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황위에 오를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버림받고 회귀했다. 정신을 차리니, 황태자에게 고백받기 직전이었다. “그러니 부디 나와 결혼해줘요, 아리엘.” 누군가가 아리엘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며 사랑을 고백하고 있었다. 아리엘은 고개를 돌려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는 조금 전 그녀를 내쳐버린 그였다.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아리엘은 그대로 손을 들어 올려 그의 뺨을 짝, 갈겨버렸다. 그에게 버림받은 것이 분하고 원통했다. 그러니 처절하게 악녀가 되어 복수하려고 했는데. “거기서 뭐 해?” 처음 보는 낯선 드래곤은 자꾸만 친한 척을 하고. “어떻게 해야 진심이라고 믿어줄 겁니까?” 황태자는 갑자기 착한 척을 한다? 혼란스러운 아리엘과 회귀 전과는 달리 멋대로 흘러가는 난장판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회귀물/여주남주 손잡고 복수물/외강내유여주/드래곤대형견남주/알고보니먼치킨요정여주]
#1
나와 결혼해줘요, 아리엘
나른한 황궁의 오후, 전날 파티가 있었던 탓에 황후인 아리엘 또한 느지막이 일어났다.
그녀는 밤새도록 술을 마셔 어질거리는 머리를 짚었다. 그러다 어쩐지 속이 울렁거려, 바람을 쐬러 테라스로 나아갔다.
문을 열자 쏟아지는 바람이 시원했다. 그에 한숨 돌리고 있는 아리엘의 눈에 두 남녀가 보였다.
아예 숨길 생각도 없는지, 두 사람은 서로의 입술을 급하게 탐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리엘이 머무는 황후궁 앞에서.
아리엘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낯익은 여인이 슬쩍 고개를 들어 아리엘을 보았다. 아리엘과 눈이 마주친 이는 로살린 백작 부인이었다.
“안.녕.하.세.요?”
그녀가 입 모양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런 그녀의 입술을 황제가 다시금 덮쳤다. 그의 저돌적인 스킨십에 백작 부인은 야릇한 신음을 흘리며 웃었다. 그 목소리가 아리엘의 귓가에 닿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백작 부인은 자타가 인정하는 황제의 정부였다.
‘…또 왔네.’
이곳은 황후궁에 배속된 정원이었다. 은밀한 밀담을 취하는 두 남녀가 찾아들기에 적합한 장소는 아니란 뜻이다.
그러나 아리엘은 그들에게 무어라 할 힘이 없었다. 그 장면을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아리엘은 그저 뒤돌아 테라스를 나왔다.
하기야 그녀는 이미 망해버린 제국 출신의 황후였다. 당장에라도 냉궁에 유폐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 터였다.
‘다행이 아니라, 적당한 시점을 재고 있는 거겠지만.’
아리엘은 손을 꾹 쥐었다 폈다. 태연한 척했지만, 당장이라도 분노가 터질듯해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가슴께로 아릿한 통증이 번졌다. 황제에게서 느낀 배신감에 힘이 감응한 모양이었다.
“아윽…!”
아리엘이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은 바닥에 어지러이 널렸고 온몸에선 식은땀이 뚝뚝 흘렀다.
힘이 날뛰는 탓에 온 신경이 폭주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아리엘이 겨우겨우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하는 순간, 예민해진 귀로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이래도 돼요?”
“무엇이 걱정이지? 어차피 곧 유폐될 여자인데. 말했잖아, 그녀는 이미 허수아비일 뿐이야. 넌 내키는 대로 굴면 돼.”
‘유폐……. 곧 되는구나.’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리엘은 무언가에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간 술에 빠져 살며 애써 현실을 외면하려 했지만 이제 그조차 끝인 모양이었다.
아리엘은 부드러운 침의가 구겨지도록 힘주어 가슴팍을 움켜쥐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힘이 당장이라도 폭주할 듯이 위험하게 가시를 세우고 있었다. 그건 스타레스 제국의 초대 황후가 지니고 있었다던 요정의 힘이었다.
감당하지도 못하는 힘을 어째서 물려받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유례없이 강한 힘 덕에 아리엘은 참지 못할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가야만 했다.
아리엘은 아름다운 정원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다, 겨우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런 아리엘의 곁으로 거센 바람결이 날아와 그녀를 뒤흔들고 지나갔다.
