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过去心不可得,未来心不可得,当前心不可得。" [과거에 매달리지 말고, 미래를 원망하지도 마라. 과거는 이미 사라졌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느니라.] 눈 앞에서 진법이 흔들렸다. 목 안을 긁는 뜨끈한 피를 삼켜내며 눈 앞을 바라 봤다. "이천, 돌아가. 가서 현재를 살아." 과거에 매달리지도 말고 미래를 두려워 하지도 않아야 한다면, 내가 오직 현재만을 바라고 살아야 한다면. 우선 죽어도 살아남아야 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
(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空 我當安知)
하늘 위와 하늘 아래, 나 홀로 존귀하다. 삼계는 모두 공허하니, 내가 마땅히 이를 평안히 하리라.
오색 구름과 무지개가 피어나고 가릉빈가가 석가모니의 탄생을 축하했다. 그가 눈을 뜨자마자 한 손은 땅을 가르키고 한 손은 하늘을 키니 부처의 탄생과 함께 한 외침이요, 아라한들은 마땅히 그를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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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억...!"
깊은 물 속에 잠겼다 빠져나오듯 숨이 턱 트여나왔다. 명치가 욱신거리는 것도 같았고 콧대가 얼얼한 것도 같았다.
"정신 안 차리지? 이 더러운 말종 새끼."
누군지는 몰라도 더러운 말종이라니 말이 심하다. 무의식적으로 인중을 쓸어내리니 붉은 피가 묻어나왔다.
코피?
그러고 보니 명치만 욱신거리는 게 아니라 온 몸이 쑤셨다. 손은 작고 꾀죄죄한 게 꼭 내 것이 아닌 것 마냥...
"이게 이제 사람 말을 씹어? 야, 눈 떠."
억센 손아귀 힘에 강제로 머리칼이 잡혀 고개가 들림과 동시에 제대로 눈이 뜨였다. 제기랄, 도대체 누군데 자는 사람이 머리를 아무렇게나 덥썩덥썩 잡는 것인가?
분명 그렇게 대꾸하고 싶었으나 정작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야 왜냐면, 모르는 이였으니까!
표독스럽게 씰룩이는 입꼬리와 잔뜩 올라간 눈썹, 높게 묶은 머리카락, 꼭 영화라도 찍는 것 같은 무복.
내가 지금 꿈을 꾸나?
처음엔 당황이요 그 다음엔 황당이다.
입만 달싹이며 눈을 돌리니 잡힌 두피가 더 당겨왔다.
수많은 의문이 머릿속을 헤집어 어지러웠다. 우선 요즘 세상에 무복을 입는 이들은 전부 도장에나 있을 뿐더러, 가장 중요한 점은 나는 내 방에서 자고 있었다는 것이다.
가설을 세워 보자.
납치? 말이 되기는 하겠다. 일단 이 폭력적인 사람이 내 머리채를 잡고 흔들고 있으니까. 그러나 납치라기엔 생판 초면의 남자가 나를 향해 분노해 하고 있을 가능성은 낮다.
아직 꿈이 아닐까?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지고 손바닥에 느껴지는 흙의 거슬함이 생생하다는 것만 빼면 가장 말이 되는 가설이다.
어쩌면 내가 사실은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면? 그래야 이 비현실 속 강렬한 현실감이 말이 되지 않을까?
젠장, 여기까지 오지는 말자. 나는 제정신일 것이다.
멍한 시야 사이로 날아드는 손바닥에 눈을 질끈 감은 순간, 세상의 옥이란 옥은 잔뜩 가져와 녹여 심해와 섞은 것 같은 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머리카락이 놓인다.
언제 내 머리카락이 이리도 길었는지. 어깨를 타고 스르륵 내려온 머리카락은 엉망으로 헤집어져 눈을 가렸다.
"명휘학궁에서 소란은 금물이라 했을 텐데."
가려진 시야로도 뚜렷히 보였다.
청색의 도포가 휘날린다. 꽉 매인 신발은 한치의 빈틈도 없었고, 비단에 새겨진 백로는 마치 바다 위를 날아가는 것 같았다.
귀를 강타하듯 내려앉은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들면 싸늘한 시선이 내려다 보고 있었다. 선인이 있다면 이렇게 생겼을까. 방금까지 나에게 소리 치던 사내가 무안해질 정도의 아름다움이다.
