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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팀장, 들키지 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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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미경
62화무료 3화

자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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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에만 끌렸대도 상관없으니까 나 잡아. 이 잘난 몸 기꺼이 대줄 테니까.” 경계가 허물어진 공간을 타고 내려온 귀신들이 그 시간까지 깨어 있는 인간을 현혹한다는 새벽 3시. 여자가 물었다. “해 뜰 때까지 내 방에서 기다리는 건 어때요?” “혹시 이거 유혹입니까?” 헛짓. 야한 짓. 미친 짓. 이 여자와 할 수 있는 짓이란 짓은 뭐든 다 하고 싶어 몸이 달아 있는 놈한테 호텔 방에 같이 있자니. 상식적으로 보자면 유혹이 아닐 수가 없었다. 맞느냐고 묻는 게 웃긴 거다. 그런데 앞에 서 있는 여자의 의도가 도통 짐작이 되지 않았다. 하시열의 뇌리에 단조로운 회색으로 각인되었던 여자는 이후 다채롭게 색을 바꿔 가며 그의 눈을 사로잡았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인사가 늦었습니다. CB팀 고은솔 팀장입니다.” 그가 익히 아는 무채색이었다가. “치 떨리게 싫으니까, 그만 좀 질척대요.” 화르르 불꽃처럼 피어오르다가도. “대표님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어요.” 그 불꽃으로 시열을 녹여대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고은솔 씨, 사람 피 말리는 스타일인 거 알아요?” “얼마 보지도 않고 아는 건 쥐뿔도 없어도 이렇게 눈에 밟히는데 계속 만나면 얼마나 미치게 좋을까 겁이 덜컥 나. 내가.” 그래도 한 번씩 용기를 내 그에게 틈을 보여 주는 은솔에게 무작정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나…… 당신이랑…… 같이 있고 싶어.” 시열이 평생토록 기다려 온 운명이었으니까. “저는 하씨 집안 사람과는 더 엮이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놓고 떠나겠단다. 징글징글한 하씨 집안 남자인 줄 알았으면 애초에 아무것도 안 했을 거라며. “대표님과 전 섞일 수 없는 사이에요. 그러니 괜한 수고 그만 하세요.” 웃기고 있네. 섞일 수 없는 사이? 서로 다른 거? 그게 뭐 대수라고. 내가 널 담았는데. 우는 모습. 힘든 모습. 지친 모습 그리고 야한 모습 다 들켜놓고. 나 하시열을 오지도 가지도 못하게 홀려놓고 어디서 내빼 내빼길. “덴마크엔 섞이지 않는 바다가 있어. 농도가 다른 바다가 만나 파도를 만들어 내며 같은 곳을 향해 흐르지.” 시열은 고은솔에게 알려 줄 참이다. 농도가 다른 그 바다는 끊임없이 서로의 약한 부분을 찾아 조금씩 서로에게 스며들다 결국 하나가 된다고.

#로맨스#현대#상처녀#재벌남#몸정>맘정#복수#회사원#까칠녀#냉정녀#유혹녀#능력남#직진남

1화. 몸이 달아 있거든요, 내가.






반쯤 닫히던 엘리베이터의 철문 사이로 추위에 꽁꽁 얼어붙은 가는 손이 들어왔다.


덜컹-.


잠시 멈칫하다 이내 부드럽게 거리를 벌린 철문 너머에 여자가 서 있었다. 미처 정돈하지 못한 머리카락을 이마 위로 흐트러트린 채 뺨을 붉힌 한 여자가.


“저…… 지금 밖에 나가 봐야 보이는 것도 없을 텐데 해 뜰 때까지 내 방에서 기다리는 건 어때요?”


시열은 불쑥 치미는 헛웃음을 삼켰다. 저도 모르게 빛을 받으면 간혹 금빛으로 보인다는 밝은 갈색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겼다.


뭐야, 이거 유혹인가? 아니면 시험? 불시에 혼란에 빠진 시열은 가늘게 눈을 좁혔다.


사실 뭐든 상관없었다. 유혹이라면 기꺼이 넘어가 줄 거니까. 그런데 시험이라면 어떡해야 통과할 수 있는 걸까?


‘괜찮으니 들어가서 쉬세요.’라고 끝까지 정중하게 굴어야 해? 아니면 ‘그럴까요? 그럼 당신 방에 가서 기다렸다가 해가 뜨면 나갈까요?’라며 덥석 받아?


그것도 아니면 ‘내가 지금 몸이 달아서 그러는데 해 뜰 때까지 당신하고 침대에서 뒹굴어도 됩니까? 아, 꼭 침대가 아니어도 괜찮고. 해가 뜰 때까지만 뒹굴겠다는 뜻도 아니고’ 이래?


이도 저도 아닌 순수한 초대였다면 이 여자는 아주아주 못돼 먹은 마녀거나 반편이다.


사막 한가운데서 의미 없는 삽질이라도 해야 할 만큼 목이 타들어 가고 있는 사람을 앞에 두고 이렇게 눈치가 없어도 되는 거냐고.


맑은 물이 펑펑 솟아나는 오아시스에 고개를 처박고 들이마셔도 지금 그가 느끼는 이 타는 듯한 갈증은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때 참을성 없는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꿈틀꿈틀 움직였다.


텅-.