머리카락이 마구잡이로 헤집어졌다. 자기 전 곱게 빗어 내린 붉은 머리칼이 그녀의 눈앞에서 나부꼈다.
아리엘은 그것을 잡아다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리엘의 손에서 증오의 기운이 흘러나와 그녀의 머리카락을 파스스, 불태워 재로 만들어버렸다.
‘이제 나는 나조차 증오하게 된 것인가.’
아리엘은 그것을 바라보며 조소했다. 그녀의 손 위로 재가 된 머리카락이 바람에 스쳐 날아갔다.
바람에 흩어져 날아가는 재를 멍한 눈으로 좇던 아리엘은 그대로 눈물 한 방울을 뚝 떨구었다. 그녀의 볼을 따라 눈물이 흐르며 긴 자국을 남겼다.
아리엘은 그것을 닦아내지도 않고 멍하니 정원만 바라보았다. 지치고 피곤해서 더는 무얼 할 기력조차 남지 않은 것이다.
요정의 힘은 그녀의 감정에 반응해서 아무 때나 흘러나오고는 했다. 툭하면 폭주하는 힘 덕에 그녀는 아무와도 접촉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괴물 취급하며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힘이 폭주하기 시작한 것은 오 년쯤 전부터였으니까.
정확히는 스타레스를 떠나 아고니아의 황태자와 결혼을 하면서부터. 아니 그 지독히도 우울했던 결혼생활을 삼 년간이나 지속하면서부터였다.
정략결혼이라는 것은 원래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도 무언갈 기대하며 사랑을 갈구했던 그녀가 바보였던 것일 뿐.
그러나 이제 아리엘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애당초 그녀가 이룩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그동안 출생에 기대어 꽃길을 걸어왔을 뿐이니까.
‘이제 내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꽃 같던 아름다움도 젊은 날의 영광도 모조리 사라졌다. 그녀는 망해버린 제국의 황녀였고 응당 죽어야 마땅한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러니 유폐되는 것조차 영광으로 여겨야 할지도.’
절망하는 아리엘의 뒤로 여전히 행복해 보이는 남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대가 원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치워주지.”
“어머, 절 악역으로 세우시는 건가요?”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는 그녀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보지 않아도 그런 말을 하는 황제의 표정이며 눈빛이 그리듯이 상상됐다.
그 말을 들은 아리엘이 한 손을 들어 눈물을 쓱 닦아내었다. 그리곤 아무렇지 않은 투로 몸을 일으켜 테라스 앞에 섰다.
엉망이 된 아리엘의 눈에 단정히 정복을 갖춰 입은 황제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이야 다른 여자와 놀아나고 있지만, 한때 그는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했었다.
더없이 사랑스러운 연인을 대하는 얼굴을 하고서. 그리고 그는 지금 저 여자를 그런 눈으로 보고 있었다.
‘하긴, 사랑이란 게 존재할 리가 없잖아?’
아리엘은 저 여자 또한 자신처럼 비참하게 내쳐지기를 바랐다. 그렇게 타인의 불행을 바라면서까지, 이 지독한 세계에 사랑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그러면 안 되지.’
그리고 그 원망은 곧 황제에게로 향했다.
사실 아리엘이 황제를 사랑했던 이유는 다 그 때문이었다. 자상하게 미소 지으며 사랑을 속삭이던 것도 그녀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은 것도, …그리고 청혼을 해온 것도 모두 그였으니까.
아리엘은 순진하게도, 그 거짓 사랑을 믿어버렸을 뿐이었다.
반짝거렸던 과거를 회상하던 아리엘이 입술을 짓씹으며 테라스 아래의 남자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시선을 느꼈는지 황제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
그의 눈동자엔 경멸의 감정마저 담겨있었다.
이제 황제는 그녀를 보며 표정관리조차 하지 않았다. 대놓고 불쾌감을 드러내는 그를 보니, 아리엘은 그동안 외면하고 있었던 현실을 기어코 맞닥뜨린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황녀로서 곱게 키워지고 황후라고 떠받들어지며 살다 보니 현실감각을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그래, 이게 내 위치인데 말이야.’
마치 찬물을 끼얹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원망과 배신감에 가슴이 들끓었다.
2025.04.10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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