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그룹 재벌총수 왕 회장, 1967년 박 대통령으로 회귀했다! 권위주의와 관료주의에 찌든 대한민국을 능력 본위 (주)대한민국으로 뜯어고쳐 봅시다!
1. 버뮤다 삼각지대
카리브해.
검은 밤바다에 등불처럼 빛나는 점이 유유히 떠 있다.
슈슈슈슉-
9만 1천 톤급의 움직이는 호텔이라 불리는 초호화 유람선이 파도를 가르며 나아갔다.
25개국 3800명의 승무원과 승객이 타고 있어 함장은 이 배를 지구촌 노아의 방주라고 소개했었다.
자정이 다 되어가지만 선상 파티, 쇼, 카지노가 있는 수천 개의 원형 객실에서는 창의 불이 꺼질 줄 몰랐다.
VIP 객실.
테라스 창을 통해 출렁거리는 바다가 보이는 최고층의 응접실로, 그 안의 가구는 전부 유럽풍이었다.
큼지막한 유리문을 나가며 브런치를 즐길 수 있는 테라스도 넉넉했다.
영감이 푹신한 침대에서 무릎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영감은 180cm 가까운 키에, 뺨에는 붉은색이 돌았다.
82세라는 나이에 맞지 않게 머리숱이 많았고 백발 사이사이에 검은 머리카락도 제법 남아있었다.
컴맹이지만, 비서가 세팅해준 바탕화면의 영상 파일쯤은 이제 혼자 재생할 수 있었다.
영감이 응시하고 있는 영상은 10년 전 그가 출마했던 대통령 선거 유세 방송이었다.
영상 속의 그는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 정치인은 자기 세력을 유지하려고 어마어마한 돈을 뿌립니다. 대통령 선거 한 번 치르려면 수천억이 들어가요. 국회의원 선거, 지방 의회 선거 줄줄이에요. 당의 공천 받으려면 상부에 돈을 상납하는 게 불문율 아닙니까?
동영상을 보는 영감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음, 저때만 해도 혈기 왕성했군….”
- 정치인들, 그 돈 어디서 나는 줄 압니까? 기업 윽박질러서 후려낸 돈이에요. 위정자들 하는 일이 기업의 실적을 가로채 자기 성과로 포장하는 거예요. 그래서 정치인을 허가 난 도둑놈이라고 하잖아요. 그 돈을 경제 발전에 쓰면 지금보다 수출을 두 배 늘릴 수 있어요.
영감은 팔짱을 끼고 화면을 응시했다.
- 학연, 혈연, 지연으로 다 해 먹어요. 관료들은 발목이나 잡는 골목대장 하고요. 지금이 조선 시대입니까? 내가 대통령이 되면 능력 본위 국가로 싹 바꾸겠습니다!
영감이 삐죽 난 턱수염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저땐 겁이 없었어, 겁이.”
하지만 이제 떨어진 낙엽처럼 쓸쓸한 추억이 아니던가.
그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휴우~ 말년에 이게 무슨 꼴이야.”
영감은 현세 그룹 총수 정주현 회장이었다.
언론에서는 그를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이끈 ‘경제 대통령’이라고 칭송했다.
전 세계 건축 현장, 중공업 현장을 누비는 강철 정력가이자, 15개의 상장사를 거느린 80조 재산의 재벌 총수로, 일명 ‘재벌의 왕’으로 불린다. 그래서 별명이 왕 회장이다.
10년 전, 측근들의 만류에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3위라는 결과는 그에게 충격이었다. 낙선의 후유증은 더 컸다.
정권이 교체되자, 그가 거느린 기업과 계열사는 일제히 세무조사를 받았다. 정경분리를 내세운 정치 보복이었다.
정상적인 기업 경영 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정계는 물론이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하고, 국외로 도피했다.
마치 쫓기는 현상 수배범처럼 원치 않게 몇 년째 객지 생활을 하고 있었다.
