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의가 한 번으로 끝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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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빈
14화무료 14화

자유 연재 | 글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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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쿵, 쿵, 쿵. 불현듯 심장이 쥐어짜이듯 꽉 조이며, 두방망이질을 치기 시작했다. ‘안 돼.’ 언제나 예고 없이 시작되는 이런 감각은 일종의 신호였다. 곧 ‘또 다른 인생’이 시작되리라는 신호. 가슴속에서 이러한 통증이 시작되면, 나는 또다시 새로운 몸에 빙의해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당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흐릿해진 시야로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다고 내가 당신을 바라봐 줄 일은 없어.” 목을 콱 움켜쥐는 혐오의 눈빛을 온몸으로 감당해 내는 채로. * * * “그만둬, 아멜리아.” 들끓는 숨을 욱여넣은 듯한 공작의 입술 사이로, 끝내 내 이름이 들려왔다. “왜요. 다정하게 이름이라도 불러 주면, 내가 감격해서 다시 날 받아달라고 매달릴 줄 알았어요?” 그래. 공작은 꼭 그러리라고 예상했다는 것과 같은 얼굴이었다. 일평생 공작이 겪어 온 그의 부인은 항상 그래 왔던 여인이었을 테니.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매우 애석하게도. 그러다 내가 누구인지 깨닫고, 피어스가 누구였는지 깨달았을 때. 하여 그를 버리고 떠나야만 하는 때가 되었을 때. “가지 마.” 붙잡는 남자를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신을 다시 만나 내 목을 내놓고 빌어서라도 속죄하려는 이기심에, 수백 년을 돌고 또 돌면서 무작정 기다렸어.” 온몸을 묶는 그 한마디에 뭣 모르고 멈춰 선 나는. “당신이 돌을 맞든 불살을 맞든 내가 전부 대신 맞고 버티며 당장 오늘 죽을 것처럼 하루하루를 살아내서, 반드시 당신을 지키겠다고 심장에 아로새겼어.” 어느 순간 모든 세월을 통틀어 가장 힘들었던 마지막 빙의를 끝내지 말자고―. “거짓말.” 아니 영영 끝나지 않게 해 달라고―. “그 마음에 사랑이 더해지면 어떤 미친 짓을 하는지, 내가 지금 증명했잖아.” 내 발치에 거대한 무릎을 떨군 그처럼 빌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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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딜런 씨 아니신가요? 이번에 투자한 사업도 크게 성공하셨다고 들었어요.”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어쩜 겸손도 하셔라.”

 

나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머금고는 글라스에 든 샴페인을 마셨다.

 

잘 다듬은 외양에 성공한 사업가를, 주위 영애들은 두 손을 모으고 쳐다보기 바빴다.

 

평민의 신분이나 공작가 파티에까지 초대될 정도로 그 영향력을 키워낸 인물.

 

이번 빙의 대상은 ‘딜런 아이트’라는 20대 청년이었다.

 

3년 전, 처음 이 몸에서 눈을 떴을 때 그는 신문 배달부 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이 몸에 들어오게된 이후 그의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무수한 빙의를 반복하며 영생의 삶을 살아온 나의 견식 중 사업적 수완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어느 날 내가 갑자기 신문 배달부가 되었대도, 나는 그다지 놀라지도, 걱정하지도 않았다.

 

늘 그랬듯 별안간 새로이 주어지는 삶을 체념하며 받아들이고, 묵묵히 그의 인생을 살아낼 뿐이었다.

 

그러다 보면 몇 번째인지도 모를 타인의 삶을 나는 언제나 윤택하게 누리고 있었다.

 

비록 그 기간이 언제까지인지는 예상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때였다.

 

꽈악―.

 

쿵, 쿵, 쿵, 쿵.

 

불현듯 심장이 쥐어짜이듯 꽉 조이며, 두방망이질을 치기 시작했다.

 

쨍그랑―.

 

“어머!”

 

“딜런 씨, 괜찮으세요?!”

 

나는 들고 있던 글라스를 놓쳐 버렸다.

 

바닥에 나동그라진 유리 조각들을 내려다보던 나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안 돼.’

 

언제나 예고 없이 시작되는 이런 감각은 일종의 신호였다.

 

곧 ‘또 다른 인생’이 시작되리라는 신호.

 

“저는 괜찮습니다. 외려 영애분들이 다치시지는 않았는지요.”

 

하나 예고는 예고일 뿐. 나는 익숙하게 대처하기 시작했다.

 

여상한 표정 뒤에 정신을 바짝 거머쥐고, 입매를 끌어올린 다음 정중하게 말했다.

 

“저는 슈트에 샴페인이 묻어, 실례지만 잠시 자리를 좀 비우겠습니다.”

 

“아, 네! 어서 다녀오세요.”

 

나의 다사로운 미소에 영애들은 금세 볼을 살짝 붉히며 자리에서 몇 걸음 물러나 주었다.

 

답례로 한 번 더 눈인사를 해 준 나는 갈급함을 숨기고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있는 힘껏 차분함을 유지한 눈동자가 사방을 둘러봤다.

 

몸을 숨길만 한 장소를 찾아야 했으나, 공작저의 파티장이 워낙 넓었고 초대객들이 북적인다는 게 문제였다.

 

‘이 많은 인파를 헤치고 저택을 빠져나가기에는 시간이 없어.’

 

다 회차의 빙의를 경험하면서 알게 된 몇 가지 불변의 법칙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내가 이 몸을 떠나 다른 몸에 빙의하게 되면 이 몸의 주인이 목숨을 잃게 된다는 것이었다.

 

사인은 늘 똑같았다.

 

원인 불명의 심장마비.

 

따라서 이 몸은 잠시 후면, 영문을 알 수 없는 심장마비에 의해 세상을 떠나게 될 형편이었다.

 

‘이번에는 어디서 생을 마감해야 하지?’

 

쿵, 쿵, 쿵, 쿵.

 

심장이 강파르게 뛰는 와중에도 나는 내가 세상을 떠날 만한 장소를 진중히 고민했다.

 

‘그래. 저기야.’

 

문득 나의 눈에 파티장과 후원을 연결하는 문이 보였다.

 

샴페인이 묻은 슈트의 매무새를 정리한 후, 후원에 들러 잠시 바람을 쐬러 나갔다가 돌연사를 한다…….

 

‘나쁘지 않은 걸.’

 

결론을 내린 나는 곧장 후원으로 향했다.

 

후원은 파티장과 바로 연결되어 있어 이동하는 데에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문을 밀고 나오니 까만 하늘 아래로 떨어지는 눈발이 굵었다.

 

몹시 추운 겨울이라, 후원이 무척 아름다웠음에도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없었다.

 

최대한 후미진 공간을 찾아 발걸음을 재촉하면서도 ‘이번에는 눈을 맞으며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무심하게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뺨에 닿는 눈송이의 감촉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잠시 후면 눈꽃이 자아내는 차가운 온도도 다른 이의 몸으로 느끼게 될 터였다.

 

‘이쯤이면 괜찮겠네.’

 

타인의 눈에 띄지 않을 만한 사각지대를 찾는 일은 이제 너무나도 익숙했다.

 

그렇게 나는 3년간을 무탈하게 빙의했던 청년, ‘딜런 아이트’의 생을 마감할 적당한 장소를 찾아내었다.

 

후원 곳곳을 밝히던 가스등이 없어 주위는 무척 캄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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