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억울하게 사상 최악의 죄인으로 감옥에 갇히게 된 뷸렛, 일말의 자유라도 얻고 싶다면 학생 지도관으로서 엇나간 학생들을 선도해야만한다.
“죄수 번호 9999번.”
교도관이 호명하자, 무려 철창을 다섯 겹으로 덧대어 만든 좁은 감옥 안에 갇혀있던 흑발 회색안의 사내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잘그락.
사내의 움직임에 따라 그의 팔다리에 채워진 아다만티움을 섞어 만든 족쇄가 흔들리며 무거운 쇳소리를 내뱉는다.
고개를 들어 올린 흑발의 사내는 한낱 죄인의 신분으로 이런 감옥에서 마냥 썩어 문드러지기에는 상당히 어려 보이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칠흑과도 같은 흑발과 창백한 피부, 흐릿한 회색의 동공은 나이답지 않게 피폐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죄인! 움직이지 마라!! 이건 경고다!!!”
무려 다섯 겹으로 덧대어진 철창을 사이에 두고, 팔과 다리를 벽과 이어진 족쇄에 구속된 젊은 죄수가 고작 고개를 들어 올렸을 뿐이다.
그럼에도 교도관은 더럭 겁을 먹고는 소리를 내지르며 다급히 허리춤에서 꺼내든 마공학 피스돌을 그의 머리에 겨누는 것이었다.
하지만 착각하지 말아 주었으면 한다.
교도관은 결코 오늘 막 들어온 신입도 아니며, 중증의 안전 민감증을 심하게 앓고 있는 환자도 아니니.
이 감옥과 죄수의 정체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나는 눈앞의 교도관에게 경외의 갈채를 보내고 싶다.
이내 흑발 회색 안의 죄수, 그러니까 나 자신이 입을 열었다.
“고작 점심밥 하나 주는 데 너무 오래 걸리는 거 아닌가.”
영양사 교도관 선생께서 점심밥이랍시고 친히 죄수의 머리에 마공학 피스돌을 겨누는 이곳은 바로 라비린토스.
세간에서 떠들기를, 신이 버린 수천의 죄가 갇혀있는 무저갱.
흉악한 죄인들만 호송된다는 지상 최대의 감옥인 이곳에서 나는 슬프게도 죄인으로서 구금되어 버린 것이다.
“다, 다물어라! 그 세 치 혀로 나를 유혹하려 들지 마!!”
그러니 눈앞의 교도관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이쪽은 여자를 좋아하는 평범한 남자인데 말이다.”
“이런 파렴치한!! 내가 여장 취미를 가진 걸 눈치채고 몸을 노리는 건가!?”
유혹이라는 단어를 한번 비꼬아 내뱉은 시답잖은 말장난이었지만 놀랍게도 교도관은 더욱 겁을 집어먹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에 나는 어이가 없어 내뱉었다.
“아니, 관심 없다고 미친놈아.”
정말 조금도 궁금하지 않았던 자신의 취미를 혼자 불어놓고 징그럽게 제 몸을 껴안은 채 뒷걸음치는 내 눈앞의 교도관은 매번 이곳으로 찾아와 내게 밥을 줘야 하는 처지의 인간이다.
평소에도 질리지 않고 발광을 해대는 교도관이라지만 오늘따라 그 정도가 심하다.
“으읏..! 그 눈, 정녕 내 몸을 노리고 있는가..!! 이런 사악한 악마 같으니!”
“아니라니까.”
제 멋대로 망상하던 교도관은 계속해서 뒷걸음질을 치다가 이내 몸을 돌려 땅을 박차고 내가 외로이 홀로 수감된 좁디좁은 지저감옥을 뛰쳐나갔다.
“···내 밥은?”
뭐, 됐다.
사람이 하루 이틀 굶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원래 하루 한 끼밖에 안 주는 데다가 담당 교도관이라는 인간이 저 모양이라, 이미 일주일에 세 끼는 강제로 굶고 있어서 오늘이라고 이상할 것도 없었다.
“하아.”
한숨이 절로 나온다.
‘왜 내가 이 꼴이 났지···.’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다.
성실하게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집에서 나와, 아는 어르신의 농사를 하루 종일 돕다가 돌아온 뒤 잠을 자려고 막 침대에 몸을 뉘었다.
그런데 갑자기 와장창!! 내 집의 창문이란 창문을 모조리 몸뚱이로 아작내고 침입한 경비병들이 마공학 피스돌을 겨누며 나를 잡아가는 것이 아닌가.
그 당시에는 어이가 없어서 그들이 깨 먹은 창문의 보상금을 얼마나 받아내야 할까 궁리하고 있었는데.
돌연 사상 최악의 죄인이 되어서는 라비린토스의 지하에 감금당했다.
억울하다.
내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아는 어르신을 도와 당근을 뽑다가 실수로 탈모인 어르신의 머리채를 잡아 뽑아버린 것 정도일까.
솔직히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게 누가 녹색으로 머리카락을 염색하래.
물론 나라고 얌전히 갇혀주지는 않았다.
-억울합니다.
여전히 내 머리에는 마공학 피스돌이 겨눠진 채라 말뿐이었지만 억울함을 토로했다.
-닥쳐라 죄인!!
-아니, 정말로 억울하다니까.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
-흥! 범죄자들은 다 그렇게 말하지!
그렇다.
이 나라에서 범죄자에게 인권 따위는 없었다.
아무렴 나라에서 범죄자의 인원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극히 훌륭한 태도였지만.
-라비린토스는 범법자의 권리를 존중하라!!! 이건 모함이야!!!
철컥.
-닥쳐라 죄인! 이 이상 소리치면 탈옥 시도로 간주하고 쏘겠다!
무슨 철창을 붙들고 억울하다는 말만 꺼내면 닥치라고 총구를 겨누니, 항의가 전혀 통하질 않는 것이다.
뚜벅,
그렇게 오늘도 정신이 나가버릴 것만 같은 고요함을 벗 삼아 팔다리를 구속하는 지긋지긋한 족쇄와 짝짜꿍하며 신세를 한탄하고 있던 도중.
뚜벅, 뚜벅,
저 멀리서부터 희미하게 들려오기 시작한 군홧발 소리가 가까워지자 도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죄인.”
기합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가 제국에서 오로지 나만을 위해 만들어준 지저 감옥 안에서 울려 퍼진다.
정갈히 차려입은 제복만이 눈에 들어온 채라, 더욱 시선을 치켜올리니 그녀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황금용의 문양이 가운데에 박혀있는 검정색 제국 모자 아래로 은발에 가까운 백금발이 어깨 아래까지 흘러내렸다.
어둠 속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녹안은 앳된 얼굴과는 달리 고생을 많이 겪은 듯 탁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철저히 절제된 열중쉬어 자세는 나보다 어려 보이는 그녀에게서 벌써부터 훌륭한 제국군의 냄새가 풍겨오게끔 만들어 주었으니.
“레펠리아.”
최연소 제국군 장교이자, 좌(佐)관.
레펠리아 벨.
그녀가 내 담당 교도관이었다.
“밥이다.”
휙-
방금 뛰쳐나간 배식 담당을 대신하여 그녀가 던져준 빵 하나가 내 눈앞으로 던져졌다.
마치 숯 검댕이라도 되는 것처럼, 시꺼먼 빵은 돌바닥을 굴렀음에도 부스러기 하나 떨어지지 않는 게 보고만 있어도 돌보다 더 단단한 식감이 예상되었다.
놀랍게도 저 빵이 검은 이유는 누군가 실수로 태워버린 것이 아니라 질 낮은 밀을 사용한 결과였다.
2024.10.12 14:59
2024.10.11 17:50
2024.09.29 13:32
2024.09.28 08:29
2024.09.28 05:20

