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표지
헤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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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월
74화무료 5화

자유 연재 | 글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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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만 기다려.” 스물 넷. 어리고 이기적이었던 그가 사랑하는 여자를 잃지 않기 위해 둔 최악의 한 수. 예인은 준휘를 기다리지 않았고, 준휘는 그런 예인을 포기할 수 없었다. “정예인.” 그렇게 6년 만에 간신히 다시 찾은 그녀.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사랑을 속삭였던 여자는, 그를 원망하고 또 외면했다. 하지만 준휘는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네가 날 백 번 버려도, 난 그 백 번 모두 다시 네게 돌아갈 거야.” 눈 먼 사랑에 네게서 돌아선 내가, 헤매지 않고 너에게 돌아갈 수 있을까. 우리,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1. 착각

앙상한 나뭇가지 위로 흰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이었다. 예인은 목부터 얼굴까지 칭칭 감았던 목도리를 풀며 자리에 앉았다. 히터로 충분히 데워진 공기가 무색하게도 예인의 코끝은 이미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예인 씨, 좋은 아침.”

“아, 박 과장님.”

편집팀 박 과장이었다. 반갑게 웃는 예인을 보며 박 과장의 눈꼬리가 더욱 휘었다.

“예인 씨 코 엄청 빨개졌네. 오늘 많이 춥죠?”

“네. 날씨가 좀 풀릴 줄 알았는데 어젯밤에 갑자기 눈도 펑펑 내리고.”

“2월이잖아요. 따뜻해지려면 멀었지, 뭐.”

텀블러에 담긴 커피를 홀짝인 박 과장이 사무실을 훑었다.

“우리 김 팀장님은 아직 출근 안 하셨나?”

“아, 네. 오시면 말씀드릴까요?”

“그럼 고맙죠. 김 팀장한테 윤 작가님 표지 관련해서 할 말 있다고 전해 줘요.”

“그럴게요.”

박과장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사무실을 나갔다. 예인은 컴퓨터를 켠 후 책상 이곳저곳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을 확인했다. 지난주 내내 바쁘게 일했는데도 할 일이 태산이었다.

예인은 소설부터 시, 에세이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펴내는 종합 출판사, ‘도서 출판 다원’의 북 디자이너였다.

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던 때부터 책 표지 디자인에 유독 관심이 많았을뿐더러, 각종 공모전에서 상을 휩쓸며 두각을 드러내기도 한 것이다. 그간 타 출판사에서 일을 하던 예인은 다원의 스카우트 제안을 받고 1년 전 출판사를 옮기게 되었다.

“예인 씨 일찍 출근했네?”

오전에 해야 할 일부터 체크하던 예인이 고개를 들었다.

“오셨어요.”

도서출판 다원의 8년 차 북 디자이너이자 디자인팀 팀장, 현정이었다.

“어제 눈이 왔더니 길이 미끄러워서 그런가, 차들이 다 기어가는 거 있지. 차 끌고 나왔으면 지각할 뻔했어.”

“저도 오늘 도로 나오자마자 후회했어요.”

“이런 날씨에 차 가지고 왔어? 아침부터 고생했겠네.”

“그래도 이젠 버스보다 차로 오는 게 더 편하더라고요. 아, 박 과장님 오셨었어요. 윤 작가님 표지 관련해서 상의할 게 있다고…….”

“그 에세이 표지 때문인가 보다. 시안 넘겼을 때 영 마음에 안 드는 눈치더니.”

현정이 혀를 쯧쯧 차는 동안 다른 직원들이 하나둘씩 출근하기 시작했다. 정각이 되기 전 어수선한 책상까지 정리한 예인은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분주한 금요일 오전이었다.

***

예인은 건조한 눈을 깜빡이며 탕비실 안으로 들어섰다. 각종 음료와 커피는 물론, 간식까지 구비되어 있는 탕비실은 도서 출판 다원의 자랑이었다. 커피 머신을 이용해 능숙하게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만들어 낸 예인이 물끄러미 컵을 바라보았다. 샷 추가를 할까, 고민하는 찰나였다.

“정예인 씨.”

낮은 목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탕비실 문이 열리는 줄도 몰랐던 예인은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국내 문학을 담당하는 편집부 팀장, 유진우였다.

“조심.”

뜨거운 커피가 머그컵 안에서 찰랑거리자 진우가 짧게 경고했다. 예인은 커피를 잠시 테이블에 내려 두며 진우가 커피 머신을 작동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녀의 시선을 느낀 건지, 진우가 흘깃 돌아보았다.

“뭐 필요한 거라도…….”

“아. 샷 추가하려고요.”

“오전에도 마시는 것 같던데, 커피 너무 많이 마셔도 몸에 안 좋아요.”

이미 두 잔의 커피를 마신 예인은 뜨끔한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진우는 피식 웃으며 예인의 컵에 자신이 뽑은 에스프레소를 부어 주었다.

“감사합니다.”

“비밀의 밤 표지 시안, 다들 반응이 좋아요.”

“다행이네요.”

밝게 웃는 예인을 보며 진우가 희미한 미소를 그렸다.

“녹색이 들어갈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제목이 주는 느낌 때문인지, 편집자나 마케터는 남색이나 회색과 같은 어두운 색상이 배경으로 된 깔끔한 표지가 나오기를 바랐다.

그러나 예인이 만들어 낸 표지는 남색과 녹색이 들어간 그러데이션 배경이었다.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보이는 달이 포인트로 들어갔고, 제목은 흰 색상에 명조체를 사용하여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표지를 만들어 냈다. 예상을 깬 시안이었지만, 모두가 아무 이견도 없이 표지를 받아들였다.

“원고 읽어 봤는데, 한없이 어두우면서 묘하게 희망적인 부분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저 어두운 색상으로 뽑아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고요.”

진우의 눈빛에 흥미가 돌았다.

“어디가 그렇게 희망적이었습니까?”

“편지를 읽는 부분이요.”

고개를 살짝 기울이는 진우는 어쩐지 미소를 감추는 듯한 표정이었다.

“남자 주인공인 승주는 외면이 습관인 아이였잖아요. 어렵게 얻어 온 자전거를 부수는 그 순간부터 할아버지까지 외면하기 시작한 승주가,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를 읽었어요. 그리고 울었고요.”

외면이 습관이고, 감추는 데 익숙한 자가 흘리는 눈물.

예인은 그 눈물이 ‘드러내는 행위’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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