이마 선과 이어지는 단정하게 뻗은 짙은 눈썹은 굳건하면서도 시원스런 분위기를 주었고, 긴 속눈썹은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미의 중추를 무시하다 못해 폭력적으로 끌고 오는 얼굴. 얇은 입술만 아니었다면 너무 과한 느낌을 주었겠으나 적절히 빠지는 입술이 조화를 이루게 했다.
그리고 귓가에 달린 옛스런 귀걸이와 이쪽도 높게 묶은 긴 머리카락.
이제 못 알아채는 게 더 이상하지.
이곳이 꿈이든, 내 망상 속이든, 납치이든간에 여긴 현대가 아니다. 신라의 화랑이라도 되는지 질끈 묶은 머리나 이 무복들이 어렴풋이 시대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위화감은 뭐란 말인가?
자꾸 이 장면을 어디선가 본 것만 같은 것이 애매하게 머리를 뿌옇게 만든다.
명휘학궁, 더러운 말종 새끼, 청색 도포, 옥 귀걸이.
다시 명휘학궁, 명휘학궁... ....
아, 제기랄.
눈동자가 그들의 어깨 너머로 향한다.
궁이 있는 곳을 제하면 모두 구름으로 가려진 바깥, 마치 하늘 위를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쾌청한 날씨와 기이하게 떠다니는 불들.
나는 이것들을 안다.
명휘학궁은 내가 읽었던 소설 속에 나오는 학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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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휘학선지(明輝學仙志)]
무협지 특유의 지루한 제목과는 다르게 이 책은 고전 무협의 플롯을 따라가지 않는 편이었다.
주인공에게 몰빵되는 영약, 영단, 여자. 쓰리 여콤보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정정하자.
주인공께서 전부 거절을 하셨다.
황가 출신의 주인공은 어렸을 적부터 모든 업적은 독식하셨다. 석가모니는 탄생과 동시에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쳤듯 주인공 또한 다르지 않았으리라. 그의 탄생에는 휘영청한 무지개 대신 맑은 노란 색의 선기가 흘러넘쳐 궁 밖까지 밝혔더랬다.
어디 그 뿐이랴?
절색의 외모는 남녀를 논하지 않았으며 모든 길은 탄탄대로만 같으니, 다만 중요한 점은 주인공이 선을 중시해도 너무 중시했다.
영단? 자신은 이미 차고 넘치니 부족한 이들부터.
여자? 수행을 할 사람이 여자를 밝히면 안 된다 거절.
이미 무협지의 정석 다 밟아놓고 주인공에게 몰아넣어지는 클리셰를 전부 빼버리면 무슨 재미로 읽냐 하겠지만은, 그래.
그래서 인기가 없었다.
나 또한 억지로 꾸역꾸역 붙잡고 늘어져 중반까지 읽었으니 더 말이 필요할까. 그 뒤로 작가가 아예 작품을 놓아버렸으니 아마 내가 가장 많이 읽은 사람일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왜 내가 이 책 속에 들어온-말이 안 된다는 건 알지만, 이미 머리채도 잡힌 이상 빠른 인정을 해야 했다- 거란 말인가? 남들은 다 읽은 책 내용으로 나만의 아는 결말, 내가 다 독식하는 이야기라도 하지. 나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중반까지의 스토리 내용은 떡밥만 왕창 뿌려졌지 회수된 건 제대로 없었으며, 감명 깊게 본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제대로 기억나는 것들이 없었다.
불운도 이런 불운이 없지.
책 속에 빙의를 한 것도 믿기지 않는데 하필이면 그 책이 관심 없던 책이란 건 또 뭐란 말인가. 또한 문제는 여기서 끝나질 않는다.
방금 전의 대화를 짚어 보자.
딱 봐도 나 악역이고 곧 퇴장할 총알받이요 하고 얼굴에 써 놓은 애가 내게 손을 들며 했던 말.
더러운 잡종 새끼.
명휘학선지에 나오는 더러운 잡종 새끼는 내가 알기론 하나다.
2025.07.25 11:24
2025.07.23 00:40
2025.07.22 20:43
2025.07.22 17:04
2025.07.22 15:24
2025.07.07 00:36
2025.07.04 16:19
2025.07.03 16:56
2025.07.03 00:16
2025.07.01 23:30
오 너무 명작이에요 ㅠㅠㅠ 넘 재밌어요!!!
25.08.06
명작이다...
25.07.03
주인공 뭐하던 사람이지 진짜 똑똑하네…. 든든하다 죽지마라ㅜㅜ
25.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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