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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의 목줄을 놓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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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비
264화무료 6화

자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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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악녀로 빙의했다. 끝까지 잘 먹고 잘사는 캐릭터라 별걱정 없이 지내려고 했지만 내 주변이 문제다. 자칭 어머니라는 분이 흑막을 데려와 계속 세뇌하고 앉았다. 세뇌의 내용은 두 가지. 가문의 사람들에게 복종할 것. 그리고 시리에나, 그러니까 나를 사랑할 것. 덕분에 세뇌를 당한 흑막이 나한테 집착하는데... 안 되겠다. 흑막에게 걸린 세뇌를 풀어주어야겠다! 그런데, 이게 무슨 상황이지? “세뇌가 풀렸으니 이젠 내 마음대로 할 겁니다. 그러니 시리에나, 부디 열심히 발악해 보세요.” 세뇌를 풀었는데…… 다른 의미로 전보다 더 미친 거 같다. 내 착각이겠지?

#로맨스판타지#판타지#서양풍#능글남#영혼체인지#빙의#짝사랑남#존댓말남#까칠녀#도도녀

1화








“시리, 뭐하니? 어서 데려오지 않고.”


“시리에나, 제발……!”


애처로운 표정의 소년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간절하게 내 치맛자락을 붙잡는다.


나는 그런 소년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제 막 열넷이 된 소년은 제 나이답지 않은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볼수록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주는 보라색 눈동자는 영롱하게 빛나 눈이 마주치는 사람들을 모두 매혹했다.


그러나 이 집안사람들은 그 매혹적인 모습 앞에서 무심했다.


여느 때와 같은 무심한 사람들의 표정을 읽은 것인지 소년이 다시 내게 빌었다.


두 손이 닳도록 싹싹 비는 소년의 모습은 처절했고 그만큼 간절했다.


“제발…….”


“시리, 아제스터를 내 앞으로 데려오지 않겠니? 교육을 받아야 하는 데 말을 참 안 듣는구나.”


머리 색과 같은 짙은 회색 눈동자가 재촉하듯 나를 응시한다.


압박감이 들 정도로 서늘한 멜포르트 공작의 눈에, 그녀와 비슷한 모습의 내 얼굴이 가득 들어찼다.


“나의 착한 딸아, 어서.”


그녀에겐 그런 힘이 있었다.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눈빛만으로 사람을 압도하는 그런 힘이.


그 덕에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제 형제들을 누르고 공작이 된 거겠지만.


“시리에나, 제발…… 날 보내지 마.”


“이만 포기해, 아제스터.”


아제스터는 여전히 내 치맛자락을 붙들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잡힌 치맛자락을 빼내기 위해 치마를 잡아당겼지만, 그의 손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라면 남의 치맛자락을 쥐고 애원할 바에 도망칠 텐데.


물론 도망친다고 해서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러는 편이 시간을 더 끌 수 있을 것이다.


“쯧. 내 딸은 참 마음이 여리다니까.”


멜포르트 공작이 까딱, 아제스터를 향해 턱짓했다.


시종들이 그녀가 원하는 바를 알아들은 듯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또각또각.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신발굽이 부딪치는 소리가 유난히 날카롭게 다가온다.


시종들의 발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아제스터는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었다.


안 그래도 하얀 그의 피부가 더 창백하게 질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곳엔 그 모습을 보고도 그를 동정해줄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멜포르트 공작은 자신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만을 곁에 두었다.


자신처럼 동정심은 눈곱만큼도 없고, 가학심으로 가득 찬. 그런 사람만을.


“어머니, 오늘은 아제스터의 몸이 좋지 않아 보이는데, 다음에 하는 건 어떨까요?”


“몸이 안 좋다니? 그럼 세뇌가 평소보다 더 잘 먹히겠구나.”


멜포르트 공작은 오히려 잘됐다는 듯 히죽 웃으며 박수를 쳤다.


그녀의 웃음은 이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명랑했다.


정말 역겹기 짝이 없게도.


멜포르트 공작이 아제스터에게 하는 세뇌 내용은 주로 이렇다.


가문의 사람들에게 복종할 것.


그리고 시리에나, 그러니까 나를 사랑할 것.


해괴한 내용이었다.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내용이었지만 들을 때마다 눈살이 찌푸려진다.


어린 소년에겐 정말이지 가혹한 행위지만, 우리 가문을 위하여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제스터에게 눈을 돌리자 환각의 방이 눈에 들어왔다.


일주일에 한 번씩 아제스터를 세뇌하기 위해 특별히 만든 곳.


환각의 방에 있는, 그녀가 특수 제작한 향초는 자칫하면 사람의 뇌를 녹일 만큼 강한 환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렇기에 아제스터를 장시간 가두되 자주 가둬서는 안 됐다.


마침내 시종들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내 앞까지 다가온 시종들은 잠시 내게 예의를 차리고 나서 아제스터의 팔을 우악스레 붙잡았다.


“싫… 흐윽……!”


아제스터가 붙잡힌 팔을 빼내기 위해 몸부림을 쳤지만 그럴수록 처절하게 짓밟혔다.


공작의 시종들은 그를 봐주지 않고 제압했다.


그들의 무자비한 손이 아제스터의 머리채를 잡아 바닥으로 처박고, 팔을 뒤로 꺾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들이 그럴수록 아제스터의 발악은 더 심해졌다.


“읏!”


“시리에나……?”


그들의 무자비한 손아귀로부터 잠시 탈출한 아제스터의 한쪽 팔이 내 발목을 스쳤다.


스친 감각에 놀라 작게 눈을 찌푸렸을 뿐인데 아제스터의 얼굴이 당황으로 얼룩졌다.


내 신음에 아제스터의 신경은 순간적으로 내 쪽으로 쏠렸다.


시종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아제스터를 완전히 제압해 그의 팔을 포승줄로 묶어 결박했다.


아제스터는 자신이 나를 때렸다는 사실에 놀란 건지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시종들이 그의 얼굴을 바닥에 강하게 처박고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강압적인 조처를 했다.


그 과정에서 아제스터의 결 좋은 흑발이 몇 가닥 뽑혀 바닥에 뒹굴었다.


그의 자안은 여전히 나만을 담고 있었다.


계속 애처롭게 흔들리는 그 눈을 보고 있으려니 죄책감이 들어 무심코 그의 시선을 피해버렸다.


“조심히 데려가.”


그 말만을 남기고 나는 그 소란스러운 상황에서 등을 돌렸다.


내가 아제스터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고작 열넷이 된 소녀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생각해보니 아제스터가 세뇌를 당한 지 벌써 삼 년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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