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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을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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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아J
11화무료 11화

자유 연재 | 글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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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룩 – 대륙에 살고 있는 유일한 골드 드래곤. 세상 누구도,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다. 가장 강한 드래곤이라 드래곤들의 지배자가 되어야 하지만, 무심한 성정 때문에 드래곤의 숲에서 홀로 살아간다. 드래곤은 망각을 모르는 존재인데, 인간과 마물의 전쟁 이후 기억의 일부분이 칼로 도려낸 것처럼 사라지고 없다. 다짜고짜 약속을 지키라고 하는 당돌한 아이샤에게 딱딱하게 굳어있던 심장이 반응하기 시작한다. 아이샤 칼팬 - 예지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칼팬 가문의 마녀. 키워준 마녀 바바라를 통해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이후 베를레앙 왕실에 복수하기 위해 왕실 소속 마법사가 된다. 복수를 위해 약속을 지킬 드래곤을 찾으러 쿠미드 왕국으로 가던 중에 만난 파룩을 자신이 찾는 드래곤이라고 확신해서 주위를 맴돌다 운명처럼 끌린다. 북쪽의 대국 쿠미드로 정략결혼을 하기 위해 가던 도중에 철없는 공주님이 밤마다 몰래 붙어먹던 레드 드래곤에게 납치를 당한다. 왕실 소속 마법사 아이샤는 공주님을 찾기 위해 애를 쓰지만, 처음부터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완벽하게 사라져 버린다. 공주님이 사라진 사실이 알려지면 대륙에 피바람이 불게 되기 때문에 아이샤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백금발 가발을 쓰고 공주님 대역을 시작한다. 그런데 쿠미드 왕국에 도착해 왕을 알현하기 위해 간 자리에서 이 사달이 나는데 지대한 공을 한 골드 드래곤 파룩과 재회하게 된다. 처음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공주님을 찾기 위해 파룩에게 물귀신 작전을 벌인 것인데, 이상하게 이 남자…… 아니, 드래곤과 함께 있으면 심장이 욱신거리고 안심이 된다. 아이샤는 무사히 공주님을 찾고 오랜 소원이었던 복수도 마칠 수 있을지... 파룩은 이상하게 눈이 가고 신경이 쓰이는 아이샤의 진짜 정체를 알아내고 잃어버린 기억을 찾을 수 있을지...

#로맨스판타지#서양풍#기억상실#복수#소유욕/독점욕/질투#인외존재#마법사#능력녀#카리스마남#능력남

쾅쾅쾅, 쾅쾅쾅.

아이샤는 부서져라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눈을 번쩍 떴다.

언제 잠들었지?

아이샤는 예민한 편이 아니었으나, 낯선 여관의 익숙하지 않은 소음과 야릇한 신음이 신경 쓰여 잠이 오질 않았다.

한참을 뒤척이다 자는 걸 포기하고 일어나 고대 마법서를 읽고 있었는데, 눈을 뜨니 책이 보이지 않았다.

아이샤는 잠을 깨기 위해 마른세수를 한 뒤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당연히 책은 침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책을 줍기 위해 손을 뻗는데, 다시 부서져라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이번엔 쾅쾅쾅 소리와 함께 다급한 마리안젤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샤, 아이샤!”

한밤중에 마리안젤라가 찾아와 문을 두드릴 땐 안 좋은 일일 확률이 백 프로였기에, 아이샤는는 낮게 한숨부터 내쉬었다.

너무 많이 봐서 너덜너덜해진 고대 마법서를 집어 침대 위에 올려둔 뒤에 문으로 걸어갔다.

다시 문을 두드리려는 순간 문이 열렸는지, 마리안젤라가 주먹을 쥐고 문 두드리는 자세로 서서 아이샤의 이름을 한 글자씩 말했다.

“아…… 이, 샤.”

직업병은 무서운 거구나.

마리안젤라가 시야에 들어오자, 베를레앙 왕실 소속 마법사인 아이샤의 눈이 공주님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빠르게 훑어내렸다.

이 밤중에 뭘 하다 찾아왔는지, 신비로운 백금발의 머리카락은 산발이 되어있고 청초하게 아름다운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건 공주님이 걸치고 있는 옷이었다. 한마디로 ‘맙소사’였다. 아이샤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를 뻔했다.

아무리 호위 기사들을 전부 물리고 3층 전체에 보호마법을 쳐놨어도 그렇지. ‘베를레앙의 찬란한 보석’이라고 불리는 고귀한 공주님이 잠자리 날개처럼 얇디얇은 나이트가운 하나만 대충 걸친 모습으로 여관 복도를 돌아다니시다니.

아이샤는 무슨 일로 찾아온 거냐고 물어봐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너무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뭘 했길래, 문을 늦게 연 거야? 그보다 당장 내 방으로 가자.”

“예?”

아이샤가 당황해서 바로 따라나서지 않고 바보처럼 멍하니 서서 마리안젤라의 얼굴만 쳐다보자, 마음이 급한 공주가 다그치듯 말했다.

“뭐해? 안 나오고. 급하니까 가면서 설명해 줄게.”

언뜻 보면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말투와 행동 같았지만, 아이샤는 공주님의 천사같이 아름다운 얼굴 뒤에 감춰진 두려움과 불안함이 고스란히 보였다.

뭐지?

아이샤는 본능적으로 불길함을 직감하는 순간, 살갗을 스치는 서늘한 느낌에 소름이 돋았다. 굳이 듣지 않아도 마리안젤라가 들려주겠다는 이야기가 좋지 않은 이야기임을 확신했다.

