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역영애는 중간보스로 세상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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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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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연재 | 글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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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을 때, 나는 침대 속에서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낯선, 어딘가 고풍스러운 무늬의 천장.

잠결에도 익숙하지 않은 이곳이 내 방이 아님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고풍스러운 무늬가 새겨진 천장은 내가 익숙히 알던 월세방의 페인트 벗겨진 천장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지금 있는 곳은… 뭐지, 저건 웬 드레스들이지?

내가 지금 있는 곳은, 화려한 샹들리에와 큼직한 거울, 그리고 고급스러운 가구로 가득 찬 넓은 방이었다.

멍하니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잠깐, 이게… 나라고?


거울에 비친 나는 내가 알던 내 모습이 아니었다.

길고 윤기 나는 금발에 파란 눈동자, 마치 인형처럼 생긴 귀족 아가씨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내가 알고 있는 현대의 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황급히 기억을 되짚기 시작했다.

그러다 불현듯 하나의 이름이 떠올랐다.


‘레이나 폰 루브레흐트…?’


순간 머릿속에 불안한 예감이 스쳤다.

이건 내가 예전에 보았던 로맨스 판타지 소설 속의 악역 영애의 이름이었다.

‘레이나 폰 루브레흐트’는, 주인공 남녀의 사랑을 방해하다가 결국 파멸을 맞이하는 악역 영애였다.

그런데 지금 이 모습이 바로 그 레이나의 모습이라니?


믿기지 않는 마음에 나는 다시 거울을 보며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하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다.

금발에 파란 눈동자의 나… 아니, 레이나 폰 루브레흐트가 거울 속에 서 있었다.


‘설마… 내가 진짜 그 소설 속 악역 영애가 된 거야?’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졌다. 원작 소설 속에서 이 악역 레이나는 결국 주인공들에게 제거당하고 끝난다.

또한 이 소설은 단순한 로맨스 판타지가 아니라, 마왕의 등장으로 세상이 멸망의 위기에 처하는 배경을 가지고 있다.

원작 속 주인공들은 사랑을 이루며 점점 강해지고, 최종적으로 마왕을 물리치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레이나는 주인공들의 성장을 방해하며, 중간 보스로써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 운명이다.


‘이러다간 나도 똑같이 죽게 될 거야…!’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순 없었다.

왜냐하면 원작의 흐름대로 주인공들이 강해져야 마왕을 물리칠 수 있으니까.

결국 내가 중간 보스 역할을 제대로 해내서 주인공들이 성장할 기회를 줘야만 세상이 무사해진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악역으로 나서서 제대로 싸우면 결국 주인공들에게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이걸 어쩌면 좋단 말인가.


‘으아악, 나 같은 소시민에게 어째서 이런 일이!’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주인공들을 강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으면서도 내 목숨은 살리는 방법… 그렇게 갈팡질팡 고민하던 중, 문득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래, 악역인 척하면서 중간 보스로서의 역할을 해 주되, 미리 자금을 빼돌려서 도망칠 준비를 해두는 거야!’


만약 이 세계가 정말로 멸망한다면 나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주인공들이 성장하게 도와주면서도, 마지막에 나는 조용히 사라지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 생존의 열쇠였다.

이 세계는 돈이 힘이니까, 몰래 자금을 모아두고 어느 타이밍에든 도망칠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래도 제일 중요한 문제가 하나 남아있었는데.

 

‘악역 연기는 어떻게 하는거지?’

악역답게 차갑고 냉정한 태도를 유지해야 하는 부분이 문제였다.

너무 소심한 성격이라, 자칫하다간 본심이 들킬 수도 있다.

‘안 돼, 악역인 척하자고. 나는 악역 영애가 될 거야!’


다짐을 굳건히 하는 순간, 방 문이 열리고 하녀가 들어왔다.

나는 그녀에게 차갑게 대하려 했지만, 막상 차가운 말투를 쓰려 하니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나… 나한테 함부로 말하지 마. 넌 하녀니까, 내 말 잘 들어야 하는 거야!”


하녀는 순간 눈이 커지더니, 오히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가씨… 어디 아프신가요?”


나는 아프지 않다고 대답하려다, 하녀가 내가 차갑게 대하는 걸 의외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오히려 뻘쭘해졌다.

이게 아닌가, 내가 차가운 척한 게 이런 식으로 먹히지 않다니.

나는 하녀에게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려 애썼다.

가슴이 쿵쾅거렸고,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지만, 반드시 "차가운 영애"의 모습을 보여야 했다.

 

"나, 나가. 너 같은 하녀가 내 방에 오래 있는 거, 보기 싫어."

 

하녀는 잠시 눈을 크게 뜨더니,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아가씨, 무슨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하녀는 차분히 고개를 숙이고 나갔다.

나는 그녀가 나가는 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분명 차갑게 대해보려 했는데, 그 결과가 오히려 하녀의 의심스러운 눈빛이라니.

그래도 원래 레이나의 행실 덕분인지 어느정도 먹힌 것 같았다.


"좋아, 그래도 해야 할 건 해야 해."

 

먼저 원작대로 아카데미에 입학하기로 하였다.

아카데미는 원작에서 주인공들이 만나는 중요한 장소였다.

레이나는 그곳에서 악역으로서 주인공들을 괴롭히고 성장을 방해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물론 원작처럼 대놓고 방해하는 대신, 은근히 그들을 강하게 만들어 줄 방법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렇게 은밀하게 계획을 꾸미며, 나는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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