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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락눈 내리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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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낸수
10화무료 10화

자유 연재 | 글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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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으로 빙의했는데 눈앞에 헤어진 전 연인 얼굴이 있을 확률은? 그것도 나의 전담 하인으로…?

공모전 참여작#BL#동양풍#퓨전사극#로맨스#빙의#첫사랑#애잔물#친구>연인#미남공#존댓말공#미인수#짝사랑수#재벌수#상처수

싸락눈 내리는 날 001화

 

 

 

“우리 그만 만나는 게 좋겠지.”

 

정말 내뱉기 싫었던 말을 결국 해버렸다.

 

“아무래도.”

그리고 너에게서 끝까지 듣고 싶지 않았던 대답이 돌아오며 1년간 함께한 연애가 합의하에, 그리고 차분하게 대화로 끝이 났다.

 

아무래도 우리 둘 다 남자라는 이유는 남 보는 시선에 고울 리 없었고,

서로만 좋다면 어떻게든 이어 나가지 않을까 싶었지만, 날이 지날수록 우린 지칠 만큼 지쳐갔다.

 

분명 여러 가지 이유가 더 있었겠지만… 어쨌든, 이날부터 우린 남이 되었다.

 

그렇게 깔끔하고 덤덤하게 잘 끝냈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보고 싶은데 어떡해!”

 

헤어진 날 밤부터 3일 내내 침대 곁에서 질질 짰다는 건 걘 평생 모를 거다.

 

“아니,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한 건 맞지만, 어떻게, 바로, ‘아무래도’가 나와?”

 

다시 생각해도 개찌질 하지만, 눈물 콧물 범벅인 채로 바로 대답한 걔가 원망스러워 한탄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눈이 개구리처럼 퉁퉁 부었을 즘, 어느 정도 현실을 자각하여, 교수님이 주신 과제도 열심히 노트북 두드리면서 작성했다.

 

키보드에 눈물이 하도 떨어져서 휴지로 닦으면서 제출까지 착실히 했었다.

그동안 자체 휴강 때리고 집에 박혀있었는데, 더 이상 안 나가면 계절학기 확정이라 오랜만에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문밖에는 익숙한 골목 대신, 자개장과 나무 침대, 둥근 창살이 있는 완전 다른 곳이 생생하게 펼쳐졌다.

 

그동안 봐온 이런 전개는 서양 판타지 소설에 빙의한 것이 대다수일 텐데, 이건 아무리 봐도…

 

“…조선?”

 

자세히 보니, 조선이라 하기에 여기저기 걸린 붉은 홍등, 지나가는 하인들의 옷 디자인이 뭔가…

동양 국가 여기저기에서 하나씩 따온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내 이름, 그러니까 어딘지 모르는 이곳에 빙의한 새로운 내 이름은,

 

“비항 도련님, 기침하셨나요?”

 

양쪽으로 머리를 꼬아 올린, 10대 정도의 귀여운 여자아이가 생글생글 웃으며 나를 부축했다.


 

비항霏恒. 참으로 독특한 조합의 이름이다.

 

 

근처에 거울은 없지만 조금 작아진 손과 한층 더 밝아진 피부 톤으로 어떤 인물에 정말 빙의했단 걸 알 수 있었다.

 

“그래… 소화야.”

“좋은 아침입니다, 도련님!”

 

지나가는 다른 하인들과 마찬가지로 연한 갈색의 옷을 입은 여자아이는 비항의 시비(侍婢)인 매소화(梅曙花)다.

 

‘비항’과 ‘매소화’, 그리고 조잡스러운 동양 풍경으로 이곳이 내가 아는 소설 속이 맞다고 확정 지었다.

 

놀라운 사실은 그냥 소설도 아니고, 교수님이 분석 보고서 써오라고 과제로 주신 비엘 소설이란 것이다.

 

눈물 뚝뚝 흘리면서 작성했던 그 과제 맞다. 소설 ‘싸락눈 내리는 날’.

 

세계관은 정말 짬뽕 그 자체지만, 인물 간의 심리 묘사와 이루어지는 과정이 정말 예술이라며 교수님이 강력 추천 하셨던 작품이다.

 

“도련님, 세안하시고 제가 치장을 돕겠습니다.”

“치장이면… 오늘 일과가 어떻게 되지?”

 

솔직히 소설은 1부만 봤지만, 최대한 이상하지 않게, 부드럽게 말투를 바꿔보았다.

