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표지
악당의 끝은 선택이 아니다
profile image
진수윤
166화무료 3화

자유 연재

조회수 105좋아요 0댓글 0

『제국력 xxx년 x월 xx일 이벨리아 로타 볼셰이크 사형. 제국과 대륙 전역에 걸쳐 악명을 떨치던 악의 귀족. 악의 축인 이벨리아 로타 볼셰이크. 지지부진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녀의 재판은 아주 빠르게 끝났다. 사형.... [제국의 꽃] 종장 中』 [제국의 꽃]이라는 흔한 로맨스 소설 속 사형이 예정된 악녀, 이벨리아 로타 볼셰이크로 빙의한지 3년. 살아남기 위해 원작을 바꿔보려 발악하지만, 오로지 실패만을 거듭하고 체념해가고 있을 때. 이벨리아가 모르는 사이 원작의 내용이 조금씩 더 많이 비틀리고 무너지기 시작하는데.... *** 그가 원작을 비튼다면 어떻게 될까. 그에게 돌아오는 대가는 무엇인가. 이벨리아가 짊어져야 하는 대가는 알고 있었다. 원작은 아주 사소하게 비틀어지기만 해도 암살자를 보냈다. 그녀를 노리고 어디에선가 자꾸 튀어나오는 놈들을 상대하는 건 리프였다. 더해서 그녀의 일이 수십 배로 불어났다. 덕분에 보좌관인 그의 일도 수십 배가 되었다. 만약 자신이, 이야기의 마지막에 죽어 없어지는 조연이 원작에서 벗어나려 한다면……. 리프는 이벨리아를 한층 더 끌어당겼다. 그가 원작을 비트는 대가는 아마도, 아니 확실하게 이 세계에서 지워지는 것이었다. 죽음? 죽는 건가? 그런 게 아니었다. 죽음 같이 명료한 것이 아니었다. 발끝부터 부서지는 더러운 느낌. 손끝부터 흩어지는 극렬한 공포감. 원작이라는 세계 너머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가리를 벌린 끝을 알 수 없는 어둠뿐이었다. 그 불길하고 꺼림칙한, 온몸을 휘감아 녹여버리는 공포. 그래서 그는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망설였고, 머뭇거렸다. 그는 귀를 막아 그녀의 비명을 외면했고, 눈을 감아 그녀의 고통에서 도망쳤다. 하지만 더는 놓아둘 수가 없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따위는 상관없을 정도로 자신이 그녀만을 바라본다는 걸 깨달았을 때, 간질거리는 가슴께를 문지르며 스스로를 비웃었다. 하지만 리프는 제 마음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녀를 위해 무저갱의 어둠같이 컴컴한, 온몸이 후들거리는 곳으로 들어가는 것을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 자신은 그림자, 어차피 아무도 자신을 기억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까 원작이 자신을 지워버려 그녀가 자신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을 거다. 리프는 눈을 감았다. 그녀의 이마에 제 이마를 기댔다. 열이 나는 이마에서 온기가 전해져왔다. "제가 할 일들로 인해 이 세계에서 먼저 지워진다 해도 당신의 말대로라면 고작 단어로 이루어진 것이 사라질 뿐이겠지요. 그러니, 부디 아파하지 말아 주십시오, 부디 홀로 시들어가지 말아 주십시오. 부디 당신만은…." 당신만은 온전히 자유로워지기를….

#서양풍#사내연애#계략남#왕족/귀족#영혼체인지#빙의#소유욕/독점욕/질투#능력남#존댓말남#뇌섹녀#능력녀#까칠녀#우월녀#피폐물#로맨스판타지

악당의 끝은 선택이 아니다


#1








사람이란 살다 보면 포기란 걸 배운다.


여자는 불타는 노예 경매장을 멀거니 바라보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여기저기에서 그녀의 부하가 지르는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으니까.


그들을 베어 넘기며 날뛰는 남자는 익숙한 이였다.


불티가 바람에 실려 그녀의 코앞에서 부스러졌다.


‘내가 저거 준비한다고 며칠 밤을 새웠더라?’


열린 지 고작 이틀. 단 이틀 만에 모조리 박살나서 불타오르는 경매장을 눈앞에 두니 마른 웃음만 났다.


그녀는 이내 얼굴을 굳히며 돌아섰다.


잘근잘근 씹은 아랫입술에서 비릿한 피 맛이 맴돌았지만, 그 또한 익숙했다.


