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사람이 심심찮게 죽어대는 디스토피아 추리소설 속 대학원생으로 빙의했다. 이것도 억울한데 시작부터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리게 되었다. 게다가... "범인은 당신이야!" "아닌데요." 사건을 해결할 탐정마저 폐급이다.
늦은 밤, 웃음소리가 가득했어야 할 거리는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불이 환하게 켜진 한 빵집.
또각또각, 낡은 바닥을 두드리는 구두 소리가 기괴하게 울려 퍼졌다.
깜박거리는 전구는 여러 물체를 비추며 그림자를 지게 하였고 그것은 사람, 아니 인형의 물체 또한 마찬가지였다.
전구가 켜지고 꺼지고를 반복할 때마다 용의자들의 얼굴은 늙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런 고요함 속 아름다운 금발을 휘날리며 의자를 쓸어내리는 한 명의 탐정은 미소 지었다.
그녀는 마치 모든 것을 깨달았다는 듯 당당하게 손가락으로 누군가를 지목했다.
“범인은 당신이야!”
“아닌데요.”
나는 참지 못하고 탐정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 * *
은은한 노란 색 빛 조명을 받으며 테이블의 빵을 씹어대는 남자.
자신의 테이블 외에는 아무도 자리에 앉아있지 않는 광경은 그가 더욱 비참하게 보이도록 만들어준다.
그래 무얼 숨기냐,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최악의 표정을 짓고 있는 이 남자의 정체는 바로 나 헬름 레번트이다.
눈을 깜빡이니 책 속에 빙의했다.
그것도 사람이 심심찮게 죽어 나가는 추리소설 속 탐정의 조수로.
[디스토피아 속 만능 탐정 교수]
약칭 [탐정 교수]라고 불리는 소설은 내가 중간에 던져버린 소설이었다.
솔직히 그 책에 대한 기억이라고는 추리 소설인데도 마법과 이능력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몇몇 이야기의 전개 뿐이었다.
더군다나 그마저도 흐릿하다.
허나 이 책을 조금이라도 읽은 독자라면 내 현재 상황을 딱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좆댔다’
헬름 레번트.
[탐정 교수]의 주인공 ‘모리아티 제인‘의 조수이자 조교. 내가 빙의한 캐릭터.
탐정이라고는 하지만 온갖 문제를 해결하며 사실상 해결사로 불리는 모리아티에게 굴려지며 생사를 오가는 인물.
그런 그에게는 수많은 별명들이 있으나 한마디로 그를 표현하자면
노예 조수.
으레 추리물에서의 조수란 탐정을 함께 사건을 해결해 나가며 파트너로서의 관계로 성장 해나가지만 헬름은 아니었다.
'그 교수님······ 혹시 이번 달 월급······ .'
'어머? 어떻게, 잘 처리했을까요? 저번 사건에서 깨 먹은 위약금은.'
'아 그 졸업은······'
'아 저번에 제출한 졸업작품이요? 지금까지 해결한 사건들의 범인의 심리를 분석해서 범행동기를 100가지 형태로 서술하라고 피드백하지 않았었나요?'
파트너는커녕 작품 중반까지 이 녀석은 제대로 된 보수도 받지 못하고 평생 조교로 살게 생겼었다.
’진짜 조졌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디스토피아 세계에서 죽지는 않으니 그게 어디냐고.
하지만 그건 모리아티 교수라는 사람을 몰라서 하는 소리일 것이다.
'아악 교수님 제발 좀 내보내 주세요!‘
'나 참 뭐가 문제인가요? 에너지 드링크에 커피에 있을거 다 있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아무튼 이제 통신 끊을게요, 참 제가 계속 지켜보고 있으니까 이상한 짓은 하지 않는 걸 추천해 드려요.‘
'잠깐만요 교수님! 교수님······? 교수님!'
특히 범인의 심리를 분석하기 위함이라는 명목으로 72시간 동안 사각지대가 없는 독방에 가두어 버린 것을 생각하면 오금이 저렸다.
그녀가 어떤 이유로 탐정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나는 이대로 있다간 평생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사신과 함께 살아가야만 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헬름에게도 이능력이 있다는 것과 현재 빙의 한 시점에서는 모리아티의 조수가 아니라는 점일까.
그것을 어떻게 아냐고? 조수가 된 시점부터는 이렇게 여유롭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없다.
항상 그녀의 곁에서 레포트를 쓰거나 위험한 사건 현장을 구르거나 그럴 것이다.
애초에 대학원생에게 자유란 있을 수 없다.
