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해개벽(雷海開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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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무료 5화

자유 연재 | 글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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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 참여작#무협

#1화

 

검(劍)의 익힘이 먼저냐, 심지(心志)의 다스림이 먼저냐.

이에 대한 내 생각은 변함없다.

 

주화입마(主禍入魔)는 시공(時空)을 가리지 않는다.

 

차근차근 살펴보자.

옛 성현이 이르기를, 학해무애(學海無涯)라 하였다.

“배움의 바다는 끝이 없으니, 배우는 것을 계속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사람을 격려하고 고무시키는 좋은 구절이다만, 실로 위험하기 짝이 없다.

바다? 자칫하다가 풍덩 빠지면, 그때 가서도 덤덤히 좌선(坐禪)을 틀 수 있을까?

아무리 삶이 수행의 연속이라 한들, 제 목숨과 갈음할 용자는 없다.

‘없다’의 기준을 현재로 잡는다면 전부 망자(亡者)와 동거동락 중일 것이고.

기준이 ‘과거’라면 바람 앞의 등불일 것이다. 당연히 지금으로선 바람이 분 지 오래다.

 

예컨대, 강호인(江湖人)답게 굴지 말란 소리다.

귀때기를 닫은 채, 무공(武功)에 미친 자신에게 미친 자들.

허나 무(武)와 강호(江湖)는 떼놓으려야 떼놓을 수가 없는데 어찌하여 그런.

쉽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냥 사람과 사람답게 구는 사람은 엄연한 별개(別個)이다.

강호인도 마찬가지. 그저 몸 담은 것과 소속감을 넘어선 무언가의 짓거리는 다르다.

어찌하여 사람다움은 버리고 칼날만 붙드는지.

어찌하여 면벽수행(面壁修行)만 일삼아 종국에 역검(逆劍)이 되리란 사실조차 모르는지.

아아, 그 끝은 파국(破局)이니라.

 

그러니 답은 뻔하다.

검의 익힘을 앞세운 자.

바다에 뛰어들어 허우적대다 끝내 물을 먹는다.

심지의 다스림을 우선시한 자.

물결 위에 띄워진 신형(身形) 그대로 길을 낸다.

 

주화입마는 시공을 가리지 않는다.

그것은 검술의 빠름에도, 무공의 깊음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다만, 마음의 결(結)을 잡지 못한 자를 찾아, 언제든 그 틈으로 스며든다.

그러므로 나는 말한다.

 

저 작자는 실패했다고.

 

“허허, 보이지 않느냐? 이 강(江)이 다 내 길(吉)이로다. 강물이 내 손아귀에 꺾이고, 파도가 허리를 굽혀 나를 받들고 있으니, 강물아, 네가 웃는구나. 과연 흑암(黑暗) 같은 물속에서 네가 날 불러내었구나. 이 한 몸이 강이 되고, 강이 이 한 몸이 됨은······.”

 

대연강(大淵江) 하류, 물안개를 가르며 떠가는 도선(渡船) 위.

 

“그간 아무도 내게 이것을 묻지 않았다. 곧 비상(飛翔)할 잠룡(潛龍)이 어찌 사람의 탈(脫)을 쓰고 있는가를. 강수(江水)를 가르며 배회하는 자들이 어찌 나를 미비한 인간이라 여기고 있는가를. 허어 아서라, 이 투박한 사람의 형(形)을 빌리고 있도다. 이 얼마나 어리석고 가련한 노릇인가.”

“······.”

“육신(肉身) 가벼이 날개 되어 날아가고, 후억! 청풍(淸風) 내 머리 뽑아 홍일(紅日)에 꽂히니, 후욱! 천하(天下) 만물(萬物)이 어질러지는구나, 후어!”

“······.”

“이 정적의 의미는 나만이 알 것이지. 하지만 소리 내어 말해 무엇하리. 전부 나를 두고 하는 말일 터인데. 호오, 좋구나.”