돌아선 그녀의 등 뒤로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경매장이 완전히 무너졌다.


‘그래, 이번엔 저런 식으로 안 될 거였나 보네.’


돈이 얼마가 들었는지 상관없었다.


그녀가 시간과 노력을 얼마나 쏟아부었는지도 전혀 상관없었다.


그냥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일 뿐.


그도 그럴 것이.


그래왔으니까.


그랬으니까.


앞으로도 그럴 거니까.


소설 속 세상에서 악당이 하는 일의 끝이 좋을 리가 없을 테니까.


악당의 끝은... 선택이 아닐 테니까.




* * *




『제국력 xxx년 x월 일


이벨리아 로타 볼셰이크 사형.


제국과 대륙 전역에 걸쳐 악명을 떨치던 악의 귀족. 악의 축인 이벨리아 로타 볼셰이크. 지지부진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녀의 재판은 아주 빠르게 끝났다.


사형.


그녀의 죄목은 실로 인간이 저지른 것이 맞는 것인가 싶을 정도로 악독한 것들이었다. 그중 가장 중한 죄는 성녀 살인미수죄였다.


사형집행은 황가에서 주관했다. 사형 언도를 받고 끌려나가는 그녀를 비호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동정하는 이도 없었다.


이후 그녀의 죄를 밝히고 잡아들이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카이케이언 드류 헤이리언, 드류 백작은 제국 역사상 전쟁영웅에게만 주어졌다는 제1등급 훈장을 수여 받는다.




[제국의 꽃] 종장 中』




* * *




두터운 집무실 문 너머로 작은 노크 소리에 뒤이어 늙은 집사의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후작님, 드류 백작이 방문했습니다.”


아무런 답도 나오지 않았지만, 집사는 그대로 문을 열고 집무실로 들어섰다.


답이 없을 거라는 것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으니까.


그는 집무실 바닥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중요’서류들을 능숙하게 피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멈춰 선 곳은 집무실의 끝 새카맣고 거대한 책상 앞이었다.


“후작님.”


“······.”


웬만한 성인 남성이 두 팔을 다 벌려도 못 미칠 기나긴 면적을 자랑하는 시커먼 책상 위에 서류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묵직한 종이 다발에 휩싸여 후작의 머리끝만 간신히 보였다.


“후작님.”


집사가 다시 그의 주인을 불렀지만, 돌아오는 답은 여전히 없었다.


조금 더 기다린 그가 목을 가다듬으며 바로 옆 책상에 고개를 박고 있는 사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리아나프 아켄델 보좌관님.”


“······.”


리아나프, 통칭 리프라고 불리는 사내 역시 답이 없었다.


집사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팔을 들었다.


-탕!


보좌관의 책상을 가볍게 내려치자, 책상에만 고정되어있던 리프의 얼굴이 미적미적 올라왔다.


이윽고 보좌관의 입에서 멍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


“아켄델 보좌관님, 후작님께 드류 백작님이 방문했다고 전해주십시오.”


“어?”


“그럼 이만, 준비되시면 바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모쪼록 너무 늦지 않게 부탁드립니다.”


“어?”


리프는 초점이 맞지 않는 눈을 깜박거리며, 단정한 걸음으로 집무실을 나가버리는 집사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집사가 나간 문이 소리도 없이 슬며시 닫히는 것까지 확인한 그는 곧 손안에 있는 서류로 눈을 돌렸다.


“이게 그러니까 안 맞는 숫자가 있었는데 어디였더라……. 아, 이 앞 장이었…….”


사흘간 수면시간 1시간, 잠잘 시간도 없는데 식사시간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었다.


그나마 먹은 거라곤 초콜릿 4조각이 전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그의 뇌는 더 돌아가길 거부하고 있었다.


기실 신체 자체는 멀쩡했다.


그에게 삼일 정도 먹지도, 자지도 않는 건 그다지 큰 타격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정신은 그렇지 않았다.


목표가 있기에 그것을 위해 수면이나 식사를 포기해야만 할 때는 얼마든지 버틸 수 있었다.


뷰컴즈 주식회사

대표 : 김학성 | 전화 : 1811-8389 | 이메일 : help@gling.co.kr

    고객센터이용 약관개인정보처리방침청소년보호정책유료 콘텐츠 제공 약관

사업자 등록번호 : 492-88-01088 | 통신판매업신고번호 : 2022-서울영등포-1768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당산로 171, 13층 1301호

Copyright © viewcommz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