어머🫢 바로 빌헬름 이름을 대다니. 빌헬름 도망쳐(?) 근데 이거 감당 가능한 건가요? 앞으로의 전개가 궁금하네요🤔
24.11.30

레필리아가 학생이었다니. 그것도 조수? 앞으로의 케미가 기대되네요!
24.11.30

소녀와는 앞으로 어떤 인연이 생길지...🤔 기대됩니다:)
24.11.30
수정

개그 요소가 너무 재미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4.11.12

주인공 정체가 대체 뭐길래 황제가 수백개의 누명을 씌운건지 계속 궁금하게 만드네요. 앞으로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될지 기대됩니다
24.10.31

아니 아무리 머리카락이 녹색이어도 그렇지 어떻게 당근잎이랑 어르신 머리카락이랑 헷갈릴 수 있냐고요ㅋㅋㅋㅋ 여기서 엄청 웃었습니다ㅋㅋㅋ
24.10.31
수정

헉😯 진짜 누명인 걸 알고 있던 거였네요. 캐릭터들이 개성 넘치네요. 재밌습니다:)
24.10.30

'사상 최악의 죄인'인 주인공에게 아카데미 일을 제안하다니, 누명인 걸 알고 있는 걸까요? 🤔 과연 이유가 무엇일지... 기대됩니다:)
24.10.29
수정

"오랫동안 준비했다면 그럴 수 있지" "…맞는 말이군" 이런 성격 너무 좋아 ㅋㅋㅋㅋㅋㅋ
24.10.27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ㅜㅜ 주인공의 무사 탈옥을 기원합니다 (┬┬﹏┬┬)
24.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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