이번엔 시열이 문을 잡아 벌렸다. 그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뒷걸음치지도 그렇다고 한 발 앞으로 뻗어 내리지도 않았다. 그 무엇도 결정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서서 여자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시선을 입술에 둔 건 현명한 결정은 아니었다. 채도 낮은 푸시아 빛 입술이 뭔가를 말하고 싶어 달싹일 때마다 온몸의 피가 한곳으로 쏠렸다. 섬뜩할 만큼 야만적인 욕구가 만들어낸 영상 속에서 그는 이미 여자의 입술을 헤집고 있었다.


뭉개고 빨고 머금고 핥고. 입술로 할 수 있는 모든 야한 짓을 하는 중이다. 어떻게 오늘 처음 본 여자에게 이토록 강렬한 욕망을 품을 수 있는지 놀라웠다. 목덜미를 따고 뜨끈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대답이 없는 시열을 가만히 바라보던 여자가 시열의 상상이 놔주고 있지 않은 입술을 작게 벌리며 말했다.


“전 일찍 나가야 하거든요. 어차피 이제 와 자기도 틀렸고…….”


“훗.”


기껏 참았던 헛웃음이 말릴 새도 없이 터져 나왔다. 시열은 이미 벌어진 입꼬리를 어쩌지 못한 채 여자를 보았다.


왜 이 여자를 보며 회색을 떠올렸는지 모르겠다. 이렇게나 붉은데. 입술은 물론이고 발그레 홍조가 피어난 뺨부터 귀밑으로 살짝살짝 보이는 목까지. 어디 하나 무채색인 곳이 없는데.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어쩐지 처음 봤을 때부터 눈이 떨어지지 않더라니. 결국 기어이 사고를 치고 말 줄 알았지, 내가.


만나지 몇 시간이나 됐다고 오늘 밤 함께 있자고 꼴사납게 매달리고 싶더라고. 별로였을 게 뻔한 첫인상으로 그를 기억하게 하고 싶지 않아 기껏 신사 흉내를 내며 죽자 살자 참고 고이 들여보내 주려 했더니.


“밖은 아직 너무 어둡잖아요. 어디서 잃어버렸는지도 모르는데 이 밤에 어떻게 찾아요.”


나가 봐야 보이는 것도 없어요. 어두워요. 같은 의미의 문장을 반복하는 걸 보면 그게 마음에 걸린 모양인데.


그래, 어두워. 여기는 백야가 있는 스칸디나비아반도가 아닌 아시아 대륙 동쪽 끝에 있는 한국이다. 심지어 계절은 한겨울. 시간은 자정이 겨우 지난 이른 새벽이니 당연히 어둡겠지.


이렇게 어두운 지금, 피 끓는 성인 남녀 단둘이 방 안에서 날 밝을 때까지 뭐 하자는 건데. 설혹 피가 끓고 있는 게 나 혼자라면 더더욱 같이 있으면 안 되고.


시열은 차마 말로 내뱉지 못한 감정을 뜨겁고 끈끈한 시선에 담아 보냈다. 흠칫 놀란 표정이 된 여자가 시선을 떨궜다.


그를 외면하는 모습에 돌연 가슴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사람 머리를 있는 대로 복잡하게 만들어 놓고 발을 빼? 그가 어두운 서해바닷가를 뒤지고 다닐까 봐 걱정해 건넨 순수한 초대였으면 애초에 저토록 사내를 홀리는 눈빛을 하진 말았어야지.


성큼 엘리베이터 밖으로 걸어 나온 그는 제 눈을 피하는 여자의 시선을 집요하게 좇으며 물었다.


“내가 진짜 궁금해서 묻는 건데 혹시 이거 유혹입니까?”


상식적으로 보자면 아닐 수가 없지. 맞느냐고 묻는 게 웃긴 거잖아. 그런데 앞에 서 있는 여자의 의도는 도통 짐작이 안 된다.


“내가 한국어가 서툴진 않은 편인데 좀 헷갈려서요. 우리 확실하게 하죠. 내가 걱정돼서 몇 시간 방에 머물게 해 주겠다는 뜻이에요? 아니면 나랑…… 진짜 헛짓이라도 하겠다는 뜻입니까?”


“헛짓……이요?”


시선을 피하고 있던 여자가 눈을 들어 묻는다. 진심으로 그 말의 의미를 알고 싶다는 듯.


속을 알 수 없는 말간 눈을 아무리 보고 또 봐도 모르겠다. 이 여자가 왜 저를 붙잡았는지. 저는 무슨 말이 듣고 싶어 이 멍청한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건지.


“네. 헛짓. 야한 짓. 미친 짓. 그거 하고 싶어서 아까부터 내내 몸이 달아 있거든요, 내가.”


불쑥 참아 왔던 말을 내뱉고 나니 속은 시원했다. 여자가 전혀 예상도 못 했다는 황당한 표정을 짓지 않는 것만으로도 한풀 마음이 놓였다.


저 혼자만 이 모양인 건 아니라는 뜻 같아서.


“단순히 친절을 베풀고 싶었던 거면 거절입니다. 그러니 얼른 방으로 돌아가서 문 걸어 잠그고 혹시 내가 열어 달라고 두드려도 절대 문 열지 말아요.”


쾅쾅 문을 두드리며 열어달라고 애걸하는 한 사내가 어렵지 않게 그려졌다. 농담이 아니라 여자가 이대로 발을 돌린다면 정말 그 짓을 할 것 같기도 하다.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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