“···미친 새끼.”

 

보다 못한 방주(幇主)가 욕지거리를 흘렸다.

 

“때를 잃고 입을 놀린 너는 누구냐? ···아아, 구태여 말할 필요 없다. 무두방(無頭幇)의 방주, 세류천석(細流穿石) 마곤태. 음?”

“친히 알아봐 줘서 감격에 미칠 지경이군.”

“흐음, 나는 그런 이를 좋아한다. 매사에 솔직하고 거짓됨 하나 없는 이.”

“어쩌라는 거지?”

“결정(決定)은 하늘이 하지만 대면(對面)은 내가 하기에, 나는 지금이 적기(適期)라 생각한다. 눈을 뜨고 입을 열어라. 나와 마주 보거라. 무엇이 보이는지? 혹 보이지 않다면 어서 빨리 내게—.”

“제발 좀 닥쳐라 이 정신 나간 새끼야.”

 

방주가 박도(鉞刀)를 와락 움켜쥐려다, 이내 신음을 흘리며 도로 주저앉았다.

피칠갑 몸이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부하들은 왜 죽였냐? 전부 다 죽었다. 묻어주지도 못했다. 지금쯤 원망하고 있겠지. 네가 아니라 나를. ···하 그래 한 놈이 남았구나. 지금 내 옆에서 숨만 간신히 고르고 있는 이 놈. 푸흐, 근데 네 덕에 산 걸까? 지랄, 물불 안 가리고 죽여대던 금수(禽獸) 새끼가 자비는 무슨. 네 득 본 것은 살날 머지않은 내 몸뚱이밖에 없다. 백날 술만 마시다가 이제야 편안해지겠네. 흐으, 이 새끼가 네 새끼한테 고맙댄다. 대신 감사를 표해주마.”

 

방주는 울분이 끝나자마자 울컥— 핏물을 토했다.

 

“······쿨럭, 네 장삼(長衫) 한 번 더럽히지 못한 게, 내 천추의 한이다.”

 

말할 수록 방주의 얼굴에 음영(陰影)이 차차 드리웠다.

일평생 인상만 쓰더니만, 결국 곰팡내 나는 얼굴이 자리잡았다.

백년가약(百年佳約)은 무슨. 처자들이 얼굴 보고 도망가겠구만.

나는 광인(狂人)과 병인(病人)을 옆에 두고서 비죽 웃었다.

 

“왜 웃냐. 너도 미쳤냐.”

“그냥요.”

“쿨럭, 말이 짧구나?”

“······.”

“···새끼.”

 

영양가 없는 대화.

대연강의 물안개는 더욱 짙어져 어느새 시야를 잠식했다.

배는 꾸역꾸역 흘러가고 있었다.

 

“···쿨럭, 그래서 왜 죽였냐고, 이 벽창호 새끼야.”

“아둔한 것, 밖으로는 흑도(黑道)라 칭해진 오명(汚名)을 벗겨주었노라. 천하(天下)가 증좌(證左)하거늘, 옳으냐 그르냐 묻는 것 또한 허망한 노릇일 터이지.”

“입 닥쳐. 백도(白道)에 있는 샌님 버러지들이 전부 공명정대(公明正大)하더냐? 최소한 우린 손때는 묻었을지언정 더럽힐 짓은 안 했다. 할 낌새만 보여도 가릴 것 없이 쫓아내거나 죽였다. ‘무림공적(武林公敵)’이니 하는 말? 우리 무두방이 거둔 민초(民草)들만 족히 육백을 헤아린다. 다들 생업 붙잡고 밥벌이에 나서지. 누구 하나 핍박하지도, 쥐어짜지도 않았다. 흑도라서 탁류(濁流)이다? 웃기는 노릇이지. 그들 손에 들린 밥그릇이나 세어보거라. 쿨럭, 그게 우리 무두방이다.”

