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할라의 위대한 무신. 오랜 세월 끝에 귀환하게 되리라.
영원한 전쟁터이자 지옥.
죽음 뒤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곳.
혹자에겐 전사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곳.
“우오오 네놈을 반으로 갈라주마!”
“크하하하! 최고구만!”
“하하하! 날 상대할 자 없는가!”
이곳은 발할라였다.
죽음과 싸움만이 남은 절망적인 장소.
·
.
근데 그렇다고 너무 절망할 필요 없었다.
이곳은 배고프지도 죽지도 않는 무한환생지(無限還生地)였다.
죽어도 다시 되살아날 수 있다는 건 참 희망적인 얘기다.
하하.
.
.
물론, 살아갈 희망도 용기 없는 것이 당연하다.
검을 쥐어주고 사람을 죽이라고 하면 누가 선뜻 따르겠나.
정상적인 반응이다.
하여 목표가 하나 주어졌다.
발할라에서 최고의 전사가 되는 것이다.
[무신이 되시오]
혹시 모르지 목표를 달성하게 되면 따뜻하고 포근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 * *
모르겠다.
왜 싸우는 건지, 왜 칼이라는 도구로 사람을 죽이는 행위에 희열을 느끼는 것인지, 왜 목에 창자를 칭칭 감아대면서 우월감을 느끼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도 싸워야 했다.
거적때기 같은 침대에서 눈을 떴다.
눈을 뜨자 보인 건 ‘무신이 되시오’라고 적힌 홀로그램 창이었다.
[무신이 되시오]
“······.”
그 창을 무시하니 구멍 뚫린 천장이 보였다.
푸드덕!
그 구멍 사이로 새가 날아드는 것도 보였다.
나는 곧장 머리맡에 있는 검을 집어 들고 막사 밖으로 나갔다.
촤락!
10개 남짓한 막사로 이루어진 캠프 뒤편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 뒤편에는 온통 무기로 이루어진 거대한 천당 하나가 하늘에 부유하며 위용 있게 자리 잡고 있었다.
발할라라고 불리는 전사들의 천국이었다.
“…….”
시선을 아래로 거뒀다.
그 아래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시체가 산처럼 쌓여있었다.
언뜻 보면 고산으로 착각할 수도 있으나 그건 발할라에 닿으려는 방랑자들의 원념이었다.
방랑자들은 전사들의 천국에 닿으려고 하고 전사들은 그들을 죽였다.
이곳은 무한환생지였기에 그들은 뜻을 굽히는 법이 없었고.
시체 산은 점점 쌓이고 퇴적되길 반복하며 발할라에 닿을 듯 높아졌다.
“쯧….”
결국, 이러한 사실이 방랑자들에게 희망이자 꺾이지 않는 신앙으로 작용했다.
죽어도 그것은 시체 산의 일부가 되어 발할라에 닿을 수 있는 기반이 될 테니까.
“쯧···.”
나는 늘 이곳에서 시체 산을 밀어버리든 발할라를 부숴버리던 둘 중 하나를 이루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다.
왜 그런 무의미한 행위를 하는지 모르겠으니까.
물론, 소망에서 그쳤다.
그 역시 무의미한 행위였다.
* * *
“크흐흐! 하여튼 목청은 우리보다 더 커 개새끼들!”
오늘도 개때처럼 달려드는 방랑자들과 한바탕 싸움을 벌였다.
전투는 푸르스름한 이른 아침에 시작해서 붉게 노을이 질 때까지 끝났다.
방랑자의 수는 4만이지만, 발할라의 문을 지키는 전사는 고작 18명이었다.
어찌 적은 수로 대군을 막을 수 있었느냐 묻는다면.
오러를 다룰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방랑자들은 오러를 다룰 수 없고, 전사들은 오러를 다뤘다.
오러는 인간의 격을 초월하는 힘.
이를 사용할 수 없는 방랑자들은 개미처럼 짓밟힐 뿐이다.
그 뿐인가.
과거 최고의 전사라 불렸던 무신이 문지기로 있는데 그들이 어찌 발할라에 닿을까.
