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성공한 가수로서 4번의 인생을 살았는데, 5번째 삶은 로드매니저로 시작한다.
1. 4번의 가수 인생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난 헬리오스의 삶은 아주 순탄했다.
30세의 마지막 공연 날까지는….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그는 온 그리스인들의 우상이자 선망의 대상이었다.
신이 내린 재능과 지성으로 그가 이뤄낸 고대 발성의 기틀을 수많은 추종자가 따랐고, 그 결과 역사상 최초의 악극인 그리스 고대 악극이 탄생했다.
아테네의 통치자 티라노스는 그의 예술적 공로를 치하하여 에크레시아 입성을 허락했다.
그의 예술성은 이렇게 정치적 성공의 정점을 끌어낼 정도로 모든 분야를 초월했다.
하지만 비극은 한 여자의 무모한 추종에서 시작됐다.
헬리오스의 노래를 광적으로 좋아한 귀족 부인 헬레나의 집착은 결국 그의 목을 그녀의 남편 카이로스의 제물로 만들어 버렸다.
헬리오스의 머리는 카이로스의 칼에 너무도 허무하게 바닥에 떨어졌다.
공연 중이었던 무대 뒤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떨어져 나간 머리에 혈류가 남아있던 아주 짧은 순간,
그는 마지막 소원을 빌었다.
다음 생에는 더 좋은 가수가 되게 해 달라고….
17세기 말,
이탈리아 나폴리 빈민가에서 태어난 브루스코는 9살이 되자마자 가난을 벗어나려는 부모의 선택으로 남성성을 잃었다.
카스트라토….
남성이면서 여성의 목소리를 표현하는 오페라 가수.
다행히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기에 어렸을 때 포기한 남성성에 대한 큰 대가를 누렸다.
그는 타고난 목소리와 감각, 그리고 영민한 머리에서 통제되는 완벽한 발성 기술을 통해 극한의 목소리를 뽑아냈다.
헨델은 그를 추앙하며 오페라 ‘리날도’를 작곡했다.
그리고 그를 오페라의 역사를 이끌어 나갈 위대한 성악가라 평했다.
절제된 아름다움과 격정적 감성을 모두 담고 있는 그의 소리에서 벨칸토 발성이 시작됐다.
이렇게 브루스코는 고대 그리스 악극을 계승한 이탈리아 오페라의 탄생을 이끌며 바로크 오페라 시대의 상징이 되었다.
유난히 칼을 두려워했던 그는 반폭력을 예술로 전파하며 평화주의자로서도 유럽 전역에서 칭송받았다.
남성성을 잃은 그였지만 그 곁에는 항상 카테리나라는 동료 성악가 여인이 있었다.
성적인 만족 없이도 항상 그를 격려하며 옆을 지키던 미래를 약속한 연인.
어느 날, 극장 뒤 소품실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에 문을 열어 본 브루스코는 모든 게 송두리째 무너지는 장면을 보고 말았다.
격렬한 몸짓으로 한 몸이 되어 신음하는 두 남녀…. 남자는 극장장이었고, 여자는 다름 아닌 카테리나.
이탈리아 오페라의 역사를 빛낼 것이라 평가되던 대 성악가 브루스코는 그날 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죽어 가던 그는 마지막 소원을 빌었다.
다음 생에는 더 좋은 가수가 되게 해 달라고….
20세기 초,
뉴욕 브루클린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매튜 코너스는 아버지를 따라 막노동을 전전했다.
20살이 된 어느 날, 우연히 친구를 따라 브로드웨이의 오디션 장소에 갔다가 급하게 앙상블을 찾는 지휘자의 요청으로 노래 한마디를 불렀다.
그는 노래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뮤지컬의 앙상블로 한 달을 출연하면 막노동 임금의 다섯 달 치를 벌 수 있다는 사실에 혹했다.
웬일인지 그의 노래를 들은 지휘자는 격앙된 표정으로 본격적인 뮤지컬 공부를 권유했다.
돈이 없다고 거절하는 매튜에게 지휘자는 자신이 모든 학비를 부담하겠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결사반대에 집을 나와 친구 집에 들어간 그는 이렇게 뮤지컬 공부를 시작했다.
1년여의 훈련을 마친 그는 전격적으로 브로드웨이 초대형 극장의 주역으로 기용됐다.
짧다면 짧은 기간, 하지만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그에게는 남들의 10년보다 더 충분한 기간이었다.
