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황명을 받아 영수를 사냥하는 신기영 참룡반의 반주 항몽. 신수(神獸) 기린을 상대하던 중, 동료의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아 정신을 잃는다. 눈을 뜨고 보니 25년 전 곤륜산. 뭐야? 진짜 돌아온 거야? 조상님들이 공덕을 하늘 끝까지 쌓으셨나. 이 정도로 운이 좋아도 되는 거야? 이렇게 된 이상, 회귀 전에는 꿈도 못 꾼 영물을 모조리 손에 넣어주마.
1. 회귀 (1)
“으허헉! 안 돼! 안 돼!”
항몽은 팔을 마구 휘저으며 몸을 일으켰다.
식은땀을 잔뜩 흘려 머리칼이 젖어 이마에 달라붙었고, 등이 축축했다.
“이런 씨이팔….”
걸쭉한 욕을 한마디 뱉은 후, 오른손으로 배를 더듬거렸다.
흉기가 등 뒤에서 찔러 들어와 복부를 꿰뚫었다.
요요한 빛을 내는 날붙이가 한 자 길이로 배 앞에 튀어나온 걸 똑똑히 봤다.
아니, 봤다고 생각했다.
“…응? 없어?”
그런데 옷 속으로 손을 더듬어 보니 배에 상처가 없었다. 매끄럽고 보들보들했다.
완전히 아물지 못했거나, 아물었다고 해도 흉터가 남아야 했다.
그 정도로 큰 부상이었지만, 상처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니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애초에 내가 대체 어떻게 살아 있는 거야?”
등을 찌르고 배로 튀어나오는 동안, 날붙이는 복부를 한 바퀴 휘저었다.
항몽은 찔렸을 때의 극심한 고통이 떠올라 눈살을 찌푸렸다.
“입에서 피가 흘렀고, 몸이 뜨거웠지. 거기에 뒤에서 또 한 번 찔러 들어왔고. 나는 치명상 두 방에 죽어가고 있었어.”
깜깜한 방에 불이 밝혀지듯, 항몽의 기억이 하나씩 돌아왔다.
“그래. 신수(神獸) 기린(麒麟)을 추적해 사냥하고 있었지. 거의 다 몰아붙여서 요리가 막바지에 이르렀는데, 어떤 자식이 등 뒤에서 쑤신 거야.”
항몽의 기억은 가까운 곳에서 먼 곳으로 차츰 뻗어갔다.
가장 마지막 기억은 검에 찔린 것, 그 직전은 신수를 사냥한 것.
“기린을 사냥한 건 내가 신기영(神機營) 참룡반(斬龍班) 반주(班主)이기 때문이고.”
기린을 사냥하기 위해 참룡반에서 급히 여덟 명을 대동하고 움직였다.
종회, 마영청, 단부, 신평위, 유상지, 등호, 허죽, 팽도부.
정예 중의 정예로, 영수를 사냥할 때 숨통을 끊는 역할을 담당하는 이들이었다.
수년간 동고동락한 전우이자 친우이기도 한 이들이었다.
“그런데 등 뒤에서 누가 찔렀단 건 같이 간 여덟 명 중에서 한 놈이 그랬다는 건데….”
믿고 싶지 않지만, 그것 말고는 달리 해석되지 않았다.
항몽은 자신의 배를 뚫고 나온 날붙이의 모양새를 기억해내려 애썼다.
데려간 참룡반 여덟 명이 쓰는 무기야 눈 감고도 떠올릴 수 있을 만큼 훤했다.
흉기가 뭔지만 기억하면 흉수를 밝혀낼 수 있었다.
“끄응….”
항몽이 앓는 소리를 내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하아. 당최 안 떠오르네. 어떻게 생긴 무기였더라?”
분명 배를 뚫고 튀어나온 걸 인식했는데, 모양새가 기억나지 않았다.
기린을 몰아붙이느라 기진맥진한 상태였고, 갑작스러운 기습에 놀라기도 했다.
거기에 피도 많이 흘렸으니 집중력을 유지하지 못했더라 하더라도 이상할 것 없었다.
“다행히 이렇게 살아 있다는 건 나머지가 배신자 놈을 즉각 처리하고 나를 구했다는 뜻이겠지. 배신자가 누구인지는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거야. 가만 보자. 여기가 어디야?”
