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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녀님은 시대를 가출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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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티
5화무료 5화

자유 연재 | 글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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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다 여자가 바뀌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게서 미련을 놓지 못하는 어머니. 어머니에게 도망가자 애원도 해보고 미련하다 화도 내봤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더는 지긋지긋하다.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그래서 집을 무작정 뛰쳐나왔다. 이제 어디에 갈 것이냐고? 나는 과거로 간다!

공모전 참여작#로맨스판타지#아카데미/학원#복수#오해물#짝사랑#타임슬립#로코물#소꿉친구#직진녀#능력남

스승님, 그 문장을 들어보셨나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동화 속 공주들의 이야기 마지막은 늘 그렇게 끝맺었죠.

수많은 이야기를 읽었지만, 예외는 없었어요.

갑자기 왜 이런 말을 하냐고요?

그냥…… 어릴 적 사람들이 어머니를 두고 했던 말이 기억났거든요.

어머니는 동화 속 공주님의 표본과도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말이에요.

그 말처럼 어머니는 동화책 공주님들처럼 행복해 보였어요.

그런데 있잖아요, 스승님.

오래오래라는 건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나 봐요.

어머니는 더 이상 행복해 보이지 않아요. 동화 속 주인공인 공주님이 아니에요.

아니, 사실 오래전부터 그랬던 거 같아요.

제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행복한 모습은 희미해져 빛바랜 지 오래죠.

옛 그림처럼 기억 속 어딘가에 남아 있을 뿐이에요.

이제는 진짜인지, 꿈인지 헷갈릴 만큼요.

스승님.

그 여자가 황궁에 정식으로 발을 들인 날부터 아니, 스승님이 황궁에 출입을 금지당한 그날부터 모든 게 엉망진창이에요.

왜 이렇게 된 걸까요?

황제는 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어머니라는 보석을 가졌어요.

가져서, 황궁이라는 보석함에 가두었죠.

처음에는 무척이나 그 보석을 아꼈던 거 같아요.

불면 날아갈까, 쥐면 터질까 말이에요.

허나, 그는 금세 흥미를 잃었고 버리는 것조차 잊어버린 거 같아요.

스승님.

어머니는 황궁에서 가장 화려한 방에서, 누구보다 값진 드레스와 장신구를 걸치고 아름답게 꾸며진 채 매일 울어요.

조용히, 혼자서, 쓸쓸히.

제게 한 번도 우는 이유를 말해주지 않으셨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유를 알게 됐어요.

그래서 말했죠.

떠나자고. 함께 도망가자고.

허나, 어머니는 싫대요. 황궁에 남겠대요.

당연하게도 나는 왜냐고 물었어요.

돌아온 대답은 허무할 정도로 너무 간단했어요.

사랑.

사랑해서래요.

스승님, 사랑이라는 건 대체 뭔가요?

대체 무엇이기에 저리 망가져도, 상대는 더 이상 자신의 마음에 보답해 주지 않는 데도, 버려지는 것조차 잊혀 썩어가는데도.

왜 떠나지 못하는 건가요? 미련하게 버티는 건가요?

이해할 수 없었어요.

과거도, 지금도.

몸도 마음도 무너져가던 어머니는 결국 쓰러졌어요.

피까지 토하며 앓아누워도 황제는, 아버지는 찾아오지 않아요.

어머니 여전히 사랑을 포기하시지 않아요.

그리고…, 저는 들어버렸어요.

그 여자를 새로운 황후로 올릴 수 있다는 말을.

아니면, 아예 지금 어머니를 폐위시키자는 말까지.

빛을 잃고 금이 간 보석이 이제야 보석함에 있다는 것이 거슬렸던 것일까요?

아아, 나는 정말이지…….

정말이지, 더는 못 버티겠어요.

이 집구석도, 가족도, 전부 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스승님, 제발 나 좀 도와주세요.

 

***


“정말 갈 거냐.”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달빛 아래, 착잡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스승님의 얼굴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마법진까지 다 준비해 놓고는 이제 와서 물어보는 거예요?”


“그래. 그래서 나도 후회 중이다.”


“하지만 결국 절 도와주실 거잖아요?”


“하아.”


허리까지 길게 늘어뜨린 물 빠진 검은색 머리카락이 그의 손에 거칠게 헝클어졌다.

한참을 나에게 못마땅한 눈길을 주던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실패할지도 모르는데?”


가볍게 내뱉어진 은 그 말의 속뜻은 절대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고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보단 나아요.”


허나,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생각은 없다.


“설령 성공해도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어.”


“……그래도 나는 갈 거예요.”


“거기서 죽게?”


누가 들으면 참으로 매정한 말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지.’


그 안에 담긴 뜻은 진심 어린 걱정과 만류라는 것을.

그걸 알면서도 뜻을 굽힐 수 없었다.


“이대로는 못 버텨요. 제가 오죽하면 황궁에 출입도 금지당한 스승님께 편지를 보냈겠냐고요.”


“…….”


“이렇게 평생 살 바에는 세숫대야에 코 박고 죽는 게 더 나아요.”


‘그러고 지금 어머니의 모습을 볼 자신이 없어.’


어머니를 떠올리는 순간, 몸이 반사적으로 부들부들 떨려왔다.

독이 전신으로 퍼져가는 듯한, 오직 분노만 담긴 감정 탓이었다.

비단처럼 고왔던 머리카락은 영양부족으로 그 모습은 푸석해졌다.

말라버린 얼굴에는 광대뼈가 도드라졌을 뿐 아니라 몸 전체는 뼈만 남은 채였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텅 빈 유리알 같은 눈동자에서는 슬픔과 미약하겐 남은 사랑이라는 감정만이 깃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스승님의 제자이자 양딸처럼 아꼈다면서요. 다 어머니를 위한 건데 그러지 말고 도와줘요.”


“말 한번 잘했다. 너는 그런 마리벨의 딸이라는 건 알고 있냐?”


“알아요. 그러니 저를 손녀처럼 그렇게 이뻐해 주신거잖아요.”


‘외모 때문에 팔불출 삼촌으로 보였지만.’


뒷말은 굳이 내뱉지 않고 조용히 삼켰다.

스승님의 연녹색 눈동자에는 복잡한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그 눈 때문에 나는 부러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갈 거예요.”


내 단호한 한마디에 스승님은 긴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하……, 내 팔자야. 어미나 딸이나 하여튼 고집불통이지.”


그러면서도 그는 내게로 다가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도와주기로 마음을 먹은 모양이었다.


“결국 들어주실 거면서.”


일부러 얄밉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내가 너네, 모녀 때문에 늙어 죽겠다.”


“이미 늙을 만큼 늙었잖아요.”


그 말에 스승님은 불 데인 사람처럼 펄쩍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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