그건 실로 불가능한 일이다.
“내 난생 장기가 화살처럼 튀어나온 놈은 처음이었다! 비겁하게 장기로 공격할 줄이야! 크흐흐흐!”
“푸하하! 그거 웃기는군!”
아무튼.
어두운 밤이 찾아왔고 전사이자 문지기들은 모닥불에 모여 앉아 왁자지껄한 잔치를 벌였다.
나는 그들과 섞이지 못해 구석에서 조용히 밀주를 들이켰다.
곧 내의 옆으로 크라키라는 이름의 전사가 다가왔다.
“성훈 궁금한 것이었다네.”
“뭐지?”
“도대체 왜 무신의 자리를 포기했지?”
과거 북부를 다스리던 왕인 크라키의 질문.
주위에 흐르던 목소리가 실 끊어지듯 뚝- 끊어졌다.
모두 안 듣는 척 떠들지만 귀가 밝은 놈들인지라 다 듣는다.
나는 담담하게 술을 한 모금 마시곤 말했다.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었다.”
말이 끝나자 주위에 정적이 감돌았다.
그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전사는 없었다.
단지 무신의 자리는 전사에게 있어 명예롭고 최고로 값진 자리였다.
“명예롭지 못한 인간이 뭘 알겠나.”
“쯧 저런 것도 무신이라고···.”
“네녀석은 발할라의 수치다! 이를 평생 잊지말고 살아야 할 거다! 그렇지 않으면 전쟁의 신인 오딘에게 천벌을 받을 테니!”
저들에게 나는 무신에 자리에 대한 가치를 모르는 쓰레기일 뿐이다.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내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해시킨다면.
이에 대해 호소하면.
조금은 달라질까.
입을 살짝 열었지만 나는 다시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무신이 되었지만 돌아갈 수 없었다.
그 뿐인데 무엇을 호소하리, 무엇을 이해시키리.
“변명이라도 해보면 좋을 것을··· 쯧···.”
호소한다고 한들 달라지는 건 없다.
하여 나는 말 없이 하늘을 올려다 봤다.
아름다운 밤하늘.
은하수가 물결치며 빛나고 있는 아름다운 밤하늘이다.
저 은하수 사이에 내가 살던 세상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며 한참 그것을 바라봤다.
입가에 밀주를 향했지만, 씁쓸한 끝 맛이 뚝뚝 떨어졌다.
막사로 돌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훈, 전해 줄 것이 있어.”
그때 크라키라는 자가 날 붙잡았다.
그는 품 안에서 편지를 하나 꺼내 들고 있었다.
“이게 뭐지?”
“그대엑 온 편지라네.”
얼떨떨하게 편지를 받았다.
내게 편지를 보낼만한 사람이 있었나?
발할라의 전사들은 모두 자신을 벌래 취급했다.
크라키만이 날 사람으로 대한다.
“한번 읽어 보게.”
나는 의미심장한 크라키의 표정을 뒤로하고 편지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대련인가?”
“그래, 자네에게 대련을 신청했다네. 내일 동이 트는 대로 발할라에 가게나.”
귀찮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수차례 강타했다.
구태여 발할라까지 올라가야 하고 또 보기 싫은 수많은 전사들의 얼굴을 봐야 했다.
나는 빌어먹을 필자를 찾기 위해 전투적인 시선으로 편지를 훑었다.
노르드 문자는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여전히 읽기 난해한 구석이 있다.
결국, 마지막 줄에서 이름을 찾았다.
“시구르드인가.”
크라키는 크게 놀란 반응을 보였다.
“자네에게 편지를 전한 사내가 시구르드였나!?”
“잘 아나 보군.”
“그, 그럼! 모를 수 없지! 용살자라는 이명으로 더 유명한 사내라네!”
용살자 시구르드.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발할라의 전사는 아닐 거다.
발할라에 자신이 모르는 이름의 전사는 없다.
“용을 죽여본 자. 하여 용살자인가?”
“그렇다네! 명예로운 매우 전사지!”
나는 무거운 한숨을 뱉어내곤 편지를 구겼다.
“하아.”
2025.09.27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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