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웹소설 11년차 독자. ‘평범한 여대생인 나, 김영희.’ 로판 소설에 빙의했다. 그런데 문제가 좀 있다. [지금부터 당신은 서브 남주인공 ‘페렐 디 아센’입니다.] 서브 남주인공에 빙의해버렸다. “아니, 나 여잔데?” 강제 TS에 소중한 그곳을 매만져 보는데······. “어? 왜 없지?” [서브 남주인공 ‘페렐 디 아센’은 사실 여자입니다.] “지금 나랑 장난하냐?” [로판식 전개에 위배되는 말입니다.] “뭐 이 새끼야?” [지금부터 당신은 ‘로판식 사고방식’으로 행동하셔야 합니다.] “아니, 그니까 그게 뭔데!” [만약 이를 어길 시, 당신은 죽습니다.] 현판, 판타지, 무협 외길 인생 11년. 로판이라곤 읽어본 적도 없는데 로판식 사고방식을 해야 한단다. *** 많이 걱정했는데. “후작님, 저와 결혼해 주시면 안될까요? 공작에게 시집갈 바에야 차라리 당신에게-” “미안합니다, 영애. 저는 당신의 청혼을 받을 수 없어요.” 여자도 꼬시고. “차라리 내게 오지 않겠나.” “아무래도 후작, 자네는 나와 같은 거 같지?” “원한다면 제국을 손에 안겨 줄게.” 남자도 꼬시고. “······.” 진짜 많이 걱정된다, 이 로판.
평범한 여대생인 나는 기말시험 하나를 망치고.
「F급 헌터였던 내가 SSSSS급 무한회귀자가 되어 나 혼자만 일기를 못 쓰면 망나니가 되는 병에 걸려 강해짐」
-이라는 판타지 장르의 웹소설을 읽다 잠들었다.
그런데 말이다.
“아니, 여기 어디야?”
눈 떠보니 낯선 세계였다.
“은발에 벽안? 얼굴이 달라진 걸 보면······.”
나는 누군가에게 빙의해있었다.
“이제 기연 얻어서 영약 먹고 강해진 다음 소드 마스터 되면 되는 건가?”
짧은 은색 머리칼을 매만지며 거울을 보고 있는데 반투명 상태창이 나타났다.
[「어차피 망할 이 소설의 엔딩은 죽음뿐이라서 시한부 영애는 공작저로 가 재혼해 폭군을 길들이고 후회남을 잡아 황후가 되었다」라는 로판 소설에 빙의하신 걸 환영합니다.]
아무래도 저게 내가 빙의한 책 제목인 것 같은데.
‘왜 저따구지?’
눈 떠보면 못다 읽은 소설에 빙의되어 있는 게 국룰 아닌가?
보지 못한 판타지 소설의 결말이 아쉬워 입맛을 다시는데 상태창이 다시 떠올랐다.
[지금부터 당신은 서브 남주인공 ‘페렐 디 아센’입니다.]
잘 못 보았나 싶어 눈을 비비고 또 비벼 봤지만 여전히 그대로였다.
[지금부터 당신은 서브 남주인공 ‘페렐 디 아센’입니다.]
“아니, 나 여잔데?”
솔직히 웹소설 11년 차 독자로서 회귀, 빙의, 환생을 생각해 본 적 있다. 많다.
‘하지만 이건 아니지.’
최소한 빙의를 시킬 거면 성별은 맞춰줘야 할 거 아니야!
강제 TS에 소중한 그곳을 매만져 보는데······.
“어? 왜 없지?”
없었다.
있어야 할 그게, 제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다.
당황에 당황이 겹쳐지니 황당함이 이루 말할 데 없어 말이 나오질 않았다.
허공에서 깜빡이던 상태창에 이내 새로운 문장이 떠올랐다.
[서브 남주인공 ‘페렐 디 아센’은 사실 여자입니다.]
“······.”
[^^;;]
“지금 나랑 장난하냐?”
