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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빠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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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여늘
265화무료 5화

자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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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살이 되던 해 봄. 있는지도 몰랐던 아빠가 나타났다. "왜 찾아왔어? 얼굴 안 보고 사니 편했는데." "그간 편하셨으니 이제 불편할 때도 되지 않으셨습니까, 전하?" 알고 보니, 우리 엄마는 사실 폭군의 딸이었다. 아빠는 그 폭군을 폐위한 공작님이었고. "바쁘고 위대하신 셸시어스 공작님께서? 나 불편하라고 날 찾아?" "남편이 아내를 찾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입니까?" "우리가 아직도 그런 사이였어? 내가 그걸 미처 몰랐네. 이혼하자." ……둘이 대체 무슨 사이인지 누구 설명해 줄 사람 없나요? * * * "네가 더 어렸을 때부터 안아 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부드럽고, 다정하고, 아쉬운 감정이 물씬 배어나는 낮은 목소리. 조금 머뭇거리다가 고백했다. "저는 예전에 엄마를 자주 슬프게 했어요. 더 일찍 만났으면 절 싫어하셨을지도 몰라요." 그 말에 아빠는 웃음을 터뜨렸다. ……난 진심이었는데. 한참 웃다, 그는 자잘한 웃음기가 덜 가신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더 일찍 만났으면 네가 조금 더 많이 아빠라고 불러 줬겠지. 그거면 충분해."

#로맨스판타지#가상시대#서양풍#첫사랑#왕족/귀족#잔잔물#직진남#집착남#존댓말남#능력녀#까칠녀#육아물#걸크러시

1화






5월의 어느 화창하고 좋은 날, 5월 요정은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친절하고 편리한 요정 같은 건 없다.


“클레르, 대체 뭘 했길래 이시엘이 저렇게 우는 거니?”


엄마는 화를 매끄럽게 다듬은 목소리로 물었다. 굳이 둘러댈 마음도 없어서 순순히 대답했다.


“이시엘한테 바보라고 했어요.”


“왜 바보라고 했는지 말해야지?”


“이시엘이 또 5월 요정한테 편지를 쓰려고 했거든요. 받고 싶은 선물을 다시 얘기하겠다고.”


“……그게 왜?”


“5월 요정은 없고 지금까지 다 엄마가 준 선물이었다고 하니까 거짓말이라고 화내서요.”


“…….”


“편지가 엄마 서랍에 있는 걸 보여 줬는데도 그래서 짜증 났어요.”


엄마의 녹색 눈이 당혹스럽게 깜빡였다. 때맞춰 이시엘이 엉엉 울면서 고개를 들었다.


녹색 눈 가득 눈물이 그렁그렁하고, 사랑스러운 백금발 곱슬머리가 헝클어진 모습. 구름 위에서 실수로 추락한 작은 천사처럼 가련하고 애처롭기 그지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시큰둥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오늘을 포함하면 딱 일주일째. 이시엘은 5월 요정에게 편지를 보내겠다는 비상식적인 시도에 일주일 동안 나를 끼워 넣었다.


지난 6일간은 나도 얌전히 협조했으나…….


‘이 비생산적인 짓을 일주일 내내 할 수는 없잖아. 지겨운데.’


갖고 싶은 선물이 변했다거나, 자기가 선물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새로 생겼다거나, 어쨌든 발전이 보이기는 했다거나…….


조금이라도 내용적인 변화가 있었다면 참았겠지.


그런데 이시엘의 편지는 6일간 전혀 변하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작문 실력도 매일 똑같았다.


어제 가르쳐 준 글자를 오늘도 틀렸다. 그게 저번에도 가르쳐 준 글자였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엄마는 이시엘과 나를 번갈아 보다가 결국 이마를 짚었다.


“……어쩌다 쌍둥이가 이렇게 다른지.”


대꾸가 굳이 필요하지 않은 한탄.


이시엘이 울먹울먹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5월 요정을 믿는 어린아이의 눈빛은 맑고 순수하기 이를 데 없어서, 엄마는 뭐라고 대답하기 난감해 보였다.


나는 약간 한숨을 쉬었다.


그래, 오늘도 내가 져 주지 뭐.


“이시엘, 미안해. 내가 거짓말한 거 맞아. 5월 요정은 엄마 아니야.”


이시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직 그렁그렁 맺혀 있던 눈물이 알알이 굴러떨어졌다.


그러더니, 환하게 웃었다.


“나도, 나도 화낸 거 미안해, 클레르.”


이시엘은 눈물을 쓱쓱 닦고 몸을 일으켜 내 손을 잡았다.


눈물범벅일 때도 못나지는 않았지만, 역시 이렇게 방글방글 웃을 때 제일 사랑스러웠다.


아직 어려서 조금 논리력이 약하고 뜻대로 안 되면 우는 것조차 이시엘에게는 흠이 아니다.


‘누구나 그런 아이였다가 어른이 되는 거니까.’


이시엘을 따라 집 밖으로 나서다, 흘끗 엄마를 돌아보았다.


엄마는 속을 알기 어려운 낯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나 다채로운 생각과 감정들이 펼쳐져서 당혹스럽게까지 보였다.


특히, 이시엘의 것처럼 깨끗한 녹색 눈동자가.


“멀리 안 가고 금방 올게요.”


내 말에 이시엘도 다녀오겠습니다, 인사하고 문을 열었다.


이시엘은 여전히 내 손을 깍지 껴 맞잡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생글 웃는 눈웃음조차 따뜻하다.


이시엘과 나는 엄마의 배 속에서부터 함께 있었다. 그래서일까. 이 애는 나를 아주 좋아하고, 뭐든 나와 함께하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부분에서 다르다.


‘……그리고 그건 내가 너무 이상하기 때문이지. 이시엘 탓이 아니라.’


마을 뒤편 숲의 앞자락, 어지럽게 풀꽃이 피어난 작은 언덕.


목적지에 다다른 이시엘이 드디어 내 손을 놓았다. 동생은 꽃들 사이를 헤집으며 예쁜 송이를 골라 꺾기 시작했다.


“엄마한테 화관 만들어 줄 거야.”


“그래. 만드는 김에 내 것도.”


“클레르 것도? 그래!”


……아니, 나라면 너 혼자 하라고 딱 잘랐을 텐데.


농담이었어. 피차 귀찮으니까 그냥 하지 말자. 잘못해서 바스러지면 또 울 거잖아.


수많은 말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입을 다물었다. 할 일이 주어진 이시엘은 신나 보였으니까.


나와 달리.


“재미없어…….”


다시금 맥빠진 한숨을 쉬었다.


5월의 봄은 말도 안 되는 요정 설화를 탄생시킬 만큼 아름답지. 그건 인정해.


그런데 진짜로 거의 모든 애들이 5월 요정을 믿는다고?


아니, 도대체 왜? 그렇게 어린애들한테만 유익한 요정이 있다고 믿는 이유가 뭐지. 그냥 선물 받고 싶어서 모든 비논리와 비합리를 모른 척하는 게 아니라?


‘……난 듣자마자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요, 라고 대답했는데.’


어쨌든 한날한시에 태어난 이시엘이나, 지금껏 만나 본 일반적인 아이들과 나는 매우 달랐다.


보통 아이들은 태어나기 전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버지가 없어서 슬퍼할 아이들은 많겠지만, 짧은 이사 간격과 때때로 이어지는 긴 여행에서 혹시 추적당하고 있는지 우려하는 아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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