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표지
잿빛에 피어난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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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네빈
7화무료 7화

자유 연재 | 글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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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자, 저 멀리.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어느 날 늦게까지 연구실에 남아있던 대학원생 ‘수빈’은 정체불명의 빛을 따라 창가로 다가간다. 그곳에서 누군가의 손을 잡은 순간 강한 바람이 불어와 눈을 질끈 감게 되는데, 이내 다시 눈을 떴을 땐 말도 안되게 아름다운 밤하늘이 펼쳐진다. 언제부터였을까. 공허함에 익숙해진 게, 텅 빈 하늘을 봐도 슬프지 않았던 게. 우리는 까만 밤하늘에 길들여져 버렸다. 그게 너무 당연해서, 이전의 찬란한 시절을 떠올리지도 못하게 되었다. 더 이상 빛나지 않는 하늘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다.

공모전 참여작#현대판타지#로맨스#현대#인외존재#트라우마

 아무도 없는 고요한 연구실에 내 타자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밤새 연구실에 남아있는 것 정도는 늘 있는 일이었지만, 여럿이 같이 남는 평소와는 다르게 오늘은 홀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사람이 없어서 그럴까, 어쩐지 평소보다 서늘해진 공기가 빈 좌석들을 강조하듯 나를 짓눌렀다.

오직 규칙적인 빗소리만이 이 적막을 깨려는 듯 계속해서 창문을 두드렸고, 나는 그 소리를 배경 삼아 집에 가고 싶은 굴뚝같은 마음을 참아내며 아까와 달라진 것 없는 화면을 응시했다.

 

“때려치고 싶다...”

 

이제는 입버릇이 되어버린 말. 분명 처음엔 수도 없이 고민하다 뱉은 말이었는데, 어느새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다시 생각해봐. 일하다가 나중에 가면 되지.’

‘야, 취업도 잘 안 되는데 거기를 왜 가냐? 지금이라도 바꿀 생각 없어?’

‘부모님 도와드린다며. 빨리 취업해야지. 너는 특히 더.’

 

나를 바라보던 미심쩍은 눈길들.

‘아니, 지금의 나를 내다본 건가?’

헛웃음이 나왔다. 그 꺼림칙한 눈초리들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나에게 달라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듯, 지금의 나는 볼품없고, 초라했다.

변한 것 하나 없이 보잘것없는 예전의 나 그대로.

‘포기할까?’

포기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다. 여기서 포기하면 나는…

‘아니. 일단 이것부터 생각해. 맡은 건 다 해야지.’

더 생각이 깊어지기 전에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불필요한 생각들은 털어냈다.

“어서 끝내고 집에 가자.”

스스로 주문을 걸듯 되뇌며 중얼거렸지만, 역효과로 머리만 아플 뿐이었다.

‘안 되겠다. 화장실이라도 다녀와야겠어.’

찬물이라도 맞으면 정신을 차릴까 싶어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빗소리가 아득해지더니 주변 사물이 비틀리며 시야에서 멀어졌다.

핑-

머리가 돌며 눈앞이 흐려졌다.

‘어?’

정지해버린 머릿속과는 다르게 내 팔은 뭐라도 붙잡으려 허공을 더듬었다.

‘뭐라도 붙잡아야-’

사락.

머리가 바닥에 닿기 직전, 머리카락만이 바닥과 만나는 소리와 함께 나는 가까스로 단단한 의자를 붙잡고 다시 일어섰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비는 그쳤고, 내 자리는 엉망이 되어 있었다. 무언가 큰 소리가 난 것 같더니, 실수로 책상에 물건을 쳤나 보다.

‘많이 피곤하긴 한가 보네. 집에 가면 바로 침대로 뛰어들어야지.’

그래봈자 다시 아침에 일어나면 연구실로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없지만.

슬픈 생각은 뒤로하고 복도로 나오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날 맞이했다.

‘와, 내 앞날 같은걸?’

평소라면 거리낌 없이 어두운 복도를 가로질렀겠지만, 그날따라 몸이 안 좋아서인지, 아니면 새삼스레 어둠에 겁을 먹어서인지, 나는 손으로 벽을 짚어가며 조심히 어둠 속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어찌저찌 도착한 화장실의 수도꼭지에서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밖에 나오지 않았다.

‘잠 깨는 데는 차라리 더 낫지.’

어느 정도 눈이 잘 떠지는 것 같자 나는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비가 그쳐 고요해진 주변을 둘러보던 중, 무심코 시선을 던진 창가에서 묘한 이질감이 몰려왔다.

‘뭐…지?’

분명 창문 뒤는 평소와 다를 것 하나 없는 똑같은 풍경이었다.

가시질 않는 이질감에 창문을 지그시 응시하자, 은은하게 빛이 나는 듯한 착각까지 들었다.

어느새 내 발걸음은 홀린 듯 창가를 향해 내딛고 있었다.

한걸음, 한걸음.

휘이이-

가까이 다가간 창문에서는 미세한 틈 사이로 바람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조심스레 창문을 열자-

끼이익.

눈을 뜨는 것도 불가능할 정도로 거센 바람이 몰아치며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바람?!’

주변의 소란이 가라앉자, 나는 살며시 눈을 떠 눈앞을 확인했다.

짙은 어둠 사이로 보이는 곧게 뻗은 새하얀 손.

마치

‘떠나자, 저 멀리.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라고 하는 것처럼 부드럽고도 다정한 빛이 은은하게 감돌았다.

‘저 손을 잡으면, 도망칠 수 있을까…? ’

나는 머뭇거리다가 마침내 창틀을 밟고 올라섰다.

‘여기서 더 나빠져 봤자야. 나는 이미…’

나는 눈앞의 갑작스런 존재에 의구심을 가지면서도, 의심 없이 손을 뻗었다.

따스한 손이 맞닿은 순간, 거센 바람이 한 번 번 불어와 나를 휩쓸었다.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중심이 흔들리자, 나는 그나마 붙잡고 있던 손에 의지해 더욱 세게 그 손을 붙들었다.

하지만

‘잠깐-’

어쩌면 믿으면 안 되는 것이었는지, 더 생각할 겨를도 주지 않은 채 그 손은 나를 밖으로 창밖으로 당겼다.

‘나, 죽어?’

본능적으로 눈을 감았다.

“…”

하지만 느껴지는 건 추락이 아닌, 시간이 멈춘 듯한 평화로움이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평온함.

‘뭐지?’

나는 조심스레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이미 추락하기 전에 심장마비로 죽었나?’

그러나 이내 눈 앞에 펼쳐진 숨이 멎을 듯한 광경은 그런 생각들을 모조리 덮어버릴 정도로 믿을 수 없었다.

새카만 밤하늘 속 하나하나 밝게 빛나는 별.

눈 앞에 펼쳐진 밤하늘은 온갖 보석을 품은 듯 찬란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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