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세계 최고 요리사 박형준, 갑작스러운 이세계 전이로 눈을 떴을 때는 마왕 앞이었다.
어지럽다. 그리고 덥다.
또 마지막으로, 입에 작은 알갱이들이 계속 들어가서 죽을 지경이었다.
박형준은 앉아서 방금까지 있었던 일을 하나씩 떠올렸다.
일은 오랫동안 기다렸던 순간을 마주하기 직전에 일어났다.
세계 최고 요리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은 지 벌써 몇십 년이 지났을 무렵.
실제 그 무대 위에 서 있었다.
세계 최고의 요리사들이 모여 경쟁하는 곳.
세계 요리 대회, 박형준은 결승전에 나갔다.
***
“박형준씨 지금 무슨 요리를 만드신 건가요?”
“한국에서 흔히 먹을 수 있는 음식입니다. 김치, 미역국, 제육, 돈가스입니다.”
“아무래도 외국인인 심사위원들 입맛에는 안 맞을 거 같은데, 심정이 어떠신가요?”
“제게는 꿈이 있습니다.”
박형준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거센 심장 박동을 느꼈다.
자신을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해준 수많은 사람이 차례차례 떠올랐다.
망해가던 한식집에서 눈치 없이 밥을 얻어먹던 꼬맹이 시절, 화 한 번 없이 날 맞이해주시던 가게 할머니.
박형준은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입을 땠다.
“이 자리에 올라온 것만으로…, 제게는 너무나 뜻깊은 자리입니다.”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프랑스 출신 진행자에게 말했다.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게 해주신 한식집 할머니. 누구나 공평하게 맛있는 밥을 먹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할머니 말을 지키고 싶습니다.”
“그렇군요. 자, 반면에 상대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세계적인 요리사인 토니입니다. 토니?”
머리 틈틈이 백발이 엿보이는 남자가 뒷짐과 고개를 들고 서 있었다.
“으음. 그래요. 요리 설명 부탁드립니다.”
“나는 소수를 위한 고급 요리를 만들지. 소개를 하자면….”
토니는 자기가 만든 음식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박형준은 멀리서 그 장면을 보고 그의 요리를 분석하고 있었다.
토니 요리는 알바 트러플이라는 하얀 트러플을 사용해서 보는 맛을 올렸다.
그리고 작고 진주처럼 반짝이는 상태가 좋은 케비어.
홋카이도산 성게, 금박이 덮힌 푸아그라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에 비해 박형준이 만든 요리는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중적인 요리였다.
토니가 소개를 마치자 진행자가 말했다.
“네, 결승 요리에 주제는 자신을 표현한 음식이었습니다. 그에 맞춰 잘 만드신 것 같습니다. 이제 심사로 넘어가시죠.”
그는 이 장면을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3명의 심사위원이 평가석에 각자 다른 자세로 앉아 있었다.
턱을 괴며 앉아 있는 백발 노인은 이탈리아 출신 유명 요리사였던 엔초.
맑은 눈으로 박형준이 만든 요리를 지켜보는 미국인은 오스카.
허공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는 젊은 청년은 일본인 쿠로다였다.
모든 요리를 지켜본 엔초가 말했다.
“역시 한국에서 온 초짜는 이탈리아 셰프를 이길 수 없는 건가.”
그 말에 오스카는 바로 반박했다.
“그런가요? 저는 한국 요리, 박형준이 만든 음식에 더 정이 가는 데요?”
쉬지 않고 오스카가 말했다.
“자신을 표현하는 요리에서 고급진 요리가 나오는 건 너무 뻔하죠. 주제에 맞는 건 오히려…. 흠, 주제에 맞는 평가를 부탁합니다.”
이어서 쿠로다가 말했다.
“주제에 맞는 평가니까요. 엔초님이 잘 판단하시리라 믿습니다.”
“쳇! 주제? 중요한 건 당연히 맛이야. 주제를 잘 따라가도 맛이 없으면 끝이라고. 자네들이 아직 경험이 많이 없어서 그러는 거 같은데?”
음식을 먹기 전에 싸우는 심사위원을 보며 진행자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시끄럽게 싸우는 엔초와 오스카의 입을 막아버릴 음식이 그들 앞에 놓였다.
