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모종의 이유로 무용을 그만둔 스무 살 하현은 방송국 PD인 삼촌의 부탁을 받고 아이돌 데뷔 프로그램 ‘서바이벌 ID’에 대타로 참가하게 된다. 참가 조건으로 통편집을 걸어 무난하게 탈락할 줄 알았는데, 어째 반응은 격하기만 하다. 인터넷을 발칵 뒤집어놓은 한 장의 프로필 사진으로 데뷔권 등수에 이름을 올려버린 하현은 의지와는 다르게 데뷔에 점점 가까워진다. 긴 고민 끝에 하차를 포기하고 진지하게 임하게 된 하현은 결국 데뷔를 하게 된다. 당연히 순탄치만은 않을 것을 예상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건 하고 싶은데 안 될까요?” 데뷔하자마자 같은 그룹이 된 멤버에게 고백을 받았다.
1부
1화
되로 주고 되로 받는 인간관계가 좋다. 적당한 인사치레와 호감, 애정을 주고 비슷한 수치와 농도로 돌려받는 것은 편한 데다가 상대방에게도 나쁘지 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상호작용을 할 수 없는 사람에게 애정을 쏟는 수고로움 따위는 사치였다.
“오늘 날씨 쌀쌀한데, 다들 잘 챙겨 입고 오셨어요?”
그 쓸데없는 짓을 지금 하고 있다. 춤 연습을 하고 있어야 할 시간에 두 발을 딛고 떳떳이 서 있는 곳은 팬사인회장이었다.
“정훈아! 정훈아아아아악! 태양아! 제이야!”
눈앞에서 실물을 영접하게 된 팬들이 목청이 터져라 비명을 질렀다. 특히 바로 옆자리에 앉은 분은 거대 봉제 인형으로 나를 후려칠 정도로 흥분하신 듯싶었다. 멤버들이 손가락이라도 하나 꼼지락거리면 사방에서 어김없이 비명이 쏟아졌고, 같이 그 분위기에 올라탄 나는 당연한 듯 설렘 가득한 얼굴로 얌전히 줄을 섰다.
이 사인회장에 서 있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을 했더라. 지난날을 떠올리니 생각만으로 피곤이 훅 밀려왔다. 집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앨범 판매점에 캐리어를 끌고 가서 앨범을 뭉텅이로 구매하고 한 장 한 장 정성스럽게 자필로 응모권을 적어 넣었다. 응모권을 적으라고 준비해놓은 책상은 하필 좁아서 뒷사람들 눈치를 얼마나 봤는지 모르겠다. 삼촌을 부를 걸 하는 뒤늦은 후회도 했다.
그 과정에서 대략 3시간이 소요됐고 통장의 돈을 대부분 투자했지만 아쉽지는 않았다. 빡빡한 일상 속에서 가끔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취미 생활이었으니까.
“정훈아, 나 여기 오려고 10kg 빼고 왔어요.”
“에이, 안 빼도 예쁜데요.”
멤버들 입에서 쉴 새 없이 칭찬들이 터졌고 동시에 대포 카메라의 셔터 소리도 터졌다. 천천히 멤버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고 있자니 줄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빨리빨리 내려가세요!”
팬 서비스 정신이 투철하기로 유명한 멤버들 덕분에 줄이 줄어드는 속도는 거북이가 기어가는 것처럼 더뎠다. 뒤쪽에 선 팬들은 애가 타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이곳저곳으로 표출했고 몇몇 팬들은 휴대폰으로 현재 상황을 커뮤니티에 중계하기 바빴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옷 갈아입을 시간도 없이 촉박하게 뛰어온 터라 아직 교복 차림이었다. 혹시 사진이라도 찍혀 학교 SNS 게시판에 올라가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썼던 마스크는 그 누구도 옆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서 슬쩍 내렸다. 하긴 코앞에 있는 멤버들 얼굴 감상하기라는 완벽한 선택지가 있는데 누가 옆 사람한테 관심을 줄까 싶었다.
차례는 금방 찾아왔다. 바로 앞에 있는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으니 잘생긴 얼굴들이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보였다. 사인회는 두 번째였는데 똑바로 눈을 마주치기는 좀 쑥스러웠다. 게다가 오늘의 맨 앞 타자는 팬들과 지긋이 눈을 맞춰주는 거로 유명한 멤버였다.
“안녕하세요, 정훈이 형.”
“오랜만에 오네요. 이번 앨범 어때요?”
“안무가 진짜 좋아요. 하이라이트 부분 단체 군무요.”
“그 부분 좋죠. 근데 고등학생인데 열공 안 해요?”
“열심히 하고 있어요.”
이번 앨범 안무가 정말 좋았다. 특히 멤버들이 한 치의 오차 없이 맞춰서 스텝을 밟는 부분이. 좀 더 길게 말하려다가 그냥 끊었더니 정훈이 형이 손을 한 번 맞잡아줬다. 짧은 악수가 끝나고 천천히 반듯한 새 앨범을 펼쳐 정훈이 형이 있는 페이지를 찾았다.
“뭐라고 써줄까요?”
“이름 써주세요.”
간혹 발음 때문에 이름을 잘못 듣는 사람들이 있어서 교복 조끼에 달린 명찰을 끄집어내 보여주니 정훈이 형이 호탕하게 웃으며 사인을 했다. 멤버들 중 글씨체가 가장 어른스러운 정훈이 형은 사인마저 어른스러웠다. 사인이 완성된 후 옆으로 이동하라는 말에 왼쪽으로 한 걸음 옮겼다.
“어, 또 왔네요! 저 기억해요! 교복 입고 왔네요? 어, 이거 한국예고 교복 아닌가?”
“네? 아, 네.”
“재능 있나 보다. 어떤 거 해요?”
“저 실용무용이요.”
“멋있다, 졸업하면 뭐 할 거예요? 아이돌은 어때요?”
“저는 대학 가려고요.”
“그래, 그래. 파이팅. 합격하면 또 와서 자랑해요?”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손가락을 배배 꼬던 제이 형이 자연스럽게 이름을 묻고 빠르게 사인을 해줬다. 수많은 팬 중의 한 명일 뿐인데 기억해주는 게 신기해서 사인을 이리저리 돌려봤다. 가방에서 겨우겨우 선물을 꺼내두고 다시 옆으로 이동하려는 순간.
“어?”
갑자기 몸이 아래쪽으로 쏠리는 기분이 들었다. 뭐지? 누가 밀었나? 귀가 아플 정도로 시끄럽던 주변 소리가 점점 잦아들고,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아보기도 전에 시야가 까맣게 물들었다.
눈앞이 캄캄해서 손을 마구잡이로 휘젓자마자 놀랍게도 현실적인 고통이 닥쳤다. 딱딱한 무언가와 충돌하자마자 눈이 번쩍 떠졌다. 마주한 것은 바닥이었다.
이 나이 먹고 침대에서 굴러떨어질 줄은 몰랐다, 쪽팔리게. 그것도 사인받고 좋아서 가다가.
“언제 적 꿈을 지금 꾸냐…….”
2024.08.15 13:20
2024.08.15 13:20
2024.08.15 13:20
2024.08.15 13:20
2024.08.15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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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5 13:20
2024.08.15 13:20
초반 부분 리얼해서 웃기네요ㅋㅋㅋ
24.11.12
춤에 열정있는 주인공이 멋지네요...
24.11.12
저 아이돌물 진짜 좋아하는데...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요!!ㅜㅜ
24.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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