이게 뭐 하자는 건데? 사람을 납치해서 빙의시켰으면 알아먹게 설명을 하라고, 좀!
악에 받혀 소리쳤다. 언젠가의 안 좋은 일이 겹친 탓이었다.
“후작님, 무슨 일이십니까?”
소리가 컸는지 집사로 보이는 이가 들어왔다.
“안색이 안 좋으십니다. 의원을 부를까요?”
옆에서 그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으나 나는 계속해서 상태창에게 화를 냈다.
“후작님, 그곳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왜 그러시는지 말씀해 주신다면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ㅇㅅㅇ]
이상한 이모티콘을 띄워 놓고는 느긋하게 깜빡이던 상태창 위로 또 다른 상태창이 떴다.
[이 소설의 서브 남주인공은 사실 ‘남장여자’입니다.]
[‘페렐 디 아센’이 ‘남장여자’인 사실은 아무도 모릅니다.]
‘내가 사실 저 남자랑 비밀 연애 중인데, 우리가 비밀 연애중인걸 저 남자도 몰라.’
‘무슨 소리야?’
‘왜냐하면 너무 비밀 연애라 당사자도 모르게 하거든.’
지금 상태창에 떠오른 말 있잖은가. 아무리 생각해도 저게 이 말 아니냐?
“지금 시대가 언젠데 아직도 인터넷 소설에나 나올 법한 소재를 쓰냐고요.”
어이없음에 분노마저 털려버린 내가 허탈히 내뱉기 무섭게 상태창이 경고했다.
[로판식 전개에 위배되는 말입니다.]
“뭐 이 새끼야?”
유행은 돌고 도는구나, 이해해 보려 했는데.
초를 쳐버린 상태창은 다음 상태창을 띄웠다.
[지금부터 당신은 ‘로판식 사고방식’으로 행동하셔야 합니다.]
연달아 나타난 다음 상태창의 내용은 이랬다.
[만약 이를 어길 시, 당신은 죽습니다.]
“뭐?”
[만약 이를 어길 시, 당신은 필히 죽습니다.]
그 이야길 끝으로 상태창은 사라졌다.
“야, 이 망할 상태창 놈아. 적어도 ‘로판식 사고방식’이 뭔진 알려주고 가야 할 거 아니야.”
[로판식 전개에 위배되는 말입니다.]
“아니, 그니까 그게 뭔데!”
[위배 수치 측정 중-]
[위배 정도: ??.??%]
[판정: 간단한 감전]
뒷목을 잡는 내 위로 상태창이 마구잡이로 생성되고 없어지길 반복했다.
[판정을 집행합니다.]
붉게 물든 마지막 상태창과 함께 내게만 작은 벼락이 쳤다.
떴던 눈이 도로 감겼다.
“X발. 이게 맞냐?”
현판, 판타지, 무협 외길 인생 11년.
로판이라곤 읽어본 적도 없는데 로판식 사고방식을 해야 한단다.
* * *
다행히 몇 시간 뒤 나는 눈을 떴다.
이대로 죽나 싶었는데 다행······ 인 건가?
‘아니, 그렇잖아. 어차피 로판식 사고방식인지 뭔지 그거 못하면 결국엔 죽게 될 텐데.’
눈을 떠도 눈을 뜬 기분이 아니었다.
착잡한 내게 푸른 머리에 모노클을 쓴 예민미 돋보이는 미남이 물어왔다.
“후작님, 괜찮으십니까?”
참고로 그는 아까 전 들어왔던 집사로 추정되는 이이다.
바로 옆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벼락이 내게만 떨어진 탓에 그는 매우 무사했다.
“안 괜찮고 아파 뒈질-”
[로판식 전개에 위배되는 말입니다.]
“쟤는 내가 뭔 말만 했다 하면 전부 ‘위배’, 저 X랄이지?”
[로판식 전개에 위배되는 말입니다.]