자식들에겐 절대 기업을 물려주지 않고 전문 경영인에게 맡겨 족벌 재벌로 가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이마저도 어그러지고 말았다.
국외에 있는 동안 자식들이 달려들어 아귀다툼하며 기업을 찢어가 버리고 말았다. 핵심으로 내세웠던 능력 본위 대한민국 캐치프레이즈가 우습게 된 것이다.
이젠 종이호랑이에 불과했다.
왕 회장은 노트북을 침대 옆 원목 테이블에 올려놓고 선내 전화기를 들어 이 부장(29)의 객실 번호를 눌렀다.
경호원이지만 부를 때는 이 부장이라고 불렀다.
띠~ 띠~ 띠~
신호가 갔지만 받지 않았다.
“술이나 한잔 하려고 했더니….”
왕 회장은 다른 번호를 눌렀다. 주치의 역할을 하는 수간호사이자 비서를 겸한 정 양(33)이었다. 남들이 듣기 좋게 정 과장이라고 불렀다.
띠~ 띠~ 띠~
역시 받지 않았다.
“라운지 파티에 간 건가?”
왕 회장은 볼펜 같은 전자 담배를 꺼내 들고 가운을 걸친 채 객실 문을 열고 나갔다.
두 개 층만 걸어 올라가면 이 유람선에서 뷰가 가장 뛰어난 최상층 갑판이 나온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계단은 문제도 아니었지만, 지금은 다리가 천근만근이었다.
큰 배지만 거대한 파도에 출렁거려 기우뚱하며 멀미가 났다.
난간을 붙잡고 인적이 없는 헬스 센터 복도를 걸어갔다.
이 야밤에는 헬스를 즐기는 사람이 없기에 내부에 조명이 꺼져있었다.
그런데 헬스장 내부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격렬하게 움직이는 사람의 실루엣이 선명했다.
“헉, 헉!”
그의 귀가 쫑긋 섰다.
이건 분명히 남녀가 음양을 맞추는 소리였다.
한창 때다 싶어 방해하지 않고 지나치려던 그의 발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설마….”
여자의 교성이 귀에 익은 음성이었다.
그는 다가가 안을 들여다보았다.
짐볼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여인은 바로 정 양이 아닌가! 여자 위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사내는 바로 이 부장이었다.
왕 회장의 두 주먹이 부르르 떨었다.
“저, 저것이 젊은 놈하고 붙어먹어-”
미혼의 청춘 남녀가 눈이 맞는 걸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양은 왕 회장의 주치의이자 몸의 대화를 나누는 애인 사이였다.
이놈들! 하는 고함이 목구멍까지 치밀었다가 멈칫했다. 통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 때문이었다.
젊은 남녀의 정사를 질투 어린 눈으로 노려보는 한 초라한 늙은이가 초상화처럼 박제되어 있었다.
영감은 통유리를 짚고 있는 쭈글쭈글 마른 가지 같은 자기 손을 쳐다보았다.
왕 회장의 머릿속이 돌 맞은 유리창처럼 깨져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왕 회장은 고개를 푹 숙이고 쓸쓸하게 발길을 돌렸다.
갑판으로 나온 그는 난간에 기대어 볼이 움푹 패도록 전자 담배를 빨았다.
휴우~
담배 연기가 바람에 빠르게 흩어졌다.
그가 중얼거렸다.
“돈도 젊음을 이길 수는 없구나. 돈도 말이야. 휴우~ 정작 중요한 건 돈으로 살 수 없다니….”
돈 많은 루저 왕 회장, 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바다를 스크린 삼아 지난 전성기를 떠올리며 스스로를 다독거렸다.
나도 즐길 만큼 즐겼지. 한 가지만 빼고 말이야….
영감은 재벌 총수로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쾌락은 다 맛보았다.
가장 귀하다는 음식, 최고 미녀, 비싼 옷, 큰 집, 큰 차를 다 가져봤다.
2024.08.16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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