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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연하남을 연주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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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봄
85화무료 5화

자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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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누나가 필요해.” 스물셋, 어린 나이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유치완. “우리 쇼윈도 커플 하자. 대신, 조건이 있어.” 이슈 없는 쓰레기만 쓰는 스물아홉, 5년 차 매거진 에디터 구미하. 특종을 위해 어릴 적 자신을 쫓아다니던 유치완을 이용하는 그녀와, 연주를 완성시키기 위해 첫사랑을 이용하는 그. 과연 이 계약 연애의 결말은? 두 사람의 아슬아슬 예측불허 로맨스!

#로맨스#현대#로코물#첫사랑#순정남#연하남#달달물#천재#계약관계#대형견남#쾌활발랄녀

1화. 첫사랑도 몰라보는 나쁜 놈








쇼팽이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날렸던 음악의 도시, 파리.


그런 파리의 샹젤리제 극장에서 한 남자의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가 들려왔다.


마치 천사가 지상으로 내려와 연주하는 듯한 청아한 음률이었다.


2,000석이 넘는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 모두 감동받은 얼굴로 남자의 피아노 연주에 집중했다.


눈이 부실 정도로 강렬한 스포트라이트 아래서 피아노에 온몸을 맡기며 연주를 하고 있는 남자.


검은색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아 88개의 건반을 단 열 손가락만으로 가지고 노는 남자.


한국인 최초로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당당하게 1위를 차지한 남자.


23살이라는 나이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유치완이었다.


쇼팽의 환생이라는 연주 실력만큼이나 유명한 게 하나 더 있다면, 그건 바로 치완의 조각 같은 외모였다.


1년의 절반은 따가운 스포트라이트 조명 아래 앉아 있는 게 무색할 정도로 그의 피부는 그을림 하나 없이 투명하기만 했다.


더군다나 자로 잰 듯 날렵한 턱선과 여자보다 붉은 입술, 조각상처럼 우뚝 솟은 콧날, 커다란 눈매와 우주를 품은 것만 같은 새까만 눈동자까지. 어느 하나 완벽하지 못한 곳이 없었다.


곧 치완의 손이 피아노에서 완전히 떨어지자, 여기저기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Bravo!”


얼마나 집중한 건지 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치완이 그의 기다랗고 하얀 손으로 흐르는 땀방울을 조심스럽게 훑어냈다.


성큼성큼 긴 다리로 무대 중앙에 선 치완은 관객들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했다.


흠잡을 곳 없이 완벽한 무대를 선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어딘가 굳어있었다. 마치 자신의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런 치완의 미묘한 표정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관객들은 휘파람까지 불어대며 찬사를 보냈다. 그렇게 치완의 파리 독주회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하아…….”


대기실로 돌아온 치완은 소파에 앉아 헐떡이며 숨을 골랐다.


장장 2시간이 넘는 독주회는 거친 운동을 한 것과 맞먹을 정도로 체력 소모가 심해 예민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치완이 유독 심란해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고운 미간을 와작 구긴 그가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왜 안 되는 거야, 왜…….”


이번 독주회 피날레는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이었다. 가장 자신 없는 곡을 피날레로 선택하기에는 많은 고민과 용기가 필요했다.


그 어떤 곡이든 완벽하게 연주해내는 치완이지만, 쇼팽이 첫사랑을 떠올리며 작곡한 이 협주곡만큼은 유독 어렵게 느껴졌다.


아무리 수도 없이 연습해도, 아무리 수많은 감정을 불어넣어도 도무지 해결이 되지 않는 결핍은 그를 끝도 없이 괴롭혔다.


“미치겠네…….”


똑똑-


그때 대기실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치완의 얼굴에 짜증스러움이 가득 번졌다.


“제가 분명히 연주회 전후에는 대기실 들어오지 말라고 부탁드렸는데요.”


-접니다, 도련님. 진 회장님 지시로 왔습니다.


문밖에서 들려오는 도련님 소리에 치완의 얼굴이 더욱 싸늘해졌다. 결국, 입술을 꾹 깨문 그가 고개를 까닥하며 말했다.


“들어와요.”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깔끔한 인상의 중년 남자 한 명이 유유히 대기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치완을 바라보며 다정하게 웃어 보였다.


“오늘 연주회는 정말 완벽 그 자체였는데, 왜 이렇게 표정이 어둡습니까, 도련님.”


“…….”


“설마 아직도 협주곡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 겁니까?”


“본론만 말하시죠.”


다정하게 구는 김 비서와 다르게 치완의 목소리는 싸늘하기만 했다.


“칼 같으신 성격은 도무지 변하질 않으시네요.”


능글맞게 웃어 보인 김 비서가 서류 가방에서 빳빳한 팸플릿을 꺼내 치완에게 건네주었다.


“혜성악기 창립 100주년 연주회 팸플릿 샘플입니다. 회장님께서 무척 공들이고 계시고요.”


“나더러 한국 가서 재롱 잔치라도 하라는 거군요.”


“회장님께서 들으시면 섭섭해하시겠습니다. 회장님께선 치완 도련님을 무척이나 보고 싶어 하시는데 말입니다.”


