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하제일고금 절대 고수이자 무림의 공적, 천마의 목을 베고 사망한 유진. 깨어나 보니 60년 뒤, 망해가는 천뢰문의 둘째 공자가 되었다! 유진의 공적이 모두 사라진 무림과 그에 숨겨진 과거의 진실. 문파를 재건하고 천마의 부활을 막기 위한 유진의 강호행이 시작된다.
1. 유진(流進)이 아니라 유진(流振) - (1)
“허억… 허억….”
천마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거의 죽어가는 남자를 보고 몸을 떨었다.
‘이게… 도대체….’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다.
마교도의 하늘이자 정파의 절대 고수를 갈기갈기 찢으며 살아 움직이는 죽음이라 불리던 자신이 고작 한 남자에게 떨고 있었다.
“…….”
하지만 천마의 반응조차 확인할 힘도 없던 남자는 땅에 박힌 자신의 검을 바라보았다.
반토막이 나버린 검.
자신의 문파에서 신물이라 불렸던 검이 부러졌으나, 그게 뭐 대수냐는 듯 찢겨나간 오른팔을 대신하여 왼손으로 검을 잡았다.
어떻게든 눈앞에 있는 자를 베겠다는 일념으로 죽어가는 몸을 이끌고 움직이는 남자.
그 남자를 보며 인간이기 이전에, 동물로서의 본능이 천마를 뒤로 물려 생존을 강구했으나….
서걱!
눈 한 번 깜짝할 사이에 반쯤 잘려 나간 천마의 목이 마침내 땅으로 떨어져 버렸다.
그렇게 드디어 천마를 베는 데 성공한 남자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천마가 누구인가.
십만대산(十萬大山)에 사는 천마신교(天魔神敎)의 우두머리이자 마인이라 불리는 자들의 정점.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으로 불리며 정파 수많은 고수의 목을 베어온 절대적인 악(惡).
우는 소년도 천마가 내려온다는 말을 들으면 당장이라도 울음을 뚝 그칠 만큼, 공포라는 감정의 대명사 아니었는가.
하지만 베었다.
마침내 천마의 목을 베어 이 길고도 긴 전쟁을 끝낼 수 있었다.
“하….”
그리고 이 승리의 주역.
천뢰신검(天雷神劍) 유진(流進)은 웃음을 지으며 눈물을 흘렸다.
“헉… 헉….”
뒤에서 들려오는 숨소리가 확연히 줄어 있었다.
정파의 내로라하는 절대 고수 50명이 모였지만 살아남은 이는 고작 다섯 명.
부상을 입고 주저앉은 4명의 절대 고수는 자신들을 대신하여 천마의 목을 벤 유진을 바라보았다.
화산의 매화검선(梅花劍仙) 청헌(淸獻).
무당의 무당검제(巫堂劍帝) 운성(雲星).
소림의 법윤(法倫) 방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미의 아미신녀(峨嵋神女) 선화(善和).
그들 역시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는 듯 당혹스러운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희망이라는 새로운 감정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모두가 그토록 원하고도 원했던 순간이었다.
이 대전의 생존자이자 천마에 대항한 협객이며, 천마를 베고 세상을 어지럽힌 마교를 끝낸 자들.
영웅의 이야기는 천 년 동안 이어져 내릴 것이고 그 영광은 그간 무시를 당한 천뢰문(天雷門)을 일으킬….
“쿨럭!”
그 순간 유진은 피를 토했다.
“소제!”
깜짝 놀란 청헌이 급히 달려와 쓰러지는 유진을 부축했다.
청헌 역시 안색이 좋지 않았지만, 당장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유진의 모습에 청헌은 급히 앞으로 나섰다.
“이런…!”
오른팔이 찢겨나가 엄청난 피가 뿜어지고, 과도한 내공 운영과 선천지기의 사용으로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는 유진이었다.
“흐읍!”
임시방편으로 청헌이 자신의 남은 내공을 이용해 어떻게든 유진의 생명을 되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그만하게.”
뒤에서 들려오는 암울한 목소리에 청헌은 희망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으나… 이미 죽어가는 유진의 몸을 되살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
죽어가는 게 느껴진다.
