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어느날 약혼자가 고백했다. 약혼녀인 보니, 그녀가 아닌 딴 '남자'에게 관심이 있다고. 그것도 하필 얼마전 보니에게 사랑을 고백한 남자에게. "저는 이미 약혼자가 있는데요…." "알아. 하지만 그래봐야 약혼이지. 천천히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 보니." 약혼자가 있다는데도 보니가 좋다는 미하일 레녹스 공작이나, "미안. 유치하게 느껴지겠지만 조금만 도와줘요, 보니. 공작이 여기를 봤거든요." "그럼 지금 볼에 한, 그, 이건..." "네, 그에게 보여주려고요." 그런 남자한테 빠진 제 약혼자나 둘 다 답이 없지만, 제일 답이 없는 건... "네가 웃는 게 좋아." 두 사람 사이에 낀 보니가 약혼자인 유진 제프리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1화
그건 평화로운 어느 오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점심시간에 둘이서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고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며 산책을 하다 일어난 일.
“왜 상관이 없어요?”
보랏빛이 도는 푸른 머리를 귀 뒤로 넘긴 보니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느리게 고개를 돌렸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은발. 세상의 빛을 모두 담은 듯 아름다운 금안이 짙게 가라앉은 채 그녀를 향했다. 유진 제프리는 세계의 사랑을 받는다는 마성의 남자였다. 그리고…….
“당신이, 내 약혼자인데.”
‘내 약혼자지.’
보니는 걷던 것도 멈춘 채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유진의 모습에 잠시 두 눈을 깜박였다. 유진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고, 또 딱딱했다. 적어도 보니가 봐왔던 그 어느 때보다.
보니의 얼굴이 덩달아 당황스러워졌다. 아니, 그 말이 이렇게 진지해질 일인가? 고작 미하일이 제게 식사 초대를 했다는 그 사실이?
‘약혼자에게 고백한 사람이 식사 초대를 한 거니까 그림이 이상하긴 한데… 너랑 나는….’
속으로 말끝을 흐린 보니의 눈동자가 그 날의 기억을 배회했다. 힘들고 고된 시험 끝에 겨우 황궁 공무원으로 배정받아 파티가 열린 그 날, 유진은 뒤뜰에서 제게 고백을 했다.
약혼자가 되어달라고. 평소보다 간절하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미소를 그린 채.
‘부탁해요, 보니. 나는 정말로 당신이 필요해.’
일리어스 제국에서 약혼이란 관계는 제법 가벼운 것에 속했다. 공식적인 서류가 오가는 일이기에 그 정도의 무게는 져야 했지만, 가문의 친분을 보여주기 위해서 사용되기도 했고 관계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했다. 가까운 친척끼리 약혼을 하는 경우도 흔할 만큼.
‘무슨 뜻인지 알겠어. 좋아. 하자, 약혼.’
그래서 보니는 그때 유진의 그 말을 그와 자신을 위한 일종의 정치적 방패막으로 받아들였다. 백 마디 말보다도 효과적으로 사람들의 끝없는 관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런 무언가로. 어찌 되었건 유진 제프리는 이 제국 공작가의 차남이었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인기인이었으니까.
그러니 좋게 쳐 줘봐야 친한 친구 관계 이상도 아닐 텐데, 왜 이렇게…….
“사실은 내가… 관심이 있어요.”
어딘가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울린 목소리에 보니가 화들짝 놀라 상념을 지웠다. 평소답지 않게 멍하게 벌어진 입술이 보니의 감정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지금, 쟤가 뭐라고….
“조금 더 확실하게 말해 줄까요? 나도 관심이 있다고요. 파트너도, 당신이 언젠가 말을 꺼낸 친구도 전부 핑계였어요.”
유진은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보니에게 마음을 토로했다.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었다는 듯이.
유진의 손가락이 뻣뻣하게 굳어버린 보니의 손 사이로 천천히 얽혔다. 집요하게 보니를 바라보던 그의 시선은 이제 보니의 손을 향해있었다.
그의 얼굴이 느리게 다가왔다. 거룩하게 기도를 하듯 손에 고개를 묻은 유진이 앓을 것 같은 목소리로 보니에게 작게 속삭였다.
“…알아요. 왜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나 싶겠죠. 실은 관계를 맺기 전에 말했어야 하는 게 순서였는데, 제가 마음이 급했어요.”
멍해져 있던 보니의 머리가 느리게 회전했다. 그도, 관심이 있다고? 파트너나 친구는 핑계고? 보니는 기억 속에서 자신이 유진에게 했던 수많은 말들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지금 유진이 제게 건넨 말과 딱 부합하는 한 마디를 떠올렸다.
‘정치적으로 엮인 파트너 같은 거 아니야? 난 네가 그래서 미하일 공작님에게 그렇게 차갑게 구는 줄 알았지.’
파트너, 친구, 핑계, 약혼 관계를 맺기 전에 순서상 먼저 말했어야 하는 중요한 문제….
“아.”
보니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잘게 터져 나왔다.
2024.08.15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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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될지 궁금하네요
24.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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