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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폐 소설 속 여동생은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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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쥐
96화무료 5화
자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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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인공네 집안이 남주인공 집안을 말아먹는 피폐 소설에서, 고문당하다가 죽는 남주의 여동생으로 환생했다. 심지어 나는 친여동생도 아니었다. 여동생이 죽고, 충격을 받은 공작 부인을 위해 입양된 평민 여자애였다. ‘고통받고 싶지 않아!’ 매일 악몽을 꾸고 눈물바다인 나를 남주가 측은하게 여기고 끼고 돌기 시작한다. 설마, 이런 나 때문에 남주가 흑화하는 걸까. 죽음이 가까워져 올수록 두려워 미칠 지경이다. ‘운명을 바꿔야 해.’ 그렇지 않으면 순응하는 길 외에는 방법이 없으니.

#로맨스판타지#삼각관계#다정남#상처녀#잔잔물#애잔물#영혼체인지#빙의#소유욕/독점욕/질투#능력남#집착남#집착녀#피폐물#서양풍#가상시대

1화








“……이제 죽어라.”


이미 난도질 된 나를 향해 시퍼런 칼날이 번뜩인다.


그 날카로운 날붙이가 내 목구멍을 뚫는다.


꿰뚫리는 시린 고통에 억눌린 신음이 터져 나왔다.


아프고 아프고 아프다.


고통과 동시에 나는 눈을 떴다.


죽음의 충격이 가시지 않아 입 밖으로 비명이 나오려는 것과 동시에, 이건 꿈이고 소리를 질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명을 지르며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로 깊숙이 얼굴을 묻고 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꿈이야.


방금 그건 꿈이었어.


너는 이렇게 버젓이 살아 있어.


그렇게 수십 번을 되뇌어도 몸이 사정없이 떨리고 식은땀으로 잠옷이 축축하게 젖어 든다.


나는 죽음의 공포에 압도당한다.


너무 두렵다.


떨리는 손을 들어 내 목을 매만진다.


멀쩡하다. 그리고 붙어 있어.


오늘도 여느 날처럼 스스로를 안심시키고 다독였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너는 살아 있다고.


베개에 얼굴을 묻고 목 놓아 우는데 달칵, 하는 여린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가 들려도 고개조차 들 수 없다.


그리고 부러 확인하지 않아도 나는 이미 이 한밤중의 손님을 알고 있다.


이곤이다.


로드리 공작가의 장남, 나의 오라비.


“쉬…….”


이곤이 아이를 달래듯 소리를 내며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 애가 들어오면 늘 하는 일이기에 그럴 줄 알고 있었으면서 나는 상처받은 짐승처럼 파르르 몸을 떨었다.


“또 악몽을 꿨구나. 이브, 이제 괜찮아.”


검술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 소년의 거칠거칠한 손바닥이 등을 몇 번인가 쓸어내린다.


손길에 차츰 천천히 호흡이 돌아오고 몸의 떨림도 잦아든다.


과연 남자 주인공은 남자 주인공이다.


그에게는 이상한 마력이 있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그가 필요하다.


베개에서 얼굴을 떼 내어 이곤에게로 달려들었다.


마치 생명 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곤을 꼭 끌어안는다.


이곤은 그런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랜다.


내가 온전히 진정되기를 기다리며 나를 안아 들고 방 안을 돌아 준다.


붙어 안은 우리 사이엔 빈틈이 없다.


“이브, 이브, 에블린…….”


이곤은 나를 무게가 나가지 않는 풍선마냥 가볍게 안아 들고 노래라도 부르는 것처럼 내 이름을 반복해서 불렀다.


그런 식으로 나를 부르는 것을 썩 즐기지 않았지만 이곤이 필요한 내가 그에게 싫은 소리를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이브, 봐. 오늘 달이 밝아.”


어딘가 살짝 들뜬 것 같이 들리는 말에 나는 슬쩍 그의 어깨에 묻어 두었던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정말.


창밖에 휘영청 뜬 달이 희고 밝은 빛을 쏟아 내리고 있었다.


“좀 괜찮아졌어?”


묻는 말에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안쓰러워라.”


이곤이 그렇게 말했다.


정말 악몽을 꾼 아이를 다루는 듯한 말투다.


그러나 나는 열여섯보다 많고 이곤은 역시 열아홉의 생일이 지났으니, 이 방엔 아이가 없다.


“대체 뭐가 그렇게 두려운 거니?”


이곤이 내 머리에 제 입술을 누르며 물었다.


고개를 숙여 나와 눈을 맞춘다.


결 좋은 하늘하늘한 백금발이 눈앞에서 흔들린다.


내가 조금 긴 듯한 그 애의 앞머리를 쓸어 올리자, 천사처럼 잘생긴 얼굴이 드러나 보인다.


어느 곳 하나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속눈썹마저 길고 섬세하다.


그러나 그 아래의 채도가 낮은 하늘색의 눈동자는 꼭 사람이 아니라 짐승의 것마냥 형형했다.


응? 말해 봐. 뭐가 두려워?


그 애가 다시 내게 답을 채근했다.


나는 말 대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말할 수 없었다.


쯧.


이곤이 혀를 찼다.


“입술 좀 씹지 말라니까.”


하얗고 긴 손가락이 입술 새를 가르고 들어와 치아와 여린 살점 사이에 공간을 만들었다.


특유의 체 향이 손끝을 타고 밀려 들어왔다.


체취에 잠겨 나는 숨을 삼켰다.


새파란 눈동자와 눈을 맞췄다.


이상한 반항심이 고개를 들었다.


이를 들어 단단하고 말캉한 손가락을 깨물었다.


톡.


내게 물린 검지 말고 다른 손가락을 들어 이곤이 내 코끝을 가볍게 두드렸다.


눈과 눈이 맞닿았다.


보기 좋은 모양의 입술이 달싹이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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