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터들이 지배하는 아포칼립스 세상. 무능력자인 주인공은 집구석에서 아포칼립스 배경 가상현실 게임을 플레이하다, 어떤 적이어도 약점을 알려 주는 사기 스킬을 얻게 된다. 그런데 이 스킬을 현실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우웅…
눈을 뜨자, 익숙지 않은 공간이 보였다.
푸른 벽이 둘러싼 약 7평 크기의 좁은 방.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신기한 눈초리로 방의 벽면을 쓰다듬어 보았다.
차가운 촉감.
상상하지 못한 감각에 놀라 화들짝 손을 뺐다.
기술의 발전으로 가상 현실 방송이 가능해진 시대.
나 또한 그런 방송들을 즐겨 보긴 했지만, 내가 이렇게 방송을 시작하게 될 줄은 몰랐다.
어색한 손놀림으로 눈앞에 보이는 홀로그램들을 조작했다.
잠깐 시간이 지난 후, 내 시야에 방송용 인터페이스가 보이기 시작했다.
시야의 왼쪽 위는 방송 중이란 의미의 빨간 불이 점등하고 있었고.
오른쪽 아래엔 채팅이 올라올 채팅창 UI가 생겼다.
그리고, 곧바로 한 채팅이 올라왔다.
-정통판타지조아요: ㅎㅇ? 신입이네?
“하하. 안녕하세요. 방송은 오늘 처음 합니다.”
솔직히 당황했다.
오늘 방송을 켠 것은 그냥 한번 장비 테스트를 하기 위함이었는데, 갑자기 시청자가 들어온 것이다.
단 한 명이긴 해도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자, 긴장됐다.
“그, 오늘은 테스트 느낌의 방송이니까, 적당히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통판타지조아요: ㅇㅇ 짜피 좀이따 나갈거임
“아. 그러시구나.”
나는 뻘쭘한 기분에 뒷머리를 긁으며 원래 하려던 일을 마저 이어나갔다.
오늘 방송을 켜게 된 이유.
다시 홀로그램을 조작하자, 익숙한 게임 타이틀이 방송룸 한가운데에 나타났다.
-정통판타지조아요: 아포서울? 좀 재밌는 거 하네.
[아포칼립스 서울].
바로 어제 정식발매된 따끈따끈한 게임.
하지만 사실 나는 이 게임을 4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아니, 알고 있다는 말로는 부족할지도 모른다.
이 게임이 정식발매될 때까지, 나만이 이 게임의 모든 부분을 검수하는 테스터였거든.
-정통판타지조아요: 이겜 겁나 어렵다던데 괜춘? 바로 뒤지면 나도 바로 나간다
정통판타지조아요, 정판조의 자존심을 긁는 채팅에 나는 첫 방송의 긴장도 잊고 코웃음을 치며 반박했다.
“어디, 직접 보시죠. 지금 방송하는 사람 중에서 저보다 이 게임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걸요.”
나는 곧바로 아포서울의 타이틀을 터치했다.
#
4년 전.
다니던 직장에서 강제로 잘리고 백수 생활을 하고 있던 시절.
어디 할 만한 게임 없나, 게임 커뮤니티를 들락거리고 있었다.
[할 겜 추천좀]
가상현실 기술 상용화되고 나선 소아온같은 게임 쏟아질 줄 알았는데 아니네?
아님 내가 못 찾는 거임?
└ㄴㄴ 아직 개발 중이란 소식만 무성하지, 명작은 없는 듯
└내 생각엔 가상현실도 그냥 메타버스처럼 지나간다. 세상에 특이점이 온다더니, 별 것도 없구만
하지만 별 영양가 있는 글은 발견하지 못했다.
세상에 이상한 괴물들이 생기고, 헌터들이 생기고, 가상현실까지 만들어졌지만, 게임계에 별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여론.
나 또한 거기에 동감했다.
가상현실 게임이라 해봤자, 예전 VR게임을 적당히 옮겨놓은 것 같은 자가복제스러운 게임들밖에 없었다.
드륵, 드륵.
나는 턱을 괸 채 무성의하게 마우스 스크롤을 내렸다.
그런데, 내 시선을 끄는 글이 있었다.
[이젠 풀다이브의 시대다]
가상현실? 그런 구닥다리 기술은 저리가라.
캡슐도, 뇌파기어도 필요 없음. 그냥 마우스 딸깍. 한방이면 가상현실 진입하는 기술임.
풀다이브 기술만 나오면 게임계 난리난다ㅇㅇ
소아온같은 겜도 꿈이 아님
└네 다음 풀다이브 주식 풀매수한 사람
└그거 나온다, 나온다 한지 벌써 몇 년이나 지났는데? 나오긴 하냐
“흠.”