심장이 서서히 멎기 시작했고, 팔과 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
“제발….”
“…미안하네.”
운성의 말에 유진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
삼류 문파로 무시를 당했던 천뢰문이었다.
항상 무시와 경멸을 받으며 지냈다.
처음 검을 잡고 나섰을 때도 그 누구 하나 인정하지 않았고, 사악한 사파의 무리를 척살하는 협행(俠行)의 길을 나섰을 때도 모두가 비웃었다.
고작 삼류 문파 따위.
고작 무명소졸 따위.
그래서 더욱더 검을 휘둘렀다.
출신은 삼류지만, 나 자신의 실력은 일류… 아니, 그 이상을 넘어 정점을 찍겠다고.
헌데 남은 건 죽음뿐이다.
마교와의 전쟁에서 문도들을 이끌고 제일 먼저 나섰다.
역경 속에서도 웃으며 자신을 지지했던 그들이 비명 속에 죽어 나갈 때, 그저 눈물을 삼키고 앞으로 나섰다.
오로지 인정받기 위해.
천뢰문이 진정한 협의 길을 걸었다고 증명하기 위해.
그런데 이렇게 모두가 죽고, 자신도 죽는다.
이 모든 게 허망할 뿐이었다.
하지만 눈에 아른거리는 이들이 있었다.
“천뢰문을… 제 가족들을….”
천뢰문에 남은 이들이 떠올랐다.
아마 이들에게 부탁한다면 한평생 그 누구에게도 남부끄럽지 않게 살 수 있을 거다.
“제발….”
그렇게 힘을 잃은 유진의 눈빛에서 빛이 사라졌다.
향년 49세.
천뢰문 12대 문주이자 천하십대고수로 손꼽혔던 천뢰신검 유진.
천마의 목을 직접 베고 이 자리에서 눈을 감고 말았다.
* * *
“허….”
진맥을 놓던 의원의 입에서 한숨이 나오는 것을 보며 천뢰문 14대 문주, 유성학은 조바심이 났다.
그의 뒤에 있던 천뢰문의 장로 둘은 심각한 상황 속에 감히 입도 열지 못한 채 그저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어찌 그리 한숨을 놓는단 말입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더 이상 손을 볼 것이 없습니다.”
“네, 넷?!”
의원이 더 이상 치료를 할 수 없다는 말에 유성학은 깜짝 놀랐다.
“어찌 그런 말씀을…!”
“무, 문주님. 그게 아니라….”
자신의 양팔을 붙잡은 채 절망하는 유성학에, 의원은 헛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일단 몸은 정상입니다.”
“헌데 왜 아직도 깨어나지 않는 겁니까?”
“아무래도… 정신적인 충격이 있는 듯합니다.”
“저, 정신이요? 설마 우리 진이의 정신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제발 살아만 달라고, 그간 천지신명과 원시천존, 그리고 부처에게 간절히 빈 유성학이었다.
그렇게 기도한 끝에 목숨은 건졌지만….
“죄송합니다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했습니다. 외상은 물론이고, 내상까지 전부 치료했지만 그뿐입니다.”
의원 역시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누워있는 13살 소년을 바라보았다.
“일단 경과에 따라 차도를 지켜봐야 할 듯합니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지금 드려도 될지 애매하지만….”
“…?”
또 문제가 있단 말인가?
흐려지는 말끝에 유성학이 더욱 절망에 빠진 얼굴을 하자, 의원은 그게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치며 설명했다.
“그, 그게….”
“말씀하십시오. 이미 들을 준비가 되었으니.”
“공자님의 기맥이 넓어지셨습니다.”
“…네?”
그 순간 유성학과 뒤에 지켜보던 장로들이 의아해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기맥이 넓어지다니?!”
“어쩌면 제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한 달 전쯤에 공자님의 기맥을 진단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었지요.”
기맥(氣脈).
무인들은 단전에 모은 내공을 기맥을 통해 사용한다. 즉 기맥이 넓다는 뜻은 그만큼 기의 활용이 훨씬 수월하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더군다나 기맥뿐만 아니라 다른 신체 기관도 과거보다 훨씬 더 좋아지셨습니다. 보십시오.”
2025.09.23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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