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장르: BL '분명 좋아하던 현판, 헌터물에 빙의한 줄 알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까지 남자들이 꼬이는 거지?' 2차 창작 BL에 빙의하게 된 사람의 이야기, BL 전개를 피하면서 원작의 사건들도 해결해야 한다.
#_1화
뚝, 뚝-.
젖은 몸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고개를 들어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사내의 눈빛은 지독하게도 날 옭아매고 있었다.
시선을 피해 뒷걸음질 치자.
쿵-!
그의 손바닥이 내 옆에 있는 벽을 때렸다.
시선을 살짝 돌리자, 핏줄이 선명하게 오른 팔뚝이 보였다.
“날 봐.”
나지막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몸이 굳었다.
느릿하게 고개를 꺾으니, 사내의 얼굴은 코 앞에 있었다.
그의 머리카락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내 뺨에 닿았다.
사내는 손을 올려 내 뺨을 문질러 그 물방울을 닦아주었다.
침을 꼴깍 삼켰다.
내 눈동자는 굴러, 그의 머리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훑어보았다.
그가 입고 있던 샤워가운은 허리끈이 헐렁하게 풀어져 있었고 그의 다부진 몸은 내 눈에 담겼다.
뜨거운 물로 씻은 모양인지 우리 사이에 공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단단한 손은 내 뺨에서 움직여 내 턱을 붙잡으려고 했다.
그의 고개가 살며시 기울어지고 내 머릿속에선 사이렌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나는 있는 힘껏 눈앞에 사내를 밀쳐냈다.
“실례했습니다-!”
그리곤 황급히 그 자리를 벗어나 버렸다.
그 탓에 보지 못했다.
입꼬리 한쪽을 씩 올린 사내를.
“허, 당돌하네~? 더 마음에 들어.”
그의 목소리에 즐거움이 담겨있다는 것도.
‘어쩌다…,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돼버린 거지…?!’
✳✳✳
트럭은 피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나를 덮쳐왔다.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눈앞에는 거대한 몬스터의 시체가 쓰러져 있었다.
상황 파악도 미처 다 마치기 전에 누군가 내 어깨를 강하게 때려왔다.
“역시 김도운이야. S급 헌터는 남다르다니까?”
느껴지는 통증 때문인지 그 사람이 내뱉은 말 때문인지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많은 생각이 떠올랐지만 내 입에서는 바보 같은 물음만 나왔다.
“...어?”
날 때린 사내는 내 물음을 못 들었는지 가볍게 무시했다.
“자, 이제 돌아가자고. 곧 게이트도 닫히기 시작할 거야.”
사내는 손끝으로 어느 곳을 가리켰다.
그곳으로 시선을 옮기자, 혼자 이질적인 푸른빛을 빛내는 게이트가 보였다.
난 그제야 주변 환경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도 저 게이트만큼이나 평범하지 않았다.
수풀이 우거진 정글. 우리 주변을 둘러싼 정글의 식물들마저 도저히 평범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일부의 독을 품고 있는지 불길한 보라색 액체를 뚝뚝 흘리고 있는 정도면 양반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기분이 나쁜 건 눈처럼 생긴 무늬를 가진 녀석들이었다. 날 응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노골적인 생김새였다.
내가 갑자기 주변을 둘러보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사내는 태연하게 말을 걸어왔다.
“역시 여긴 기분이 나쁘지? 저 시선들도 불쾌하고.”
나는 사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할 대답이 없기도 했지만, 아직 머릿속이 복잡한 탓이었다.
지금 내가 얻은 정보는 이렇다.
첫 번째, 여긴 현실의 세계가 아니다.
이건 나와 같은 상황이라면 누구든 알 수 있는 정보였다.
두 번째, 나도 원래의 내가 아니다.
사내가 부른 내 이름. 난 김도운이 아니까…. 아마도 나는 빙의 같은 걸 한 모양이다.
세 번째, 그렇다면 이곳과 김도운의 정체는?
사실 김도운이라는 이름과 S급 헌터, 이 정보만 있다면 딱 떠오르는 것이 있다.
「종말의 끝에서 찾다」라는 현대 판타지 웹소설 속 주인공이 S급 헌터에 김도운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잘생긴 외모와 그 누구보다 강력하고 정의로운 성격을 가졌으면서 돈도 많은, 엄친아 같은 주인공. 요즘 웹소설 주인공답지 않은 설정이었다.
그럼에도 작가의 필력, 매력적인 캐릭터 설정과 캐릭터들의 캐미 덕분에 오랫동안 1위에 있던 작품이었다.
나도 한때 응원하고 김도운의 팬이 되어 열심히 읽었을 정도였다.
‘상태창’
속으로 현실에선 절대 뱉지 못할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내 눈앞엔 게이트와 똑같은 색의 푸른 창이 떠올랐다.
[상태창]
이름: 김도운
등급: S급
HP: 13563/39575
능력: 염동력
- 체력: A+
- 근력: A
- 마력: S+
- 민첩 S
특성: 꺾이지 않는 의지 (비활성화)
‘역시 김도운…. 상태창도 완벽하네.’
다른 사람이라면 원하지 않은 빙의를 싫어하고 거부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니었다.
어차피 원래 삶에 미련도 없으니까.
….
지금 거슬리고 불편한 건 단 하나.
나를 바라보는 사내의 시선이었다.
“이상하다. 도운아, 뭐 찝찝한 거라도 있어? 원래도 말수가 없었지만, 오늘따라 더 말이 없네.”
생각에 잠겨 그가 말을 조금씩 걸어오는 건 알았지만 무시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 별거 아니야.”
그리고 그를 올려다봤다.
김도운 보다 키가 큰 인물은 작중에 꽤 많이 나왔지만 이렇게 고개가 아플 정도로 많이 올려다봐야 하는 인물은 몇 없었다.
함께 던전에 들어올 정도의 사이면서, 조금 전에 무식하게 때린 그 힘도 그렇고….
사내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이런 조건에 짙은 검은색 눈동자와 고동색의 머리카락은 딱 한 명 있었다.
‘박준성’
눈앞에 있는 사내는 그가 분명 했다.
A급 헌터면서 김도운의 왼팔과도 같은 인물이다.
2025.10.05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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