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본 작품은 동일한 작품명으로 19세이용가와 15세이용가로 동시 서비스됩니다. 연령가에 따른 일부 장면 및 스토리 전개가 상이할 수 있으니, 연령가를 선택 후 이용해 주시길 바랍니다. *본 작품에는 잔인한 묘사와 노골적인 단어 및 강압적인 관계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용에 참고 부탁드립니다. 예기치 못한 유일한 혈육의 죽음. 드러난 처절한 진실. “약속대로 재판받게 해 주고, 졸업할 때까지만 봐주지.” 아빠의 지나가는 손님인 줄 알았던 남자, 최윤성. 그는 섬뜩한 행운이었다. 멋없는 배려. 항상 제게만 곤두선 신경과 돌아보면 곧바로 겹치는 시선. 귀한 것을 만지듯 다가오는 손길. 늘 뒤에 있을 것 같은 든든함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세상에 혼자가 된 유월은 기대고 싶었다. 그러나. “뭘 그렇게 떨어. 아직도 내가 그놈들이랑 달라 보여?” 가파른 그 경사는 기대는 순간, 추락하는 절벽이었다.
1화
도시의 균일한 길이 아닌 이렇게 경사진 곳을 걷다 보면 숨소리도 흩어지길 마련이다.
그런데, 꼭 숨죽인 짐승이 따라오는 것처럼 뒤에선 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여자는 앞서가면서도 경계심 어린 눈길로 연신 뒤를 힐끔거렸다.
못 따라올까 봐 그런 게 아니다.
기척은 희미해도 특유의 존재감은 어디 가지 않아 남자의 존재를 감지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시린 공기를 타고 겨울의 찬바람처럼 씁쓸하면서도 정돈된 향수 냄새도 전해졌다.
게다가.
‘등이 없어질 것 같아…….’
구멍이라도 낼 듯이 뚫어지게 쏘아져 오는 시선에 척추뼈가 다 찌릿했다. 단지 추워서 그런 거라고 하기에는 뒷덜미도 아플 만큼 얼어붙고 있었다. 더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 힘들었다.
비탈진 경사를 넘어 마지막 갈림길에 다다랐다.
왼쪽으로 가면 집, 오른쪽으로 가면 읍내 도로와 이어지는 길이 나온다.
기묘한 동행을 이어 가던 유월은 한참을 갈등하다 마침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어디까지 따라오실 거예요?”
딴에는 새침하게 쏘아붙이고 싶었는데, 나오는 건 잔뜩 흔들린 목소리였다. 묵직한 고요를 깨기는커녕 튕겨 나올 정도로 나약하기만 했다.
“혹시…….”
아무렇게나 누워 있는 들꽃에 시선을 옮겼다. 그 뒤에 일정한 간격으로 따라오는 그림자가 보였다. 점점 짧아지는 해 덕분에 더 빨리 볼 수 있는, 기다란 그림자.
“저랑 같은 방향이세요?”
약간의 준비가 필요해 유월은 숨을 고르며 속으로 잠시 수초를 셌다.
“그런 거예요?”
유월이 뒤를 휙 뒤돌아봤다.
원체 장신인 탓에 고개를 한껏 치켜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까부터 보고 있었다는 걸 입증하듯 곧바로 새카만 눈과 마주쳤다. 초겨울의 새벽하늘보다 더 어두워 보이는 안광.
이렇게 어둠 속에서 마주하니 꼭 짐승의 그것처럼 세로로 응축한 것처럼 보였다.
저걸 뒤로 받아 내는 것도 어려웠는데, 정면으로 마주하자니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되지도 않은 객기를 부렸나 싶어 어깨가 절로 움츠러들었다.
이곳에서만 사뭇 다른 듯한 추위가 은밀하게 내려앉았다.
유월의 입에서 흘러나온 뽀얀 입김이 아까처럼 고르지 못하고 사방으로 퍼졌다. 가파른 길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더 쉬울 것 같았다.