항몽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의원이나 약방 같지 않았다.
그럴듯한 가구나 침상도 없고, 약향이 나지도 않았다.
방은 꽤 넓었는데, 구석에 곱게 개어 놓은 이불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어째 묘하게 낯이 익은데. 착각인가?”
이 수수한 풍경이 이상하리만큼 낯익었다.
북경으로 가 황성의 무관이 된 이후로 늘 고급스럽고 화려한 곳에서만 생활했다.
좋은 것만 먹고 깨끗한 옷만 입었다.
황성의 높으신 분께서 관심을 두고 아낌없이 지원하는 신기영 참룡반 반주가 됐을 정도의 실력자니 당연했다.
그런데도 지금의 초라하고 흙냄새 나는 방이 놀라울 만큼 익숙했다.
“대체 뭐지?”
잠시 생각해보았으나 답이 나오지 않았다.
항몽은 개의치 않기로 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뒤에서 찌른 배신자가 누구인지 알아야 했다.
함께 간 8명을 모두 철석같이 믿었다. 누구인지 확인하고, 왜 찔렀는지 이유를 들어야 했다.
“그런데 죽을 고비를 넘긴 환자가 여기 있는데, 왜 곁에 아무도 없는 거야? 누구든 수발을 들어야 할 거 아냐?”
항몽은 바깥을 향해 소리쳤다.
“게 누구 없느냐? 이 몸이 깨어났단 말이다!”
다행히 누가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바깥에서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휴 시끄러워. 해가 중천에 떴으니까 어서 나와! 게으름 피우다가 사숙께 걸리면 경을 칠 거야!”
항몽은 들려오는 말의 의미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환자더러 밖에 나오라느니, 사숙께 혼이 난다느니 하는 말을 자신에게 할 이유가 하등 없었다.
항몽은 16세에 사문을 떠났다.
지금 나이는 32세.
팔자에도 없는 사숙 따위 있을 리 없었다.
더구나 경을 치다니, 코웃음이 나왔다.
신기영 내에서도 참룡반은 무척 특수한 조직이라 좌우부장(左右副將)조차 건드리지 못했다.
“날 혼내겠다고? 이 몸은 16세 이후로 혼난 적도 없고, 혼낼 사람도 없단 말이다.”
항몽은 중얼거리며 결론을 내렸다.
바깥의 어린놈이 안에 있는 사람을 착각했다고.
어리니까 살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다 여기고 너그러이 넘어가 주기로 했다.
“그래도 어떤 싹수 노란 녀석인지 얼굴은 봐야지. 여기가 어딘지, 다른 녀석들은 어디 있는지 듣기도 하고.”
항몽은 몸을 움직이다 멈칫했다.
죽기 직전까지 갔을 만큼 상처가 극심했다. 그런데 전혀 아프지 않았다.
“…흉터도 없고, 통증도 없고. 화타나 편작 같은 신의(神醫)가 치료해주기라도 한 건가?”
고개를 들었다.
어쩐지 천장이 높아 보였다.
방이 꽤 넓다고는 해도 이상하리만큼 높았다.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 문을 밀었다.
항몽은 손에서 힘을 빼고 굳은 듯 제자리에 멈춰 섰다.
뻗은 손이 남의 것이었다.
내 것일 리 없는 작고 부드러운 손.
“뭐야 이거…?”
단단하고 거친, 굳은살이 잔뜩 박인 손이어야 했다.
항몽은 손을 거둬들였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봤으나 두 손은 여전히 앙증맞게 작았다.
단련되어 툭 불거졌을 뼈마디가 보이지 않았다.
“내 손 어딨어!”
항몽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가슴 아래를 살폈다.
어린아이와 같은 작은 체구였다.
“그러고 보니….”
상처를 확인하려 배를 더듬었을 때, 살이 무척 부드럽고 매끄러웠다.
워낙 경황이 없어 이상하다고 느끼지도 못했다.
근육질의 단단하고 탄력 있는 몸이어야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게 무슨….”
항몽은 혼란 속에서 문을 열었다.
태양이 정수리 위, 저 높은 곳에서 쨍한 햇살을 뿌려댔다.
문 앞에는 7, 8세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있었다.
눈빛이 초롱초롱하고 얼굴은 동글동글한 귀여운 소년이었다.
2024.08.15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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