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불법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피실험체 ‘온주’와 재벌 가문의 병약한 외동아들 ‘진우’. 두 어린이는 우연의 사고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는데….
--나는 세계에 나타난 인공 천재.
정부의 감시를 피해, 여러 가지 사정으로 돈이 필요한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을 매수하여 나는 탄생했다. 한 때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가수를 똑 닮은 백금발 머리카락과 반짝이는 하늘색 눈, 그리고 여러 지식과 문제 해결 능력을 지닌 특별한 어린이.
나를 탄생시킨 목적은 단 하나, 내 특별한 지능을 활용한 실험을 하기 위해서였다.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나이부터, 나는 독방에 갇혀 매일같이 감시를 받으며 마치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듯이, 수많은 고난도 문제를 풀었다. 기본적인 의식주 외에는 전혀 평범한 어린이 취급을 받지 못했다.
이 만행을 주도한 연구소장은, 당연히도 내 정체를 바깥에 들킬까 우려하며 실험과 관련한 인물들을 전부 돈으로 입막음하였다.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 이 일은 사회적인 파장을 불러 올 테니까. 자신이 연구소를 잠시 떠나는 순간에는 관리인들을 고용하여 날 감시하도록 시켰다.
정신적인 고통이 심각했다. 매일같이 내 사생활은 침해당하고, 비참히 부서졌다. 내 존재를 부정하고 싶었던 나날들이 지나, 어느 아득히 깊은 밤이 지나가는 순간이였다.
그 당시 연구소장은 긴 해외여행을 갔었다. 내가 풀어 낸 미해결 문제들을 마치 자신이 푼 것으로 위장하여, 이를 학계에 발표하여 큰 명성과 부를 얻었다. 이 돈으로 자신의 사리사욕이나 채우다니,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짤랑--
독방의 잠금장치가 열리는 소리에, 나는 얕은 잠에서 깨고 말았다. 날 감시하는 데 사용하던 조그만 창문에서, 익숙한 얼굴이 눈을 깜빡였다.
"이리 와, 아가야..."
분명 작은 목소리였지만, 확실하게 들었다. 그 미성의 주인은 다름 아닌 전 국민 가수 '온설'이였다.
그녀는 날 독방에서 꺼내어, 지금까지 일어났던 사건의 전체적인 경위를 알려주었다.
"난... 소속사의 잘못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어. 위약금과 기존에 있던 빚은 날이 갈수록 불어났고, 그러던 중 이러한 제안을 받게 되었는데... 분명 유전자 관련 합법 실험을 하겠다며 사례금을 주었던 게 이렇게 일이 커질 줄은 몰랐어..."
그녀는 울먹이며, 내 작은 손을 붙잡은 채로 고개를 푹 숙였다.
"부하 연구원들도, 고용인들도... 그리고 다른 유전자 기증자들도 네 구출에 전부 동의했어. 다들 이 일을 하면서, 네 상태를 보곤 죄책감에 시달렸거든... 어차피 약속한 돈도 다들 연구소장에게 속아 대부분 받지 못했고. 그리고... 이건 우리의 잘못도 있어... 정말, 정말 미안해..."
"..."
"자, 도망치자. 우리들이 힘을 모아 탈출구를 확보했어. 어차피, 이건 불법 실험인지라 네가 사회에 나간 뒤에는 널 다시 이 곳에 데려 올 방도도 없을 거야. 뒷감당은 어른들이 할 테니까, 어서, 어서..."
난 원래 쉽게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눈물을 흘려도 해결되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끊임없는 문제 풀이와, 이 비인간적인 생활은 울음 하나만으로 고쳐지는 것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른들이 알려 준 탈출구를 향해 뛰어가며, 난 숨이 점점 차오르며 이내 눈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슬픈 감정의 눈물인지, 기쁜 감정의 눈물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눈물을 흘리는 나조차도...
그렇게 정부의 감시를 피해 꼼꼼히 위장한 지하 연구소의 건물을 빠져나온 나는, 어른들의 도움으로 보육 시설에서 지내게 되었다.
"이름은...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온주라고 불러주세요."
