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뷰티 광고로 혜성같이 등장한 배우 하영빈.
그의 연기는 방구석에 앉아 있는 시청자도 화면 속으로 들어 갈듯이 집중하게 만들었다.
영빈이 시상식 무대 가운데 신인상 트로피를 손에 들고 섰다.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을 손으로 닦아가며 불우했던 가정 환경을 털어놓는 영빈을 바라보는 관객석에서는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그중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그 이후 영빈에게 붙은 수식어는 자수성가 천의 배우였다.
영빈은 힘들었던 과거를 인터뷰할 때면 거짓말을 한 것처럼 뜨끔대는 기분을 면치 못했다.
시상식 무대에서 울면서 떠들어댄 불우한 가정사와 감정 전부가 거짓인 건 아니었다.
거짓이었던 건 자수성가 따위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없는 생활에도 단지 연기가 좋아서 아르바이트하며 무명 생활을 버티던 영빈에게 들어온 이상건설공업 이기훈 이사의 스폰 제안은 솔깃하기 그지없었다.
단숨에 당연히 하겠다고 소속사 사장님의 손을 잡았다.
거기서부터 시작된 기훈과의 관계는 인기를 얻은 지금까지도 손을 놓지 못하고 이어졌다.
대표가 영빈의 앞으로 한 권의 대본을 던지듯 놓았다.
<소년이 잠긴 방>
“상대역은 이종훈으로 결정됐대. 공개 오디션으로 뽑힌 모양이야.”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데, 실력은 엄청 좋은가 봐요?”
“뭐······ 전작이 BL이라서 이쪽 코어 팬들은 꽉 물고 들어가려나 봐. 그리고 이건 감독이 얘기하지 말랬는데······.”
대표가 한참을 망설이더니 작아진 목소리로 영빈의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이기훈 대표님 동생이래. 가족들이 말리는 연기 꾸역꾸역하겠다고 했나 보더라고.”
“기훈 씨 동생이랑 BL 드라마를 새로 들어간다고요?”
“응, 괜찮아?”
“안 괜찮을 건 뭐예요. 이거 제가 하라고 기훈 씨가 밀어준 드라마 아니에요?”
“그래도······ 이기훈 이사님도 네가 이종훈이랑 연기하는 거, 마냥 달가워하는 분위기는 아니었거든.”
듣도 보도 못한 무명인 동생을 나랑 드라마에 꽂아 놓고 달가워하지 않는다니, 터무니없는 위선을 떨고 있는 거야? 진짜 웃기지도 않아.
영빈이 구겼던 미간을 펴고 대표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테이블 아래 감춰두어 주먹 쥔 손은 힘이 잔뜩 들어간 탓에 잘게 떨렸다.
“자기 동생인데 본인이 드라마에 꽂았겠어요? 기훈 씨가 그렇게 비겁한 사람도 아니고, 분명 압박이 있었을 거예요.”
“넌 세상을 너무 물로 봐. 가끔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봐야 할 때도 있는 거야. 친하게 지내는 사이라고는 하지만 이상건설 이사라는 사실을 너무 잊지는 마. 마냥 깨끗한 기업은 아니니까.”
“······그럼요. 안 잊어요. 어떻게 얻은 사람인데요.”
스폰서와 연예인의 관계라는 게 쉽게 좁혀지는 사이가 아니라는 걸 대표님은 망각한 모양이다.
이기훈 이사가 생각보다 더욱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도 모르는 듯하다.
스폰서와 연예인 한 사람은 다른 한쪽을 좋아할 수 없는 위치에 서 있다.
연예인이 스폰서를 좋아하는 경우는 드물다.
나를 섹스토이처럼 쓰고 드라마 하나에 대충 꽂아주는 사람을 좋아할 수는 없다.
멜로드라마가 드라마인 이유가 있다. 현실에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으니까.
자기가 띄운 나를 동생을 드라마에 꽂는 데에 이용할 줄은 몰랐다.
영빈은 테이블에 놓인 대본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갈게요. 대본 받으러 온 것뿐이니까”
“너는 참 애가 착해서 좋아.”
“에이, 저 같은 애들 소속사에 많죠.”
더 이상 대표실에 있다가는 감추고 있던 증오가 담긴 표정을 전부 내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퍽-!
회사를 나오려던 영빈이 앞서 매니저의 머리를 흐르는 달걀에 오도 가도 못하고 멈춰 섰다.
열려있는 문 사이로 열댓 개의 달걀을 들고 서 있는 안티와 눈이 마주쳤다.
지치지도 않는지, 벌써 몇 달째 회사 앞에 출석했다.
독기를 품은 저 눈은 몇 번을 마주쳐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도 익숙해지지 않겠지.
“너는 죽어야 해!!”
“우리 서라 이미지 죽창 내놓고 너는 새로운 드라마 들어간다며?!”
“너도 새 드라마 못 찍게 할 거야! 각오해!”
달걀을 던지던 사람들이 외치는 서라는 저번 작품에서 나의 상대역으로 나왔던 진서라다.
좋지 못한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의 질타를 받고 다음 작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저 사람들은 진서라가 다음 작품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나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진서라에게 모자란 부분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그들은 진서라는 감탄사 하나도 제대로 뱉지 못하는 애라는 걸 알려줘도 평생 깨닫지 못할 것이다.
매니저가 다가오는 안티를 막아도 날아 들어오는 생달걀과 밀가루를 막을 수 없었다.
반응을 해주면 어항에 먹이를 뿌리니 달려드는 물고기처럼 다음 강도가 더 심해지니 얼굴 하나 찡그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지나가겠습니다. 비키세요.”
비방은 끊이질 않았다.
차에 올라탄 후 문을 닫은 영빈이 매니저가 건네는 수건을 꽉 쥐며 소리를 질렀다.
“저 새끼들은 언제 떨어져 나간대? 맨날 화도 못 내고 꼴이 이게 뭐야. 대표는 저런 새끼들 깔려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회사로 불러들이는 것도 한두 번이지.”
“진정해, 안티들 진서라 다음 드라마 들어가면 잠잠해지는 거 알잖아.”
“회사 앞에 경호원을 늘리던가 해. 아무도 없으니까 만만한 줄 알고 달려들잖아.”
“대표님한테 건의해 볼게.”
머리를 감싸 안은 채 웅크린 영빈이 몸을 떨었다.
영빈의 휴대폰 화면이 켜지며 짧은 진동을 울렸다.
이기훈 이사님 [내일 시간 괜찮아?]
옆 좌석에 던져놓듯이 한 대본을 힐끔 본 영빈이 휴대폰을 들었다.
[네, 괜찮아요! 호텔에서 봬요.]
안티 때문에 짜증이 머리끝까지 올라온 상태에서 온 기훈의 메시지가 영빈에게 달갑게 보일 리가 만무했다.
더러워진 옷을 입은 채 돌아온 집은 텅 빈 쓸쓸함에 없던 힘이 더 빠지는 듯했다. 기훈과 만나는 내일이 짜증나게 싫으면서도 빨리 오길 바랐다.
*
마스크와 모자를 푹 눌러쓴 영빈이 호텔 프런트로 다가갔다.
“1704호 예약했는데요.”
“예약자 성함 말씀해 주세요.”
“······이기훈입니다.”
2024.09.28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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