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현도제> 잘났다. 본인도 그것을 안다. 그래서 재수없다. 성수청 소속 제령사. 대대로 강한 신기를 물려받은 만신 가문의 유일한 혈통이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기대는 오래전에 버렸다. 감정 따위가 궁금하지도 않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예의 없는 말투와 차림. 그를 둘러싼 미스테리가 오히려 도제를 더 선명하게 만든다. 무언가를 보기 때문에 자신을 더 보이고 싶지 않다. 그러다 사고로 귀안을 잃고 도구로 쓸 이설을 찾아 태연하게 그녀를 사용했지만, 도제가 이설을 사랑한 순간 그녀는 약점이 된다. 평생 이설 곁에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설은 어차피 죽어야 할 테고, 그러니 정을 주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어느새 그녀는 의미 그 이상의 정의가 된다. 그러니까, 단조로운 삶에 이만한 변수 하나쯤은 있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할 만큼. <류이설> 허상. 환상. 가상. 이설의 세상에 또렷한 건 아무것도 없다. 눈을 의심해야 미치지 않고 살 수 있었기에 그녀에게 믿음이란 감정은 애초에 쓸데없는 부유물이었다. 남들이 보지 않는 것을 보면서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을 숱하게 겪었다. 그녀에게 외로움은 익숙한 일이었고 일상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필요하다는 남자를 만난다. 자신이 보고 듣는 것이 헛것이 아니라 그저 운명이라는 남자를 만난다. 마음은 주지 말아야지, 그것만은 넘기지 말아야지. 몇 번이고 다짐했는데 어이없게, 결국 현도제를 사랑하고 만다. 살고 싶어서 믿지 않아야 했던 세상에서 죽더라도 믿어보고 싶은 남자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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