김 비서가 건넨 팸플릿을 훑어보는 치완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노골적으로 싫은 기색을 내비치고 있지만, 그 누구보다도 치완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절대로 진 회장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런 치완의 상황을 모두 알고 있는 김 비서는 여전히 여유만만이었다.


“귀국 티켓은 전부 마련해 두었습니다. 도련님께서는 그저 몸만 오시면 됩니다.”


“……알겠으니까 나가세요.”


나가라는 치완의 말에도 불구하고, 김 비서는 능글맞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도련님, 아무리 한국이 안 좋은 기억투성이라지만, 이젠 극복하셔야지요. 혹시 압니까? 협주곡에 대한 해결책을 한국에서 찾을지? 어쩌면 도련님께는 일종의 환기가 필요한 걸 수도 있으니깐요.”


해결책이라는 말에 치완이 작게 코웃음을 쳤다. 수년간 아무리 노력해도 찾을 수 없었던 해결책을 한국에서 찾아보라는 말이 너무나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김 비서님, 나가세요. 저 피곤합니다.”


원래도 싸늘했던 분위기가 더욱 낮게 가라앉았다.


치완은 더 상종하기도 싫다는 듯 아예 소파에 몸을 기댄 채 두 눈을 감아버렸다.


“예예, 도련님, 그럼 한국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곧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고 김 비서가 대기실을 벗어났다.


여전히 미동도 없이 눈을 감고 있던 치완의 입에서 낮은 욕지거리가 새어 나왔다.


“빌어먹을.”




* * *




대한민국 트렌드의 선도주자 매거진 <이슈>는 오늘도 소란스러웠다.


“하아……. 미하 씨.”


<이슈>의 젊은 편집장 동석의 손에는 미하가 몇 날 며칠을 꼴딱 새워가며 쓴 수북한 원고가 들려있었다.


쳇바퀴 돌아가듯 각박한 삶을 사는 현대인들의 워라밸을 지켜달라는 호소력 짙은 내용의 원고였다.


“요즘 이런 기사를 누가 돈 주고 사서 봐? 네이버에 검색만 해도 이런 글은 수두룩하다고. 솔직히 말해서 하나 씨가 발가락으로 쓴 게 더 재밌겠어.”


나름 사회문제를 잘 녹여낸 것 같아 뿌듯해한 미하와는 다르게 동석의 표정은 참담함 그 자체였다.


동석이 이내 부욱- 소리가 나도록 종이를 찢어버렸다. 피와 땀이 담긴 원고가 한순간에 휴짓조각이 되는 광경을 보며 미하는 비명을 질렀다.


“펴, 편집장님, 아무리 그래도 입사 동기랑 비교하는 건 좀……. 말씀 잘 알겠어요. 다시 쓸 테니까 조금만 더 시간을,”


“다시 쓸 필요 없어, 미하 씨.”


미하의 말꼬리를 똑하고 잘라먹은 동석의 표정은 싸늘하기만 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미하의 목소리가 갈수록 움츠러들었다.


동시에 미하는 어릴 때부터 항상 목에 걸고 다니는 음표 모양 목걸이를 버릇처럼 만지작거렸다. 궁지에 몰리는 일이 생길 때마다 목걸이를 만지면 마음이 조금은 차분해졌기 때문이다.


“5년 동안 수고 많았어. 뭐, 한 게 없으니 수고랄 것도 없지만.”


“저…… 제가 이해가 잘 안 돼서 그러는데…… 말의 요지가 뭔지 정확히 말씀을 좀…….”


멍청한 표정으로 되묻는 미하를 보며 동석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구미하 씨, 오늘부로 잘렸다고. 내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나? 이슈가 없는 기사는 뭐다?”


“……쓰레기다.”


“잘 아네. 쓰레기는 쓰레기통으로 가야겠지?”


말을 마친 동석이 조각조각난 미하의 원고를 쓰레기통으로 골인시켰다.


“……!!!”


몇 날 며칠을 열심히 쓴 원고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자 미하의 얼굴이 형편없이 구겨졌다.


하지만 동석은 새하얗게 질린 미하의 모습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확인사살을 날렸다.


“백번 양보해서 5년 내내 특종 하나 못 잡은 건 그렇다고 쳐. 그럼 적어도 남들 시선을 끄는 기살 써와야 할 거 아니야? 별명만 구미호면 뭘 하나? 개미 새끼 한 마리 못 홀리는데.”


동석의 말이 맞았다. 잡지사에서 근무하는 5년 내내 특종은커녕 화제가 될만한 기사는 단 한 줄도 써내지 못했다.


29살의 5년 차 에디터. 빠르면 승진도 기대할 수 있는 연차였지만, 미하는 언제나 제자리였고, 연봉도 몇 년째 동결이었다.


심지어 같은 해 입사한 대학 동기 강하나는 온갖 인센티브를 독식하며 승승장구 중이었다.


분명 대학생 때만 해도 과 수석은 언제나 항상 자신의 차지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모를 지경이다.


“참나 워라밸이라니. 차라리 피아니스트 유치완 첫 귀국 기사 쓰는 게 더 재미있겠네, 제목 딱 나오잖아? 고아 출신 천재 피아니스트의 화려한 귀환. 얼마나 좋아?”


“예? 누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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