젠장, 철부지 공주님이 또 무슨 사고를 친 거야.

아이샤는 한밤중에 여관에서 일어날 수 있는 황당한 사고가 뭐가 있을까, 생각하며 마리안젤라를 따라나섰다.

“음, 그게…… 그러니까…… 아이샤도, 잘…….”

뜬금없이 웬 옹알이? 얼마나 대단한 사고를 쳤길래 도도한 공주님이 변명도 못 하고 옹알이를 하는 거지?

아이샤는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옆의 옆의 옆방이라 몇 발자국 걷지 않았는데, 공주님이 묵는 방에 도착했다.

아이샤가 손잡이를 밀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마리안젤라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그녀의 손을 움켜쥐었다.

아이샤의 표정이 단박에 굳자, 마리안젤라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남자를 홀릴 때 짓는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절대 화내거나 소리를 지르면 안 돼.”

“공주님, 그 가식적인 미소 저한테는 안 통해요. 사람을 죽인 것만 아니면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아이샤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마리안젤라의 손을 옆으로 치우고 문을 활짝 열었다.

훅, 끼치는 야해 빠진 정사 냄새에 미간이 와락 찌푸려졌다.

와, 씨! 말문이 막힌다는 게 이런 건가. 이래서 살인의 충동이 일어나는 거구나. 미치지 않고서야…… 돌았네, 돌았어. 그것도 단단히.

아이샤는 쿠미드 왕국으로 정략결혼을 하기 위해 가는 도중에 여관에서 남자를 꼬셔 화끈하게 정사를 치른 마리안젤라의 발랑 까짐에 혀를 내둘렀다.

개는 똥을 참아도 공주님은 남자, 아니 섹스를 참지 못 한다에 내 전 재산을 걸 수 있을 만큼 질렸다.

아이샤는 뜨거운 열기와 비릿한 냄새로 가득 찬 방 안에 들어가기 정말 싫었지만, 크게 숨을 내쉰 뒤에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세상에나 맙소사!

아이샤는 발랑 까진 뻔뻔한 공주님 덕분에 단련이 돼서 웬만한 일에는 크게 놀라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흠칫 놀라 저절로 발걸음이 멈췄다.

기막히게도 붉은 피로 물든 눈처럼 하얀 침대 위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거구의 남자가 대자로 엎어져 있었다.

미친,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아이샤는 가까스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방안을 둘러봤지만, 특별한 점을 발견하진 못했다.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위해 ‘어휴, 내 팔자야.’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한 번 더 숨을 크게 내쉬었다.

아이샤는 조심스럽게 방안으로 걸어 들어가 침대 위에 엎어져 있는 나신의 남자를 살펴봤다.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복상사였다.

다행히 남자는 죽지…… 아니, 아니, 아니 이걸 죽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 건가?!

심장 박동 소리가 들리지 않고 피가 혈관을 따라 질주하지도 않는데, 불가사의하게도 남자는 죽지 않고 그대로 멈춰있었다. 한마디로 모든 감각 기관이 올스톱 상태였다.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싶어 무척 혼란스러웠지만, 당장은 신원을 알지 못하는 아랫도리 가벼운 남자보다 사고뭉치 공주님의 상태를 확인하는 게 우선이었다.

“공주님은 괜찮으세요?”

좀 전엔 자다 막 일어난 데다 복도가 어두워서 몰랐었는데, 마리안젤라의 얼굴과 목에 피가 조금 튀어있었다.

아이샤는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 마리안젤라의 얼굴에 묻은 피를 자신이 입고 있는 잠옷 소매로 닦아주며 유심히 살펴봤다. 다행히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마리안젤라는 ‘베를레앙의 찬란한 보석’이라고 불리는 귀한 공주님이었다. 그녀의 얼굴에 작은 상처라도 생기는 날이면 시녀들이 줄줄이 불려가 험한 매질을 당했었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안도의 숨이 흘러나왔다.

“이 피는, 내 피가 아니야. 난 괜찮아.”

괜찮다고 말하는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으나, 끝이 살짝 떨렸다.

마리안젤라는 완벽한 공주인 척하는데 이골난 데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그러나 아이샤는 동물보다 더 예리한 감각을 가진 탓에 바로 떨림을 알아차렸다.

“공주님 피가 아니라니 다행이긴 한데, 이 남자는 왜 이러고 있는 거예요?”

아이샤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추궁하듯 물었다.

“그게…… 그러니까, 아이샤도 잘 모르겠어.”

마리안젤라는 상황을 되짚으려고 노력하며,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로 침대에 엎어져 있는 글렌을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글렌의 탄탄한 근육질 몸을 끌어안고 죽을 만큼 황홀한 천국을 맛보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끔찍한 지옥이 찾아왔어.”

아이샤는 불안하게 쿵쾅거리는 마리안젤라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이어질 말을 차분히 기다렸다.

“오늘따라 좀 심하게 흥분하긴 했는데, 글렌은 원래 좀 과격하고 거친 편이라…….”

오늘따라?

아이샤는 순간 어이가 없어 눈을 치켜떴다.

아무리 섹스에 환장했어도 그렇지. 어떻게 정략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와, 씨! 진짜 발정난 짐승 새끼도 아니고. 발정난 짐승 새끼도 이보다는 덜하겠다.

아이샤는 이번 여정 중에 마리안젤라가 밤에 남자를 불러들이지 않길래 정략결혼을 앞두고 철이 좀 드셨구나, 하고 내심 안심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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