“허어이, 네 자랑이라면 자랑이겠지. 흑도가 흑도인 줄도 모르는 삼류(三流). 그 무지(無知) 위에 당당히 선 검은 옷의 백치(白痴). 강을 건넜으되 건너온 물길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모른다는 말이냐. 네 무두방(無頭幇)은 이름처럼 머리 잃은 괴물일—.”

“헌데!!!”

 

우레의 고함과 함께 방주가 벼락 같이 우장(右掌)을 내질렀다.

장심(掌心) 정중앙에 화공(火功)이 휘감기자, 일순(一瞬), 붉게 달궈진 악면귀(惡面鬼)로 돌변했다.

허나, 살갗에 미치는 일은 없었다.

가볍게 휘두른 접선(摺扇) 한 획에 장력(掌力)이 붙들리자, 배가 한 번 삐걱—이는 것으로 그쳤다.

마치 강물에 던져진 돌멩이가 파문(波紋)을 그리고 사라지듯이 점잖게 흩어졌다.

 

“벼제군허(彗帝君虛). 나는 그 이름으로 살아간다.”

 

기다란 백의장삼(白衣長衫)이 바람을 가르며 펄럭였다.

그 펄럭임 너머, 손에 쥔 접선이 스르르 자취를 감추었다.

실로 광오(狂傲)한 작자. 방약무인(傍若無人) 그 자체.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미치광이.

방주는 천천히 눈을 내리깔았다.

입술 사이로 스며든 회한(悔恨)의 미소는, 단지 미소가 아니었다.

부족함과 체념이 뒤섞여 있었으니.

 

“벼제군허, 한 가지 부탁하고 싶다.”

 

나는 고개를 들어 힘겹게 시선을 밀어 넣었다.

 

“참으로 가련하여 가련할 수밖에 없는 가련한 놈이로다. 눈치만 살피며 순간을 저울질하다니. 설마 혀가 길지는 아니하겠지.”

“내 직도(直刀)를 가져와다오. 가야가(迦耶歌)라 부르는 칼이다.”

“우스운 꼴이로다. 어찌 본말전도(本末顚倒)가 아니고 무엇이랴. 어리석은 칼이여, 주인을 떠났느냐. 그 손이 믿음직하지 못하여 달아난 것이더냐. 미친 세상, 미친 장부(丈夫)라 하지 않을 수 없지!”

“그러하다면?”

“좋다···. 좋구나···. 몹시 좋다, 이 말이야!”

 

백지(白紙)의 사내가 좌완(左腕)을 순백으로 물들였다.

천 리를 웃도는 거리이거니와, 손짓 하나로 이곳에 끌어올 기세였다.

순간, 허공(虛空)이 깊은 숨을 삼키듯 뒤틀렸다.

바람은 하염없이 갈라지고, 구름은 금이 간 수정(水亭)처럼 부서졌다.

그렇게— 쿵!

높고 아득하던 허공이, 벼제군허의 의지 앞에서 고꾸라졌다.

길게 늘어진 낙선(落選), 이내 흡성(吸星)의 기세에 휘말려 한 점으로 끌려갔다.

 

“우직한 보도(寶刀)이구나. 허세가 없으니 군더더기 또한 없고, 뿌리가 단단하니 가지 또한 단정하리라. 좋은 게 좋은 거겠지.”

“고맙군.”

“다만, 어찌하여 이 칼을 가져오라 한 것이냐. 혹 이 몸의 검무(劍舞)가 그리웠던 게냐? 하기야 내 춤을 본 자들은 으레 그렇다더군. ···헌데, 자네가 본 적이 있긴 한가?”

“이유가 그리 궁금하면···.”

“궁금하면?”

“···내게 건네라, 그럼 알게 되겠지.”

 

벼제군허가 무미건조(無味乾燥)하게 웃었다.

 

“입으로 말하지 않는 자일수록, 보여줄 게 많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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