비록 난 지금껏 이름이 없었지만, 나에게 애정을 보이던 몇몇 연구소 관리인들이 나에게 임시로 붙여 주었던 별명 같은 것이 있었다. 극악의 환경에서도, 날 남몰래 도와주던 어른들에게 항상 친절한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이 예쁘다며 따뜻할 온(溫), 두루 주(周) 를 합쳐 '온주' 라고 불러주곤 했다.
이후 날 입양하게 된 부모님도, 내 이름을 무척 좋아했다. 불임으로 아이를 입양하겠다고 마음먹은 50대 초반의 다정한 부부였다. 난 새아버지의 성을 따라 '김온주' 가 되었다.
난 공부하는 것에 꽤나 흥미가 있었다. 물론, 이전처럼 기계식으로 문제를 풀이하는 것이 아닌-- 내가 관심을 가지는 분야들에 대한 공부를 좋아했다. 부모님께서는 그런 나를 전폭 지원해주셨고, 그리 유복한 집은 아니였지만, 매일같이 원없이 포근한 사랑을 받고 지냈다.
그런 내가 어느 날 갑작스럽게 쓰러지게 된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원래 독방에서 각성제를 맞아가며 긴 시간 공부를 하던 몸이 이제는 각성제 없이 버티려니 분명 그 문제가 제일 컸겠지만 말이다.
황급히 응급차에 실려 간 나는, 그렇게 몇 달 간의 입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난 내 나이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스스로 알 경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마 실험실에서 제대로 된 영양 공급을 받지 못해, 성장이 더뎌 아마 '진짜 초등학교 1학년' 보다는 나이가 몇 해 정도는 많을 것 같다고 예상은 했다.
그럼에도 내가 초등학교 과정을 처음부터 거친 이유는, 평범한 사람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진작에 또래를 초월한 지능을 가졌지만서도, 학교 생활이 너무나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입원 때문에 아까운 등교일이 몇 달이나 날아가다니. 아쉬운 마음에, 부모님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집에 있던 공부책을 꺼내 읽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였다.
"이번이 몇 번 째 입원인지..."
장신의 정장을 입은 아저씨가 내 옆 침대에 눕게 된 검은 머리의 소년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간호사들의 지나가는 말에 의하면, 태어날 때 부터 신체가 많이 약해서 자주 입원한다는 것 같았다.
난 그 아이와 친해지고 싶었다. 책을 읽는 건 조금 지루해질 참이였기 때문에, 일 때문에 평일에는 바쁜 부모님을 대신할 말 상대가 필요했다.
"저기, 안녕?"
그 아이가 깨어 있는 틈을 타, 나는 처음으로 인사를 건냈다.
"..."
고양이같이 날카로운 눈동자가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한참 뜸을 들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대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라서요.."
그러곤, 이내 등을 돌려 눈을 감곤 누워버렸다.
"..."
난 순간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그 아이가 이해는 갔지만서도, 어째서 그런 반응을 취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 날 밤, 나는 창가의 밤하늘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밤 늦게까지 가족을 위해서 일하시는 부모님, 친절한 우리 반 선생님과 친구들, 그리고 날 비극에서 꺼내 준 어른들...
맞은 편에는 아까 그 소년이 커튼을 친 채로 자고 있었다. 그 쪽을 빤히 바라보며, 그도 그만의 깊은 생각이 있겠지- 하며 뻔할지도 모르는 추측을 거듭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시간은 10시 40분을 조금 지나고 있었다. 이렇게 늦게 일어난 적은 처음인데, 분명 어젯 밤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늦게 자 버린 것이 원인이였을 것이다. 맞은편의 소년은, 내가 일어나도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듯이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림, 그 소년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보다도 작아보이는 그 고사리같은 손으로, 조그마한 흰 도화지에 연필로 이런저런 스케치를 하고 있었다. 거리가 멀어 자세히는 보이지 않았지만, 꽃이나 나무 같은 식물들을 그리는 것 같았다.
'그림을 좋아하는 건가?'
괜히 물어보고 싶었지만, 어제의 일 때문인지 쉽사리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그리는 모습을 지켜 볼 뿐이였다.
그런 나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소년은 그림을 재빨리 감추곤 날 바라보았다.
2025.07.23 12:14
2025.07.21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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