그걸 따라주지 못했고, 대신 작은 물방울만 쉴 새 없이 뺨을 타고 떨어졌다.
그렇게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진단을 받고 나오는 길은 마치 동화 속을 걷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 발 한 발 걸을 때마다 구름으로 만든 융단길을 걷는 기분이었다. 얼른 이 행복을 자신과 함께 아이를 고대하던 남편에게 말해주고 싶다는 마음에 뛰려다가도, 그마저 조심스러워 자신의 행동 하나, 손짓 하나까지 신경 쓰며 휴대전화를 들어 전화를 걸려다 멈칫했다.
“지훈 씨에게 얼른 말을……! 아, 아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이 행복을 나누고 싶었지만, 그보다 더 크게 놀라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지훈 씨에게도 자신이 지금 느끼는 것만큼 벅찬 기쁨을 안겨주고 싶었다. 그리고 민아에게도. 지훈의 여동생이자 자신의 아가씨, 동시에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절친이자 세상 모든 사람이 등을 돌려도 끝까지 자신의 편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러다 문득 눈에 들어온 아기용품 가게에서 조그마한 신발 한 켤레까지 사 예쁘게 포장된 상자에 혹시라도 흠집이 날까 조심스레 품에 꼭 끌어안았다. ‘얼마나 놀랄까? 너무 놀라서 넘어지는 거 아니야?’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나와 슬아는 히죽거리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슬아는 그 발걸음 끝에 절망만 남아 있을 줄은 모르고, 그저 행복에 겨워 열심히 달려갔다. 놀랄 소식을 전할 사람이 자신뿐이 아니라는 것을. 그 소식을 전하게 될 사람이 자신 외에 또 있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
현관문을 열자 익숙한 구두 한 켤레가 보였다. 앞코가 뾰족하고 굽이 아찔할 만큼 높아, 살짝이라도 발을 헛디디면 금방이라도 크게 다칠 것 같은 위험하고도 고혹적인 하이힐.
“어? 민아도 왔나 보네. 아휴, 이런 구두 위험하다고 자주 신지 말라고 했었는데 민아도 참―. 여보, 민아……?”
마침 부르려고 했던 민아까지 타이밍 좋게 집에 와 있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뭔가 묘하게 집 안의 분위기가 다른 느낌이 들었다. 마치 지금 이곳에 오면 안 되는 불청객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게 여자의 촉이라는 걸까.
슬아는 곧장 목소리를 낮추고 현관문을 살며시 닫았다. ‘도둑이라도 든 걸까?’ 위험한 사람이라도 들어온 것일까. 온갖 생각에 침 삼키는 것조차 조심스러워 주위를 살폈지만, 어느 곳에서도 사람의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두, 두 사람은 어디 간 거지? 신발도 있는데……?’
혹여나 무슨 위험한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닌가 걱정되는 마음에 마지막으로 가보지 않은 안방으로 향하던 순간, 슬아는 두 눈을 의심했다.
“오빠, 나 요즘 슬아한테 미안한 마음이 생겨……. 우리가 너무 못할 짓 하는 건가?”
교태가 묻어나는 간드러진 목소리가 안방 안쪽에서 흘러나왔다. ‘하하, 이런 미친.’ 욱하는 마음에 욕이 터져 나올 것 같아 억지로 입을 틀어막았다. 정녕 지금 내가 보는 게 현실이 맞는 걸까? 침대 위에서 누가 봐도 방금 전까지 관계를 가진 듯한 나체로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둘을 본 슬아는 이마의 실핏줄이 터지는 줄 알았다.
“민아야, 그런 생각 하지 마. 서로 사랑하는데도 이깟 사회 때문에 이어지지도 못하는 우리가 더 안타까운 거지. 슬아 걔는 그래도 자기가 좋아하는 나랑 결혼한 것만으로도 복에 겨운 거고.”
“하긴, 그건 그래. 누가 슬아 같은 애를 데리고 살겠어. 오빠니까 참고 살 수 있는 거긴 해. 역시 너무 착해.”
미친 건가? 지금 자신이 헛소리를 들은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상황을 어떻게 현실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지금 이들이 자신이 오랜 세월 동안 알고 지낸 사람들이 맞는 걸까? 혹시 그들의 거죽을 뒤집어쓴 다른 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머리가 어질어질거렸다.
“오빠, 슬아 집에 언제 들어온대? 나 언제 나가야 해? 아, 솔직히 오빠는 내 건데 왜 내가 나가야 하는 걸까…….”
시무룩해진 채 지훈의 품에 쏙 안겨 머리를 부비는 그녀의 모습에 슬아는 아찔해졌다. 아아, 내가 이런 취급을 받고 살았구나. 저들에게 나는 이딴 존재였구나. 눈엣가시도 못 되는, 그저 거슬리는 거스러미 같은 존재. 그런데 그때, 더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아마 늦게 올 거야. 오늘도 산부인과 갔다고 했으니까. 아마 이따 눈이 퉁퉁 부은 상태로 돌아오겠지, 뭐.”
지훈이 귀찮다는 듯 혀를 찼다. 조금 전 민아를 대할 때와는 정반대였다. 다정함이라고는 조금도 남아 있지 않은 목소리에는 세상 귀찮고 짜증 난다는 기색만 가득 묻어 있었다.
“걘 왜 안 될 걸 계속 붙잡고 있는지 모르겠어. 임신도 못 하는 게 불임이지, 뭐. 걔랑 밤 보내는 것도 나한테는 고역이었어. 지금이야 시험관 시술이라 그럴 일도 없지만, 처음엔 오빠 진짜 힘들었어. 그런데 우리 민아는 바로 임신한 거 보면 역시 신이 우리를 미워하나 봐. 이렇게 완벽한 사랑을 이어지지도 못하게 하다니…….”
지훈의 말에 민아가 꺄르륵 웃음을 터뜨렸고, 지훈 역시 뭐가 그리 좋은지 따라 웃으며 그녀를 더욱 끌어안았다. 두 사람은 슬아의 이야기를 안줏거리라도 삼은 듯 희희낙락거렸다.
‘내가 얼마나 아이를 원했는지 뻔히 옆에서 다 지켜봤으면서. 자신이 울 때마다 곁에서 위로해주던 저들은 그때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두 사람이 나누는 말 하나하나가 현실이라고 믿기 어려웠다.
당장이라도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난리를 치고 싶었다. 그런데 순간 품에 꼭 안고 있던 작은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마음으로 골랐던 아기 신발이 들어 있는 상자였다.
‘아가야…… 엄마 이제 어떡하면 좋지?’
그때, 까톡―. 고요한 집 안에 재앙의 시초를 알리는 알림음이 울렸다.
***
그 뒤부턴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네가… … 아니, 너희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나 한 명 바보 만드니까 재밌어?!”
슬아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목까지 차오른 말들을 하나씩 뱉으려 했다. 언제부터였는지, 자신을 옆에 두고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었는지, 자신이 울며 아이를 기다리는 동안 둘은 무슨 생각으로 위로하는 척했던 건지. 묻고 싶은 건 수도 없이 많았다.
2026.09.27 07:07
2026.09.27 07:06
2026.09.27 07:05
2026.09.27 07:03
2026.09.27 06:58
2026.09.27 06:57
2026.09.27 06:53
2026.09.27 06:52
2026.09.24 16:43
올라온 댓글이 없어요.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뷰컴즈 주식회사
대표 : 김학성 | 전화 : 1811-8389 | 이메일 : help@gling.co.kr
사업자 등록번호 : 492-88-01088 | 통신판매업신고번호 : 2022-서울영등포-1768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당산로 171, 13층 130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