 

“오늘 시정당(侍誠堂)에서 시정 당주가 오시잖아요. 저번에 한 주 미뤄져서 오늘 방문하신다고 합니다.”

 

시정당이면 분명…

 

“귀족가에 시종이랑 하인 파는 거기?”

“그렇죠? 오늘, 도련님을 모실 새 하인을 직접 고르는 날이기에, 더욱 신경 쓰셔야 합니다. 첫인상은 중요하니까요!”

 

이 소설 속 주인공 ‘비항’의 배경은 왕 다음으로 높은 5 가문 중 하나로,

여기서 소화가 말한 시정당(侍誠堂)은 고위 귀족가를 위해 훌륭하고 완벽한 시종과 하인을 길러 팔거나 빌려주는 곳을 말한다.

 

일단 도련님이란 신분과 이런 배경이 평생 고생길 하나 없을 것 같아서 그나마 다행이긴 한데…

 

다 집어치우고, 지금 내 상태는 어떻게든 현실로 돌아가서 걜 다시 봐야 할 거 같다.

 

다시 이불에 파묻혀 잠들면 서울 자취방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자려고 시도했지만, 유능한 시비(侍婢)인 소화가 이불을 빼앗고 직접 세숫물을 코앞까지 가지고 와서 실패했다.

 

‘어차피 내 하인도 아니고 소설 주인공의 하인인데 내가 만나서 뭐 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랬나…

 

“반가워요. 저는 비가(家)의 셋째 아들, ‘비항’이라 합니다. 동화국의 눈이 그대에게 내리길.”

 

소설 속 귀하고 높은 도련님처럼, 자태는 우아하고 단아하게, 손짓은 부드럽게.

 

미소를 띠고 있는 입꼬리까지 혼신의 연기를 부여하며 하인을 팔러 온 시정 당주를 직접 맞았다.

 

소화가 직접 분칠과 하얀 꽃이 달린 머리 장식도 달아주어 연기가 조금 부족했어도 그 모습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반짝 윤기나는 청회색 머리칼에 예쁜 호숫가처럼 청량한 눈 색, 희고 부드러운 피부까지. 저 멀리 흐린 눈으로 봐도 아름다운 도련님의 근본 격이었다.

 

“허허, 비가의 셋째 도련님을 뵙습니다. 시정당의 당주, 문이덕이라고 합니다. 동화국의 눈이 아름답게 쌓이시길.”

 

하얀 수염이 인상적인 시정당주는 노랗고 풍성한 자수가 화려하게 놓인 옷을 입고 있었다.

 

“저희 아이들을 보여드릴 수 있다니, 영광입니다.”

 

시정 당주가 가볍게 손짓하자 방으로 6명 정도의 남녀가 들어왔다. 모두 입과 코를 얇고 작은 천으로 가리고 있었다.

 

“저희 시정당에서도 가장 훌륭한 인재들만 선별해 왔습니다. 편히 질문하시고 골라보십시오.”

 

무조건 골라야 한다면, 대충 말벗 삼을 수 있을 만한 사람으로 해야지….

 

그렇게 좌측의 키가 작은 여자부터 차례대로 천을 벗으며 인사를 올리기 시작했다.

 

“인사 드립니다, 저는 시정당에서 2년 정도 있었고-”

“저는 힘쓰는 일이나, 무력에 강하여 분명 도움이 될-”

“전 자수와 바느질 등 손재주가 훌륭하여-”

 

귀족가 중 이곳 비가(家)에서 일했다는 것 하나로도 저들에겐 큰 스펙이니, 모두 열심히 자기를 어필하였다. 그리고 순식간에 5번째 순서가 되었다.

 

5번째는 나보다 조금 키가 큰 사내로, 다홍색의 겉옷을 입고, 가린 천 위로 보이는 깨끗한 피부와 불그스름한 눈동자가 눈에 띄었다.

 

곧이어 사내가 짧게 숨을 내쉰 뒤, 입을 떼었다.

 

“인사 드립니다.”

 

…?

 

낯익은 목소리.

 

“저는 시정당에서 3년 정도 교육받은 후, 비항 도련님을 모시기 위해 온-”

 

…거짓말이지?

 

“류의(留意)라고 합니다.”

 

사내가 천을 벗자 드러난 얼굴은, 그토록 다시 만나고 싶던,

 

“동화국의 눈이 아름답게 쌓이시길.”

 

그립고, 걱정되었으며 그대로 품에 안기고 싶은…

 

“너 박도완 맞지. 그렇지, 그런 거지?”

 

나도 모르게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아, 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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