듣도 보도 못 한 신인 배우의 캐스팅에 평단과 관객 모두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노래가 시작되자 비판했던 이들 모두 격렬한 환희와 감동에 휩싸였다.
완벽한 뮤지컬 배우의 탄생.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감성, 본능을 자극하는 목소리, 관객을 끌어드리는 극적인 호흡과 표정.
전례 없는 천재 아티스트의 탄생에 브로드웨이는 들썩거렸다.
이후 매튜 코너스는 브로드웨이를 대표하는 명사로서 10년여에 거친 최전성기를 보냈다.
재능이 관심을 만들고, 관심이 애정을 만든다고 했던가, 그는 자신의 삶에 큰 성취감과 만족을 느꼈다.
심한 의처증으로 그 어떤 여자와도 정상적인 관계가 불가능했다는 것만 빼고는….
길어야 1년, 결국 버티지 못한 여자들이 그의 곁을 떠났다.
모두는 아니었다.
마지막 여인, 그녀는 자신이 떠나는 대신 그를 떠나게 했다.
끊임없는 그의 의심에 괴로워하다 결국 정신이 이상해진 그녀는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그의 커피잔에 청산가리를 부어 버렸다.
커피를 반쯤 마신 매튜 코너스는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자각했다.
그는 마지막 소원을 빌었다.
다음 생에는 더 좋은 가수가 되게 해 달라고….
1994년 한국,
- 두두두두두
RBS 공영 방송 전속 오케스트라에 울려 나온 팀파니 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긴박했다.
모두가 숨을 죽인 이 순간.
드디어 시상식의 진행자가 마이크를 입에 가져갔다.
“1993년! 대한민국 가요대상… 영예의 주인공은?……… 한지혁!!!”
한지혁의 이름이 호명되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물론 전국에서 TV에 매달려 있던 시청자들도 다들 하나 같은 말을 쏟아냈다.
- 와, 결국 한지혁이 대상이다!
- 뻔한 결과지 뭐!
- 오준성은 어떡하냐? 자기 코러스나 넣어 주던 죽마고우가 결국 자기를 이겨 버렸으니.
오늘 대상의 주인공 한지혁, 그는 우연한 계기로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친했던 친구이자 오늘 끝까지 경합한 가수 오준성의 부탁으로 그의 앨범에 화성만 넣어 준 게 시작이라면 시작.
그러나 앨범이 발매되자 세간의 시선은 오준성이 아닌 한지혁에게 꽃혔다.
- 화성을 넣은 사람 목소리가 훨씬 좋은데.
- 주역과 단역이 바뀐 것 같다!
- 화성 나오는 데만 듣게 되네.
오준성은 이미 유명 가수였고 대한그룹 회장이었던 아버지의 도움으로 탄탄대로를 걷고 있었다.
하지만 한지혁에 꽂힌 관심에 오준성은 기쁘게 그를 응원했다.
한지혁의 데뷔 앨범이 오준성의 앨범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 나쁜 놈, 네가 결국 차트 1위를 차지하다니….
- 미안하다 준성아. 다음에는 네가 해라.
- 됐다 인마. 너! 나 때문에 성공한 줄 알아.
- 당연하지. 하하하. 고맙다.
- 아무튼 축하한다, 한지혁!
이들의 스토리는 연예계 미담의 단골 메뉴였다.
죽마고우인 두 스타, 그리고 그저 화성만 넣었던 친구의 더 큰 성공.
당연히 스토리의 주연은 한지혁이였고 오준성은 그저 그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조연이었다.
본격적인 전성기에 접어든 한지혁은 마치 수백, 수천 년을 노래한 사람인 양 초월적인 노래 실력을 보여 주었다.
그가 노래하면 단점조차 장점으로 발현됐다.
이렇게 인간적인 미완까지도 매력으로 승화해 내는 그를 사람들은 천재 가수라 불렀다.
시상식이 끝나고 방송국 주차장.
멀리서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한지혁이 나타나자 오준성이 활짝 웃으며 그를 맞이했다.
“한지혁! 결국 네가 먼저 해냈구나. 아주 다 해 먹어라! 다 해 먹어!”
“운이 좋았다! 하하하.”
“운은 무슨, 당연한 결과다. 축하한다, 한지혁!”
“고맙다 준성아. 다 네 덕분이다.”
“웃기시네. 저 입바른 소리….”
“하하하.”
2025.04.02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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