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표지
상남자특)지옥에서 무쌍찍음
profile image
홍삼더덕
120화무료 25화

매주 일 월 화 수 목 금 토 연재

조회수 2천좋아요 0댓글 1

Lasciate ogni speranza, voi ch'entrate(이곳에 들어온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소시민처럼 살던 나는 휴거 이후에도 선택받지 못했다. 선인은 천국으로, 악인은 종말로 치닫는 지옥의 나락에서 이성을 잃을 때, 극소수만이 지옥에서 살아있다.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수단은 단 하나...

#판타지#아포칼립스#생존물#성장물#시스템/상태창

오늘도 자명종은 울리고 나는 또다시 출근해야 한다. 삶은 권태롭고 재미없지. 그것은 만고의 진리라고.

 

사람은 왜 사는 것일까. 정확히 말하면 나는 왜 사는 것일까. 삶이 고해의 바다라는 것은 이때까지 모든 사람들이 증명해 온 바가 아닌가.

 

나는 어제도 잠을 자면서 평화롭게 내가 죽기를 바랐다. 물론 그것은 나만의 평화겠지만.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자취방에서 월세가 이체되지 않는 것을 궁금하게(혹은 노엽게) 여긴 집주인 아주머니가 집에 들어오면서 잔뜩 쉬어 버려서 쇠파리가 잔뜩 알을 깐 내 시체를 보며 집이 떠나가도록 고래고래 비명 지르는 것은 절대 평화로운 광경이 아닐 것이다.

 

그녀는 과연 내가 죽은 것에 놀란 것일까, 자신의 소중한 자취방에 사람이 죽은 것이 놀라울까.

 

하지만 누군가 그러지 않았나. 항상 똑같은 일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발생하길 바라는 것은 정신병이라고.

 

난 늘 살면서 살기를 바란 적은 없지만 자살을 시도하거나 변화를 꾀하지 않고 늘 이 모양 요 꼴로 살았다.

 

또 누군가가 말했지. 광기의 기본 조건이 뭔지 알아? 똑같은 것을 반복하는 거야. 그러니까 종합해 보면 난 늘 광기에 젖은 정신병자로 사회에서 산 셈이다.

 

하지만 나처럼 눈에 안 띄는 정신병자도 있나? 살인도 하지 않고 폭력도 행하지 않으며 심지어 대로변에서 악에 가득 차서 자기 분노를 못 이겨 갑질하며 소리 지르지도 않는다. 그 정도는 재벌 총수 딸도 하는 정도인데 말이지.

 

광기에 사로잡힌 천재처럼 뭔가를 만들지도 않았고 그냥 근속 4년 차 관리직 비정규직 직원으로 살았다. 그냥 살았다. 무얼 할 용기도 의지도 없이 그냥 살았다.

 

무기력한 마음으로 화장실에서 억지로 세수를 한다. 길 가다가 봐도 돌아볼 사람 하나 없는 얼굴에 평범한 키, 시니컬한 성격.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것들 중 하나였다.

 

어느새 거뭇거뭇 난 수염을 대충 밀어서 지워내고 이도 어떻게든 닦았다.

 

어제 벗어둔 옷은 마치 탈피한 후의 껍데기마냥 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난 그 허물을 다시 입는 곤충이지. 절대로 탈태하지 못하는. 나는 허우적허우적 온통 엉망인 방을 헤엄쳐 나왔다.

 

통근 지하철은 늘 뭔가로 가득 차 있었다. 보통은 출근하는 나와 같이 퀭한 얼굴을 한 누군가들이었고 첫차를 타고 이제 잠을 청하러 가는 청춘들도 있었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그 친구들의 눈 밑은 다크서클로 가득 차 있었다. 누군가는 모르는 이와 만루 홈런을 때렸을 것이고 누군가는 빈손으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고 있을 것이었다.

 

그 중 한 사람만이 늘 빛났다. 출근하는지 어딜 가는지 모르겠지만 늘 단정한 오피스 룩에 초롱초롱한 눈빛.

 

보기만 해도 베일 듯한 콧날에 모든 여인들이 지나가면서 “언니 립스틱 몇 호 써요? 너무 이쁘다!”라고 말할 것만 같은 그 오묘한 입술까지.

 

건강미 넘치는 갈색 피부는 마치 아프리카를 군림했던 누비아 왕비를 보는 듯하다.

 

이름도 성도 모르오. 다만 여의도 어디선가 내린다는 것밖에. 환승을 하러 가는지 거기서 밖으로 나가 회사 어딘가로 들어가는지도 알 길이 없다.

 

한 번도 말을 걸어본 적도 없다. 전화하는 것을 엿들어 본 적도 없기 때문에 그녀의 목소리가 어떤지도 모른다. 아마 옥쟁반에 구슬 굴러가는 소리라는 상투적인 표현으로는 다 표현 못 할 그런 소리가 나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알 바는 아닐 것이다. 보통 저렇게 괜찮은 커리어 우먼의 주변에는 언제나 괜찮은 남자, 혹은 용기 있는 우뭇가사리들이 끼는 법이다.

 

멋진 사람들은 늘 자기만의 어항을 들고 다니면서 우뭇가사리들을 덜어내고 그중 가장 괜찮은 물고기를 취사선택하는 편이니까. 난 우뭇가사리도 아니고 어항에 낀 물 때 정도일 것이다.

 

용기를 서양에서는 Gut이라 하고 한국 고어로는 속이라고 한다지. 어쨌든 그런 식으로 볼 때 난 내장 없는 원형 동물에 가까울 것이다. 어쨌든 gut이나 속이나 내장인 것은 매한가지지만 나는 용기 따위는 이미 수없이 잃어버린 종자인 셈이다.

