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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셋이 모이면 로판이 깨진다
칠리덮밥
12화무료 12화

자유 연재 | 글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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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셋이 모이면 그릇이 깨진다고? 아니, 여자 셋이 모이면 로판이 깨진다. 현실에 찌든 직장인, 서브남주에 진심인 오타쿠, 재미만 있으면 뭐든 좋은 금수저. 세 여자의 욕망이 《백은의 성녀와 폭군의 구원》 세계를 뒤흔든다! 김소윤: “원작대로 가야 우리가 나갈 수 있어.” 김민주: “내 최애는 여주랑 이어져야 해!” 박재민: “이게 진짜면… 더 재밌는걸?”

#궁정로맨스#서양풍#치유물#힐링물#차원이동#걸크러시#능글녀#상처녀#짝사랑녀#털털녀#로맨스판타지#시스템/상태창

띠링. 띠링.

메신저 알림음이 연달아 울렸다. 

새벽 세 시였다.

눈두덩이 따끔거렸다.

모니터 불빛에 말라붙은 콘택트렌즈가 눈알을 긁고 있었다.


소윤은 조용히 숨을 들이쉬었다.

다시, 마지막 문단을 바라봤다.

커서가 깜빡였다.

지우고, 쓰고, 또 지웠다.

이미 수십 번은 반복한 동작이었다.


‘그래서, 결론이 뭔데.’

팀장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싸늘하고, 딱딱하고, 그보다 더 싫었던 건... 익숙했다는 거.


어깨가 천근만근이었다.

메신저를 덮고 커피를 들었지만, 이미 식어버린 지 오래였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집에서는 둘째 등록금, 막내 병원비.

회사에서는 ‘기대한다’는 말 뒤에 따라오는 또 하나의 프로젝트.

칭찬은 언제나 보상이 아니었다.

소윤에겐, 더 많은 밤을 앗아가는 약속이었다.

'내 시간? 그건 늘 마지막 페이지에 붙는 각주 같은 거지.'


“……차라리 어디로든 사라지고 싶다.”

입술 사이로, 한숨처럼 새어 나왔다.

누구에게 들려주려는 말도 아니었다.

그저, 견딜 수 없어 터져버린 생각의 파편.


눈앞이 흐릿했다.

잔상처럼 겹쳐 보이는 커서가 깜빡이고, 화면은 더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진짜 이러다, 죽겠다.’


그녀는 손가락을 떼지도 못한 채, 고개를 툭 떨궜다.

뺨이 먼저 닿았다.

딱딱한 키보드의 요철이 볼살을 눌렀고.

그다음엔, 지치고 뜨거운 노트북의 열기.

눈꺼풀이 무거웠다.

그러다 생각이 뚝, 끊겼다.


그녀는 그렇게 잠에 빠졌다.

아니, 무언가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끊어진 실처럼, 현실이라는 이름의 무게에서 천천히 풀려나고 있었다.


소리도, 빛도, 감정도, 가늘고 투명한 연기처럼 스러졌다.

그리고 따스하고 부드러운 무언가가 등을 감쌌다.


소윤은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뼈마디 하나 쑤시지 않았고, 입안도 깔끔했다.

야근 끝의 텁텁함도, 뒷목의 묵직한 통증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침대?’

두 눈을 비비려다 말고, 손끝을 멈췄다.

순간, 아득한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마지막으로 침대에서 잔 게… 언제였더라?


하지만 익숙해야 할 천장은 없었다.

대신 눈앞을 가득 채운 건, 눈이 멀 것처럼 찬란한 샹들리에였다.

수백 개의 크리스털이 각기 다른 빛을 품고 있었다.

붉게, 푸르게, 금빛으로.

빛의 파편들이 천장 위에서 춤을 추듯 흩날렸다.

너무 찬란해서, 눈을 감고 싶어질 정도였다.


고개를 돌리자, 시야에 낯선 풍경이 들어왔다.

곡선이 살아 있는 앤티크 가구, 금실로 수놓인 벨벳 커튼이 부드럽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공기 중엔 익숙하지 않은 꽃향기가 은은히 감돌았다.

찔리듯 강하지도, 무르듯 흐르지도 않는 묘하게 고급스러운 향.


“……?”

소윤은 숨을 고르며 몸을 더듬었다.

까슬한 정장 치마도, 뻣뻣한 블라우스도 없었다.

하늘하늘한 실크 잠옷이 그녀의 몸을 은은하게 감싸고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촉감이었다.

그제야, 소윤의 눈에 낯선 공간이 다시 또렷이 들어왔다.


‘……꿈인가?’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회식? 어젯밤? 아니, 회식은 지난주였잖아.

기억들이 퍼즐처럼 흩어져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맴돌았다.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제 뺨을 세게 꼬집었다.

“아야!”

선명하게 밀려든 통증에 저도 모르게 비명이 튀어나왔다.

피부가 얼얼했다.

…꿈이 아니었다.


소윤은 숨을 고르며 이불 끝을 걷어냈다.

몸을 일으키자, 발바닥에 닿은 양탄자가 구름처럼 폭신했다.

어느 비즈니스 호텔에서도 느껴본 적 없는 촉감이었다.


그녀는 조심스레 발을 옮겼다.

방 한쪽, 우아하게 세공된 전신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거울 속에는, 분명 자신의 얼굴이 있었다.

하지만 어딘가 달랐다.


피부는 지나치게 매끄럽고, 눈동자는 어쩐지 더 밝았다.

익숙한 얼굴인데, 이상할 만큼 생경했다.

‘……정말 나 맞아?’

입꼬리가 자신도 모르게 떨렸다.

시선을 더 두고 싶지 않았다.


소윤은 천천히 창가로 향했다.

두 손으로 육중한 커튼을 밀어젖히자, 현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광경이 펼쳐졌다.

흘러내리는 분수대, 정교하게 다듬어진 미로 정원, 붉고 노랗고 보랏빛으로 흐드러진 꽃들이 바람에 일렁였다.

마치 그림책 한 장면처럼, 모든 것이 완벽했고, 모든 것이 낯설었다.


“……말도 안 돼.”

숨이 약간 떨렸다.

어젯밤, 차라리 사라지고 싶다고.

진심 반, 체념 반으로 내뱉었던 그 말이, 정말로 이루어진 걸까?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분명했다.

그녀는 지독했던 현실에서, 정말로 ‘사라져’ 있었다.


***


김민주는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베개에 묻었다. 

스마트폰 속 ‘백은의 성녀와 폭군의 구원’ 마지막 화는 그녀의 심장을 산산조각 냈다.


“작가님, 어떻게 우리 레오한테 이럴 수가 있어요….”

그녀의 최애 서브남주, 레오니크. 

여주인공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지만, 결국 그녀의 행복을 빌어주며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비운의 기사. 

그의 마지막 독백에 민주는 밤새 오열했다.


‘부디, 다음 생의 당신은 행복하기를.’

그건 내가 할 말이라고!


“우리 레오만큼은 행복해야 해. 제발….”

그렇게 중얼거리며 민주는 레오니크의 행복을 간절히 빌다 잠이 들었다. 

굿즈로 산 레오니크 다키마쿠라를 꼭 껴안은 채였다.


다음 순간, 등을 찌르는 딱딱한 감각이 그녀를 깨웠다.

“으음…”

몸을 일으키자, 삐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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