플레이팅이 세련되게 올라간 엔초 요리와 한식 뷔페에서 막 퍼담은 것 같은 박형준 요리.
오스카를 제외한 두 개에 포크가 엔초쪽으로 향했다.
엔초가 제일 먼저 한 입 크게 먹었다.
“…!”
엔초는 눈이 동그라졌다.
그리고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며 오뚝이처럼 흔들었다.
마음속으로 승리를 예측하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아무래도.”
쿠로다가 말했다.
엔초는 쿠로다를 쳐다봤다.
“아무래도?”
“이런 재료를 썼으니, 맛이 없을 수가 없지요. 안 그렇습니까?”
“재료를 선택하는 것도 실력이다. 이런 자리일수록 더욱 신중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것.”
“그래서 너무 뻔하다는 거죠.”
쿠로다는 포크를 내려놓으며 젓가락을 집었다.
일본과 한국, 서로 젓가락을 사용했기에 쿠로다에게 젓가락질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포크보다 편하게 느껴졌다.
한 입을 떠서 입에 집어넣기 전에 먼저 박형준 요리를 먹은 오스카를 쳐다봤다.
‘응? 뭐하는…. 우, 울고 있어?’
오스카는 아이처럼 눈물을 짜내고 있었다.
쿠로다는 그제서야 박형준 요리를 자세히 봤다.
무의식중으로 무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으로 입이 벌어졌다.
제육의 빨간색 소스는 누가 봐도 매콤해 보였고.
빨리 먹고 싶어서 미치게 만드는 힘도 있었다.
한 점을 떠서 입안에 넣었다.
“아아.”
매운맛 밖에 없어 보이던 외관과 달리 단맛이 느껴지며 불맛과 짜릿한 감칠맛이 존재감을 풍긴다.
부들거리는 육질과 속까지 잘 베어진 양념으로 부족한 싱거운 부분 없이 골고루 맛이 똑같았다.
“나, 나도 한 번 먹어는 봐야겠지?”
쿠로다의 먹방을 보던 엔초가 침을 삼키며 포크를 가져다 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쿠로다는 자신이 전에 먹었던 제육이 가진 맛을 떠올렸다.
이 정도까지 맛을 뽐내는 것은, 불가능이란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그런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자.
그가 눈앞에 있었다.
쿠로다는 다른 음식도 집어 먹었고 전부 똑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먹어본 적 없는 맛.
음식 간이 균일하며 어떤 한 곳을 먹어도 똑같은 맛이 났다.
‘재능이 있다고 해도 이 정도로는 못한다. 그야말로 엄청난 노력이군.’
엄청난 노력으로 이루어낸 결과, 오스카와 쿠로다에 마음을 얻었다.
어차피 결과는 2대1.
쿠로다는 박형준이 이긴다는 결론을 내리며 옆을 돌아봤다.
그리고 산채로 굳어있는 백발 노인 엔초를 발견하였다.
“에? 엔초?”
엔초는 말했다.
“사람은 한 분야에 오래 있으면 썩기 마련이지. 나도, 토니도 썩었던 것인가. 우린 고급이라는 단어 하나에 너무 미쳐 있었어.”
엔초는 테이블 밑에 있는 투표 버튼을 눌렀다.
“투표가 막 완료됐다고 합니다! 과연 승자는 누가 될 것인지!”
요리 세트장에 조명이 전부 빠지고 박형준과 토니를 가르키는 조명만이 남았다.
분위기가 짧은 순간에 완전히 바뀐 탓에 박형준의 심장은 더욱 빨리 뛰었다.
“결과는 3대0으로.”
탕!
조명이 한 곳으로 모였다.
“박형준 축하합니다! 세계 최고의 요리사가 되셨습니다!”
박형준은 기뻐서 주먹을 쥐고 뛰었다.
“감사합니다!”
쿵, 착지와 동시에 주변이 삭막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현기증인가?
고민하던 찰나 멍해지고 울리는 귓가에서 선명한 목소리가 들렸다.
-최고에 당신을 저희에 세계로 초대합니다. 부디 그분을 위하여 음식을….
***
“성공이야?”
“예, 일단 성공했습니다. 마왕님.”
2025.10.13 20:23
2025.10.13 20:23
2025.10.13 20:23
2025.10.13 20:21
2025.10.1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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