 

사회에서는 그럭저럭 수요가 있는 종자다. “푼돈 받고도 불만 없이 하루하루 사는 종자 팝니다.”라고 말했을 때 편의점 점주들만 득달같이 달려들 것은 불 보듯 뻔하지.

 

뭐 어쩌겠는가. 갯강구가 자신의 삶을 비관한다고 하여 갯강구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자신을 바꾸는 것은 위대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다.

 

관성이라는 것이 단순 물리법칙만은 아니다. 내가 이렇게 살고 있고 이런 꼴로 사는데 외부나 내부에서 바꿀 생각이 없다면. 그게 관성이지.

 

직장에서 내가 하는 일은 매우 간단하다. 지게차가 가지 못하는 곳까지 배달하는 간단한 업무다. 팔다리만 달렸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사회에 큰 기여를 하는 것은 아닌 듯하고, 큰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며 만족감조차 없다. 그래서 더더욱 나 같은 인물에게 어울리는 일일지도 모르지. 그나마 장점은 내가 쉬지 않고 움직이고도 군말 없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무료하고 재미없는 일상이 지속되는 날이었다. 아마 녹화해 놓은 테이프를 보면 나의 하루하루는 매일 똑같을 것이다.

 

나와 위대한 사람의 공통점은 항상 똑같은, 반복되는 계획성 있는 하루를 산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매일매일 위대해지고 누군가는 더욱더 비참해지지만.

 

입사할 때 한번 보고 본 적 없던 인사과장이 날 불렀다. 곧 재계약 이야기가 나올 때가 됐으니까. 그리고 나는 재계약에 실패했다. 난 4차 산업혁명의 산업 역군인 자동화 기계에 밀려 직장을 잃었다.

 

퇴직금으로 3달 치 월급이 나왔다. 딱히 손을 흔들어 준다던가 동정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없었다. 당연히 그러겠지. 기계 부품에서 혼자 헛돌고 있던 부품 하나 떼어낸다고 기계가 돌아가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난 애초에 저 사람들 안에 섞여 있었던 적이 없던 것처럼 황급히 회사를 떠났다.

 

당장 뭘 해 먹고 산담. 당장 집도 빼야 될 것 같은데. 저축한 돈도 얼마 되지 않았다. 고작 난 숨만 쉬면서 퇴근하면 인터넷이나 하다가 살았다.

 

데이트 같은 상호작용은 꿈도 꾸지 않았다. 못 오를 나무는 눈길도 주지 않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비천한 몸뚱이 외에 들어가야 할 돈이 너무도 많았다.

 

사업이 망하고, 어머니의 사후 충격으로 백수광부가 되어버린 아버지는 살려두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부담이었다.

 

난 차라리 그의 잿빛 입술 위에 베개를 올려 비참한 삶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을 하루에도 세 번씩은 꿈꾸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을 할 용기조차 나에겐 없었다.

 

가진 것들은 정리한 후 일자리를 찾았다. 다행히도 고향인 부산에서 모텔 야간을 보는 일이 있었다.

 

받는 돈은 비정규직이랑 별 다를 바 없게 적었지만, 최소한 여기에는 밤에 어떻게 눈이라도 붙일 장소가 있었다. 청소하고 열쇠 내주고, 나의 얼마 안 되는 재능으로도 할 수 있는 충분한 일이었다.

 

집주인에게 상황을 이야기하고 집을 뺐다. 돈밖에 모르는 꼬장꼬장한 집주인은 나이 들고 살찐 50대 아줌마였다.

 

그녀가 숨을 쉴 때마다 역한 술 냄새와 담배 내음이 올라왔다. 그녀는 나의 거취보다 공실이 하나 생긴다는 것에 분노하고 있었다. 마치 실패한 인생의 한 사람 때문에 자신도 공실 관리를 실패했다고 느끼는 듯이.

 

모텔은 수많은 인간 군상이 지나가는 곳이었다. 서로를 탐닉하기 위해서 오는 연인들, 오늘 처음 본 것이 분명하지만 잔뜩 취해서 성교는 할 수 있는 젊은이들, 연인 같아 보이지 않고 부부 같아 보이지도 않지만 어쨌든 열쇠를 받아 가는 중년들.

 

잠만 청하기 위하여 온 회사원들, 남자끼리 손을 잡고 온 사람들, 정말 다양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이 동네에서 성교를 하는구나.

 

그렇게 내가 첫 월급을 받을 만한 시기였다.

모텔은 환한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전구 때문은 아니었다.

항상 여의도에서 내리는 그 여인이 내는 빛 때문일 것이다.

부산에 있는 이런 곳까지 오다니. 놀러 온 것일까?

 

그녀가 날 알 리 없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면서 돈을 내밀었다.

아마 그 미소의 의미는 고작해야 모든 사람에게 따듯하고 다정한 그녀라는 사람이 늘상 내미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말을 걸어 볼까 하는 쥐똥만 한 용기는 이내 금방 사라졌다.

단념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는데 뭘 더 어쩔 수 있단 말인가.

단념은 쉽고 필요한 것은 싸움에서 진 수컷마냥 환부나 핥는 것뿐이다.

 

뷰컴즈 주식회사

대표 : 김학성 | 전화 : 1811-8389 | 이메일 : help@gling.co.kr

    고객센터이용 약관개인정보처리방침청소년보호정책유료 콘텐츠 제공 약관

사업자 등록번호 : 492-88-01088 | 통신판매업신고번호 : 2022-서울영등포-1768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당산로 171, 13층 1301호

Copyright © viewcommz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