이윽고 남자의 불그스름한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맛을 볼 수 있다면, 아마도 비릿하게 느껴질…… 그런 눈빛.
“재밌어?”
낮은 울림이 고상하게 깔렸다.
웃자고 던진 말일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남자는 그렇게 물었다.
“아니요.”
그가 가만히 유월을 내려다봤다.
진짜 맹수면 도망가기라도 하지, 발걸음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쓰느라 몸이 얼얼했다. 생으로 근육통이 올 것 같은 기분을 참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남자는 그 상태로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이로 껍질을 까더니 안에 있는 동그란 물체가 남자의 입 안으로 쏙 들어갔다.
붉게 벌어졌다 닫힌 걸 멍하니 보던 유월은 그제야 그게 사탕이라는 걸 깨달았다. 쓰레기가 된 빈 껍질은 다시 그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무심하게 뜯었던 것처럼 그냥 바닥에 휙 버릴 줄 알았는데, 좀 의외였다.
근데 사탕 껍질은 원래 부스럭거리는 소리라도 나지 않나?
곧 두 개의 그림자와 겹치는가 싶더니 이내 큰 그림자가 유월을 앞질렀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보폭이 소리 없이 지나갔다.
너른 등이 보였다. 다리가 길어서 그런지 순식간에 멀어지려 했다.
같은 방향이라면 차라리 저렇게 그가 앞질러 주기를 바라서 그런 건데 다행히 그럭저럭 통한 것 같아 다행이었다.
이제 좀 편하게 가려는데, 목적지에 다다른 그가 묵직한 대문을 가리켰다. 숨 쉬는 것처럼 지시와 명령이 자연스러웠다.
저도 모르게 손을 뻗던 유월이 멈칫했다.
“제가요? …왜요?”
본인이 사는 곳인데 문도 못 여나. 남자의 답변은 간단했다.
“집주인 앞에서 객식구가 문 따면 안 되지.”
그럴듯하게 들렸으나, 딱히 납득은 되지 않았다. 그럼 그동안에는 어떻게 들어갔데? 왠지 그의 말대로 따르기가 싫어 잠자코 있었다.
“시위해?”
나직한 울림이 서늘한 공기를 뚫고 다가왔다. 문 하나를 두고 대치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유월이 추위로 벌게진 코를 한번 훌쩍였다.
남자가 가지가지 한다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는 여전히 입 안에 사탕을 굴리면서 직접 문을 열었다.
오래돼서 소리가 날 법도 한데 저 남자가 열면 그런 소리도 잘 나지 않는다. 태생이 고요한가. 소음을 빨아들이는 뭔가가 있는지, 손만 대면 모두 조용했다. 뭐 하다가 온 사람인지.
두툼하면서도 날렵한, 맹수의 뼈대를 다 갖다 박은 듯한 골격. 잘 짜인 근육으로 뒤덮인 몸체에선 오랜 단련이 느껴졌다.
하지만, 험한 일을 했다고 하기엔 모든 손짓에서 기품이 묻어 나왔다. 반듯한 외양도 한몫했다.
경계심과 호기심이 한데 섞여 차오르기 시작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궁금했던 남자의 정체가.
탁.
문이 거칠게 닫히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뒤에 들어올 사람이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는 그대로 닫아 버렸다.
‘보통은 열어 놓지 않냐고.’
처음엔 일부러 저러는 줄 알았는데 그게 다가 아닌 듯싶었다. 살면서 그런 배려를 인식해 본 적이 없는 것에 가까워 보였다.
끼이익.
유월이 손을 대자마자 소리가 났다. 널찍한 마당으로 들어섰을 때 그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들어가는 소리도 나지 않았는데.
구석에 동떨어진 작은 집 한 채가 보였다. 들어갔으면 불이라도 켤 텐데 여전히 어두웠다.
한동안 그곳에 시선을 두던 유월이 발걸음을 옮겼다.
결국, 돌아갈 곳이 같다는 게 조금 우스웠다.
* * *
2025.04.23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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