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태어날 때부터 죽음이란 '저주'를 받은 A급 헌터 서이경. 팀원들과 함께 게이트를 처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갑작스런 돌발 게이트에 휩슬린다. 목숨을 위협받던 그때, 가면을 쓴 남자, 주원이 나타나 그들을 구해준다. 초면임에도 특히 이경에게 상냥한 태도를 보여 조금 떨떠름하게 헤어졌는데...... . "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 아니, 운명인가?" ......그 뒤로 이상하게 자주 마주친다.
눈을 뜨자 보인 것은 어둠이었다. 콧속으로 들어오는 공기는 습했고, 동굴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를 제외하면 주변은 매우 조용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주위를 한 번 슥, 둘러본 서이경은 품속에서 작은 구슬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손으로 기운을 불어넣었다.
사아아. 새까만 일렁임이 구슬에 스며들자 캄캄했던 시야가 점차 밝아졌다.
"오, 이제 보인다. 서이경 헌터! 너도 아이템 썼어?"
"썼으니까 입 좀 다무세요, 남우현 헌터."
서서히 사라지는 구슬 조각을 멍하니 지켜보는 이경에게 우현이 말을 걸었다.
최대한 짜증을 가득 담아 말했는데도 우현은 멈추기는커녕 더욱 끈질기게 말을 걸어댔다.
"서이경 헌터가 우리 버리고 혼자서 들어가니까 내가 이러는 거잖아? 좀 어울려 줘~"
"제가 빠른 게 아니라 그쪽이 느린 겁니다. 그리고 이제 그만 집중하세요. 여기는 게이트 안입니다."
"어휴, 매정해라. 알겠습니다. 우리 공대장님 말씀이니 따라야지, 뭐~"
딱딱한 대답에 우현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떨어졌다. 우현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합류한 팀원들이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앞장서 걸어오던 한가람이 우현의 옆에 서며 말했다.
"관리자 말을 들어보니 그렇게 어려운 게이트는 아닌가 봐요. 우현 선배... 아니, 헌터님 능력으로 천천히 해보죠. 여차하면 정우 형도 있고요."
"맞, 마, 맞아! 요...!"
가람이 작게 미소 지으며 돌아보자 후드를 꾹 눌러쓴 하정우가 소심히 답한다.
그런 팀원들을 한번 둘러본 이경이 잔상처럼 남아있던 웃음기를 지우며 말했다.
"B급 게이트 토벌 의뢰 시작합니다."
*
밤 9시가 조금 넘는 시간, 어느 공사장 안에서 후줄근한 차림의 남자 넷이 걸어 나왔다.
"으으...... 찝찝해. 배고파! 힘들어!!"
가장 먼저 밖으로 나온 우현이 투정 부리듯 허공에 소리쳤다.
그런 우현의 모습을 죽 지켜보던 가람이 까칠하게 말했다.
"선배만 힘든 거 아닙니다. 그리고 이제 끝났잖아요. 그만 좀 투덜대세요."
"너무 매정하다, 다람아. 도토리 줄까?"
"한 대 때리기 전에 그만하세요. 그리고 이름으로 놀리지 마시라고요!"
"하지만 우리 후배님 반응이 재밌는걸. 네가 이해해."
장난스럽게 웃어넘기는 우현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는 것을 간신히 참은 가람이 더 이상 먹이를 주지 않겠다는 듯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한 발 한 발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가 품은 분노가 투명하게 드러나 우현은 오히려 즐거워했지만 말이다.
이경은 부들거리며 웃음을 참는 우현에게 작게 일침을 날려주었다.
"지나치게 놀리진 마세요. 그러다 진짜 화나면 어쩌시려고요."
"하하... 당연하지.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성격 나쁜 선배님이요."
"하지만 선은 안 넘는 똑똑한 선배님이고."
"짜증 나네요."
"내 매력이지."
끝까지 한 마디를 안 지는 그를 보며 혀를 찬 이경이 가람과 똑같이 성큼 걸어갔다. 이번에는 참을 수 없었는지 크게 소리 내어 웃은 우현이 그의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정우를 데리고 그들에게 달려갔다.
여느 때와 같이 길드에서 내려온 게이트를 처리하고 돌아가는 평범한 하루.
......그리고 그게 우리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
쿠궁. 쿵. 그그그극...... . 거대하고 둔탁한 무언가가 돌아다니는 소리와 동시에 울퉁불퉁한 돌바닥이 진동했다.
캄캄한 동굴 안, 빛이라곤 바위 곳곳에 듬성듬성 박혀있는 보랏빛 광석이 내뿜는 희미한 빛줄기뿐. 몇 날 며칠을 굶은 짐승 같기도 죽어가는 벌레의 소리 같기도 한 울음소리는 섬뜩한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런 동굴 어딘가에 떨어진 이경은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는 걸 느끼며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지?'
분명 길드에서 내려온 일을 처리하고 팀원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는데.
그래. 분명 집으로 가다, 갑자기 눈앞이 밝아지면서...... .