흥미로운 글이었다. 언제 나올진 모르지만, 나오기만 한다면 가히 게임계의 혁명이라 해도 될 정도의 기술이지 않은가.
일단 가상현실 게임을 즐기기 위해 필요했던 장비를 구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접근성이 남달랐다.
나는 잠깐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했다.
그러다, 글을 쓴 유저에게 쪽지를 보냈다.
[셸터탈출넘버원: 안녕하세요. 풀다이브 글 보고 쪽지 드립니다. 혹시 언제 기술 출시하는지 님은 아시나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서 재미로 보냈던 쪽지였다.
딱히 답변을 바란 것도 아니었고, 개소리가 온다면 오히려 키보드배틀을 뜨며 즐겨줄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답장이 왔다.
[네오스펙트럼: 안녕하세요, 김현식님. 네오스펙트럼입니다. 네. 풀다이브 출시는 곧 머지않았습니다. 지금은 완성 후 마지막 테스트 단계를 거치고 있습니다. 김현식님, 혹시 제가 풀다이브 기술을 이용하여 제작한 게임의 베타 테스터를 맡아 주시지 않겠습니까?]
“뭐야.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
소름 돋게도 닉네임이 아닌 본명을 언급하며 보내온 답장.
나는 팔에 우수수 돋아난 닭살을 쓰다듬으며 곧장 답신을 보냈다.
[회사탈출넘버원: 저기요. 님아. 제 이름은 어떻게 아셨어요? 님 혹시 막 어나니머스, 그런거임?]
[네오스펙트럼: 아닙니다. 뭐, 다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어쨌든. 하실 건가요?]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 네오스펙.
머릿속 저 언저리에서는 본능적인 경고등이 울리고 있었다.
하지만 내 손은 저절로 움직여 답신을 보내고 있었다.
[회사탈출넘버원: 하겠습니다. 근데 베타 테스터면 뭐 체크 리스트 같은 거 작성해야 합니까?]
사실 이 사람이 국정원 요원이든, 어나니머스의 해커든 상관없다.
세상이 이렇게 된 이후로 나는 무엇이든 인생을 바꿀 계기가 필요했다.
[네오스펙트럼: 아뇨. 이 링크만 클릭해 주시면 됩니다.]
파란색으로 빛나는 링크 주소가 그렇게 불길하고도 흥미롭게 느껴지긴 처음이었다.
이 하나의 링크가 내 인생을 바꾸리란 직감을 느끼며.
딸깍.
손가락이 마우스를 누르는 소리와 동시에, 내 시야는 암전됐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땐, 황폐한 도시 한가운데였다.
#
나는 4년 전과 비슷한 기분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금 방송룸에서 아포서울의 게임 타이틀을 눌러 이미 게임 속으로 들어온 상태다.
익숙한 서울의 풍경.
하지만 높다란 마천루들이 반파되어 있다는 것이 달랐다.
아스팔트 도로도 깔끔히 정리된 도시의 그것이 아니라, 그 위에서 모래알이 미친 듯이 휘날리고 있어 어지러웠다.
가로등, 나무, 자동차들. 정갈히 있어야 할 것들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다.
감각. 온몸의 감각이 이상했다.
분명 뇌는 여기가 현실 세상이 아니라고 외치는데, 내 감각은 현실과 똑같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게 바로 풀다이브 게임의 가장 큰 장점이다.
게임이 현실처럼 느껴진다는 것.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것처럼 게임이란 것을 잊지 않게 해주는 장치들이 있다.
[<아포칼립스 서울>
세상이 반쯤 망하고, 헌터들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시대에, 당신이 나타났습니다.
당신은 이 세상을 다시 부흥시키거나, 혹은 더 이상 돌아올 수 없을 지경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괴이들이 창궐한 이 세상에서 당신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요?
새로 시작하기
불러오기]
몇 번을 보아도 비현실적인 홀로그램.
나는 커다란 고민 없이 ‘새로 시작하기’ 버튼을 터치했다.
그러자, 더 비현실적인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발밑에 있던 아스팔트가 파도처럼 밀려나고.
주위에 있던 빌딩들이 모래성처럼 무너진다.
곳곳에 있던 자동차들 또한 아스팔트가 사라진 자리 아래, 보이지 않는 공간 너머로 사라진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불러옵니다. 시작 지역: 베어스 길드의 구역]
눈앞에 뜬 홀로그램과 함께 풍경이 뒤바뀌기 시작한다.
하얀색.
온 세상이 하얀 색깔로 변하기 시작했다.
2024.09.28 02:34

대사가 자연스럽고 좋아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24.10.27

과연 어떤 스킬들을 더 획득하게 될지 정말 궁금합니다.
2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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