한 마디만 더 했다간 이번엔 벼락보다 더한 걸 맞을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그럼 뭐라고 말하지?’
어떻게 말해야 가장 올바른 답일지 생각해 보았다.
첫 번째, ‘벼락에 지져져서 통구이 된 것 같아요.’
두 번째,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것 같죠?’
세 번째, ‘벼락에 맞을 확률이 50만 분의 1이라던데. 로또 사야겠어요.’
생각해 봤는데 셋 다 아닌 것 같다.
‘도대체 그놈의 로판식 전개가 뭔데?’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살려면 뭔들 못하겠는가.
‘로판식 사고방식.’
로판식 사고방식, 로판식 사고방식, 로판식 사고방식, 로판식 사고방식, 로판식 사고방식.
그래. 이 정도면 충분히 로판식 사고방식에 익숙해졌을 것이다.
나는 다시금 ‘로판식 사고방식’을 떠올리며 답했다.
“짜릿하더군요.”
내가 말할 때마다 나타나던 상태창이 드디어 나타나지 않았다.
‘아하, 이거구나!’
감을 잡았다. 로판식 사고방식이 뭔지 알 것 같았다.
만족스러움에 고개를 끄덕이는데 모노클을 쓴 그가 짐짓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실내를 뚫고 들어와 내게만 친 벼락을 옆에서 보았을 때보다 더 심각한 표정이었다.
“후작님께서 의원에게 진찰받는 것을 극히 싫어하셔서 의원을 부르지 않았습니다만. 아무래도 불러야만 할 것 같습니다.”
‘어이, 상태창. 주변 인물 정보 같은 건 안 보여주냐?’
집사로 추정되는 이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런데 곱씹어 보니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집사님, 맞으시죠?”
“후작님?”
“다시 말씀해 보실래요?”
“후작님의 건강이 심히 염려됩니다. 한 번 전체적으로 검진을 받아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쓸데없는 얘기일 것 같아서 안 들었는데 이제보니 정말 쓸데없는 이야기다.
“후작님, 의원을 부를까요?”
쟤가 지금 뭐라는 거지?
‘안된다. 이건 무조건 막아야 한다.’
만약 의사가 와 몸을 진찰하게 된다면 필시 내가 남장여자임을 들키고 말 것 아닌가.
재빨리 안된다고 말하려는데 상태창이 나타났다.
[로판식 전개에 위- ]
‘나 아직 말하지도 않았다.’
말하기에 앞서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는 교훈을 이렇게 얻어 간다.
‘로판식 사고방식. 로판식 사고방식. 로판식 사고방식. 로판식 사고방식. 로판식 사고방식.’
주문을 외우고 단호히 말했다.
“괜찮습니다. 부르지 마세요.”
“몇 달째 후작님의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한 번만 의원의 소견을 들어보면 안 될까요?”
로판식 사고방식 때문에 길게 말할 수 없는데 집사가 복병이다.
괜찮다는데도 한사코 의원을 부르자는 그에 나는 얘기했다.
“상여, 아니, 남자는 의원 따위 부르지 않습니다.”
“후작님께서 소드 마스터이신 건 알지만-”
“자고로 예로부터 엄마 손은 약손이라고 했습니다.”
“예? 그건 어느 고서에 적힌 이야기인지?”
“하지만 저는 엄마가 없죠. 그러니 집사님께서-”
[로판식 전개에 위배되는 말입니다.]
“쟤 또 저러네? 내가 뭔 말을 했다고.”
[위배 수치 측정 중-]
“아, 또 벼락 맞게 생겼잖아.”
“후작님, 그곳엔 아무것도 없습니다만.”
“이게 다 집사님 때문이잖습니까, 예?”
“진짜로 의원을 좀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뭐가 잘 못된 걸까?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플러스 마이너스 일이 아니라 그냥 마이너스 마이너스다.
2025.09.24 22:18
2025.09.24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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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4 22:04
2025.09.24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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