그 직책을 다는 순간부터 교수의 가축이 되어 한 평생 재롱을 부리는 원숭이가 될 뿐······.
크흠 서론이 길었다.
결국 현재 시점에서의 나의 목표는 단 하나 뿐.
‘모리아티에게서 도망친다.’
미약하지만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미래의 정보와 내 이능력을 활용한다면 모리아티의 도움 없이도 이 망할 디스토피아 세계에서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비장하게 그런 결의를 다지고는 몸을 움직였다.
비싼 빵집답게 장식용인지 과시용인지 부자연스럽게 정렬돼 있는 동상들을 지나쳐 2층을 내려오자 한 남자가 보였다.
하얀 정장을 입고 갓 나온 빵과 꽃다발을 들고 있는 남자.
“오늘은 꼭 그녀에게 고백 할 겁니다 후후.” 점원과 이야기하고 있던 그는 누군가에게 고백할 예정이었나보다
내가 내려왔다는 것을 인지한 남자는 느끼한 웃음을 지어냈다.
“어라 아직 손님이 계셨군요? 하하”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이 차림새를 보고 이따위로 고백을 당하는 여성에게 깊은 애도를 표하겠지만 나는 달랐다.
‘미친······.’
하얀 정장, 빵과 꽃다발 그리고 고백.
이 자식 틀림없이 [탐정 교수] 속 프롤로그 범인이다.
그렇다는 건 지금 이 곳이 소설 속 첫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곳이자 모든 불행의 시작점이란 건가?
‘자네 내 대학원에 올 생각없나?’
모리아티의 끔직한 텍스트가 지금 내 눈앞에서 둥둥 떠다니는 듯한 느낌이다.
이건 너무하지 않나? 결의를 다짐하자마자 내 목표를 바로 망치로 깨부수다니. 니체도 아니고 말이야.
열심히 쓴 레포트를 필요 없는 종이마냥 분쇄기에 갈아 넣은 심정이다.
그래도 아직까진 상황이 나쁘진 않다.
아직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으니까 일단 빨리 이 가게에서 나간다면······.
‘쿵’
내가 발을 움직이는 별안간 어떤 물체가 계단에서 구르며 내 등 뒤로 떨어졌다.
아 진짜 거짓말하지 마.
“아”
“꺄아아악!”
그것은 바로 아주 깨끗한 여성의 시체 한 구였다.
* * *
“확실해요! 그녀를 죽인 건 저 녀석입니다! 제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까요!”
“겨우 이런 일에 내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 건가? 난 바쁜 몸일세!”
대충 늘어진 폴리스라인 너머로 다양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겁에 질려있는 점원과 시간 낭비라며 짜증을 내는 1층의 손님들, 울분을 토하는 남자.
경관들은 이미 내가 범인이란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내가 죽인 걸 본건 아니잖아.’
퍽이나 불쌍한 얼굴로 교묘한 거짓말을 섞어 경관들에게 연민을 호소하는 남자의 모습은 역겹기 그지없었다.
“알겠으니 저리 꺼져라.”
대머리 경관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말하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긁을 머리카락도 없으면서 말이야.
“이 바닥에서 사람 죽는 게 뭐 중요한 일도 아니고 왜 퇴근 시간에 이런 일이 생기고 지랄인지 모르겠군”
그때 후배로 보이는 째진 눈의 경관이 말을 이었다.
“그냥 저 희멀건 검정 대가리 처넣어두고 실적이나 올리는 건 어떻습니까? 주변 관계가 끊어져 있는 걸 보니 어차피 아무도 신경도 안 쓸 겁니다!”
“쯧 바보 같긴 이딴 건 실적 감도 아니다. 나 참 차라리 성추행 건이었으면 몰라.
후배로 보이는 째진 눈 경관과 대머리 경관은 디스토피아 세계 다운 미친 소리를 하고 자빠졌다.
“뭘 꼬라보는거지? 눈 안 깔아?”
조그마한 반항의 의미로 경관들을 째려보자 바로 응징이 들어왔다.
2024.10.13 12:14
2024.09.28 03:38

소재가 흥미로워요. 한 성격하는 인물들의 케미도 좋고, 사건 진행 흐름도 매끄럽습니다. 재밌어요.
24.10.31
소고기풀코스권력 부럽다...
24.10.30
ㅠㅋㅋ 탐정도 대학원생이있다니
24.10.30
탐정 교수님 이름이 모리아티인 건가요 ㅋㅋㅋ 개그코드가 재밌어서 잘 봤습니다!
24.10.26

기대되는 스타트! 천재 조수의 활약을 고대할게요 ㅎㅎ
24.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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