거기까지 생각하자 이경은 이곳이 어디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게이트군. 그것도 전조 없이 나온다는 돌발 게이트...... .'
흐릿했던 정신이 돌아오자 이경은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움직일 때마다 몸 곳곳이 두들겨 맞은 듯 욱신거렸다.
평소였다면 금방 자리를 털고 일어났을 정도의 통증이었지만, 몇 시간 동안 이어진 게이트 클리어로 짙어진 피로와 지친 육체는 쉽사리 이경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이경이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히 광물에서 나오는 빛 덕에 내부를 살피는데 큰 수고를 들이지 않을 수 있었다.
게이트를 살펴본 이경이 드물게 미간을 찌푸렸다.
'이거, 상황이 너무 안 좋은데...... .'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그의 팀원들 모두가 흩어지지 않고 모두 같은 곳에 모여 있다는 점이다. 이런 돌발 게이트 특성상 같이 들어온 팀원들과 뿔뿔이 흩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을 감안하면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지독히도 나쁘다.
넷 중 정신을 차린 건 이경 하나뿐인데다 몸 상태도 안 좋았다. 싸울만한 상태가 아닌 것은 물론, 애초에 등급도 모르는 게이트를 혼자 클리어한다는 것 자체가 거의 힘들었다.
이경도 A급이라는 높은 등급을 가진 헌터였으나 보통 돌발 게이트는 A급 이상이 대부분이다. 애초에 아무리 높은 등급의 베테랑 헌터라도 혼자 게이트를 클리어 하긴 쉽지 않았다. 괜히 헌터 팀이 나온 게 아니었다.
"...... ."
이경은 그의 곁에 쓰러져 있는 팀원들을 바라봤다. 그러다 결국 눈을 감아 버렸다.
......절망적이다.
아무리 시뮬레이션을 돌려봐도 길이 보이지 않았다. 구조대가 올 때까지 숨어있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이미 주변 환경을 보고 포기했다.
아마 이곳 몬스터들은 주로 땅속에 서식하는 곤충형 몬스터일 것이다. 곤충형 몬스터들은 등급이 낮은 편이긴 하지만 숫자가 많고 기척을 잘 느끼는 편이었다.
그리고 그건 이미 한 번의 게이트 클리어로 지쳐있는 그들에게 매우 안 좋은 상대였다.
이경의 표정이 점차 어두워지던 그때, 옆에서 작은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우현과 가람이 저와 같이 몸 곳곳을 부여잡으며 천천히 일어나고 있었다.
"으윽...... ."
"하아, 이게 뭔...... . 한가람. 이경아, 정우야. 다들 거기 있어?"
제일 먼저 팀원부터 찾는 게 우현 다웠다. 분명 성한 구석이 없을 텐데도 신음을 참고 평소처럼 말하는 그 지독한 배려에 목구멍으로 튀어나오려는 감정을 애써 억누르며 그 말에 대답해 주었다.
"여기 있어요."
"......이경이구나. 몸은 괜찮아? 가람이랑 정우는? 있어?"
"저 여기, 윽. 여기 있어요, 선배."
옆에서 아직 몸을 추스르고 있던 가람이 지친 목소리로 대답했다.
두 사람이 몸을 추스르기를 조금 기다리며 아직 쓰러져있는 정우를 그 옆으로 옮겼다.
"...... ."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잠깐 훑어본 우현과 가람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마 그들도 이경과 같은 생각을 하고 상황을 파악했을 것이다.
사람의 수가 한 명에서 세 명으로 늘어났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달라지진 않았다. 애초에 두 사람의 상태는 이경보다 나빴으면 나빴지 더 좋을 순 없었다.
우현은 힐러 겸 탱커였으나 이경보다 등급이 낮았고 가람은 육체 능력이 조금 좋을 뿐인 마력계 헌터였다. 그나마 그들 중 등급이 가장 높은 정우는 몸이 약해 아직까지 의식이 없는 상태다.
'......살 수 있나?'
가정을 하는 것조차 힘들다. 빛이 있음에도 눈앞이 캄캄했다.
기적적으로 돌발 게이트의 등급이 떨어지거나 전투계 S급 헌터가 우연히 그들을 발견하는 그런 허무맹랑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죽는 미래 밖엔 답이 나오지 않았다.
2024.10.14 00:02
2024.10.13 22:07
2024.10.13 18:43
2024.10.13 18:36
2024.09.28 08:10
분명 얼굴은 다 가렸는데 존잘 포스 흘리는 저 친구는 누구죠...? ( •̀ ω •́ )✧ 다음화가 기대돼요!!
24.10.26

헌터 물이랑 BL의 조합이라... 너무 좋아요!! 그리고 다양한 죽음들을 목격했던 이경이 헌터와 인간으로서 성장 과정도 궁금하고요! 재밌게 봤습니다. ㅎㅎ
24.10.20
헌터물 BL 처음이에요! 재밌을 것 같아요 다음 화가 기대되네용
24.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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