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꿈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진 세계. 재앙은 ‘꿈’에서 태어나 ‘현실’을 삼킨다. 그리고, 그 경계 위에 선 한 소년. ‘나는 왜 꿈을 꾸지 못했을까?’ 그의 질문은 곧 신의 의지와 맞닿아 있었다. 신의 꿈을 걷는 자, 몽상우. 인간이 만든 악몽과 신이 남긴 예언 사이에서, 한 소년의 각성이 시작된다.
1화
토요일 새벽, 눈꺼풀 안쪽이 서서히 달아오르며 귓속에서 낮은 진동이 울렸다. 잠결에 보던 꿈은 뚜렷했고, 깨어나려는 의지가 바늘처럼 피부를 찔렀지만 장면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다. 유리로 된 하늘 아래, 금이 간 교각 위로 검붉은 비늘의 괴수가 기어 올라왔고, 대피하던 사람들이 파도처럼 밀리다가 하나둘 미끄러지며 낭떠러지에서 떨어졌다.
그때, 검은 로브를 쓴 여인이 바람을 가르며 내려왔다. 여인은 검은 장막 끝을 붙들어 내 시야를 덮듯 펼치고는 괴수의 이마에 손끝을 댔다. 큰 동작은 없었지만, 마치 고장 난 시계를 멈추듯 괴수의 생명이 스러져갔다. 비늘 사이로 연기 같은 그늘이 스며들었고, 거대한 몸이 스스로의 무게에 눌리듯 주저앉았다.
"과거의 기억.”
여인의 목소리는 먼 곳의 파도처럼 잦아들었다가 되돌아왔다.
“네가 모르는 시간의 계단이 있어.”
그녀의 손목에 깃털 같은 문양이 있었다. 내 심장 박동과 이상하게 호흡을 맞추듯 미세하게 떨리다가, 마지막에 한 번 크게 고동치더니 하늘에 커다란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유리 천장에 금이 확장되고, 귓속 진동이 굵어졌다. 나는 무너져가는 하늘과 알 수 없는 그녀의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꿈에서 깨어났다.
"후우... 꿈인가?"
헝크러진 이불, 바닥에 떨어진 배게, 땀으로 흠뻑 젓은 침대까지.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잉, -지잉
어디선가 들려오는 진동소리, 탁자 위 스마트폰이 진동으로 책 표지를 밀어내며 떨어졌고, 화면에는 큼지막한 긴급 속보가 자리했다.
속보서울 외곽 산지 대규모 지반 침하… 군 병력 투입
손끝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진동, 화면 속 드론 영상은 회색의 산등성이와 거대한 골짜기를 비추고 있었고, 모서리에는 ‘○○군 ○○면 일대’라는 자막이 떠 있었다. 골짜기 주변의 도로가 마치 종이를 접었다 펼친 듯 구겨진 모습이었다. 멍하니 핸드폰을 들여다 보고 있으니, 어째서인지 아까 전의 꿈이 떠오른다.
"...정신차리게 샤워나 하자."
나는 샤워장에 서서 물을 틀었다. 뜨거운 물이 어깨를 따라 흘러내리자 비로소 꿈의 잔향에서 벗어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뜨거움과 차가움 사이에서 숨을 고르며 머릿속이 복잡해져간다. 도저히 꿈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던 경험, 그때의 감촉, 냄새, 광경 그 모든 것이 현실과 다를 바 없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어져 갔지만 어쩌겠는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다.
거실은 조용했다. 아버지는 일찍 출근하신 듯했고, 어머니는 사라진지 오래이다. 현관문에 붙여 둔 오래된 사진 속에서 어머니는 버스 차창 너머로 손을 흔들고 있었고, 사진 아래에는 내가 초등학생 필체로 쓴 낙서가 흐릿했다. ‘엄마 금방 와.’ 그 문장은 지금도 오해를 부른다. 금방이란 얼마나 긴 시간일까, 하루였는지, 10년이였는지, 아니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다는 것인지.
학교에 가는 버스 안에서도 뉴스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어떤 화면에서는 소방 방재복을 입은 인원들이 붉은 테이프를 치고 있었고, 다른 화면에서는 군 트럭이 골짜기 주변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었다. 뉴스 진행자는 ‘원인 미상’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뉴스 화면을 멍하니 보고 있자, 누군지 알 수 없는 목소리가 귓가에 퍼졌다.
"원인이 없을 리가 없어. 다만 우리가 아직 이름을 붙이지 못했을 뿐이지."
나는 소리의 원인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어째서인지 버스 안에는 나 밖에 없었다.
첫 교시는 국어였다. 도착한 학교는 평소처럼 지루함과 나긋함이 교차하는 장소였다. 담임은 진도표를 읽었고, 창가에 있는 애들이 햇빛을 피해 블라인드를 내렸다. 나는 블라인드 아래 떨어진 빛의 경계에 손가락을 올려 두었다가, 빛이 한 칸 옮겨갈 때마다 손을 손가락 마디가 닿을 만큼 움직였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행위지만, 언제부턴가 이런 행동들을 반복해왔다.
두 번째 교시가 끝나갈 즈음, 졸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검은 로브의 여인의 손목 문양이 자꾸 떠올랐고, ‘과거의 기억’ 이라는 말이 귀에 멈돌았다.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댄 채 잠깐 눈을 감자, 어두운 물 위를 걷는 느낌이 들었다. 깊지도 얕지도 않은 곳, 발목만 잠기는 물을 건너는데도 이상하게 숨이 가빴다.
그때, 어둠이 살짝 벌어지며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여기야. 네가 자꾸 돌아오는 곳.”
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검은 방, 아주 미세한 빛이 세어나오는 장소의 가운데 서 있던 여인이 내 쪽으로 걸어왔다. 로브의 실루엣은 윤곽이 없는데도 선명했고,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새어져 나왔다.
'찰팍, 찰팍.'
검은 물 위를 거닐던 그녀는, 내 앞에서 걸음을 멈춘 채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싱긋, 미소 지으며 물었다.
"안녕, 나와 같은 사람은 오랜만이네."
그녀는 애써 반가운 기색을 감춘 채 내 손을 꼭 잡고선 물었다.
"꼬마야, 너는 네가 특별하다는 자각을 가지고 있니?"
"무슨 소리에요?"
"너가 다른 사람들과 달리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을 자각하고 있냐는 뜻이란다."
"특별한 능력이요?"
"그래, 오늘 아침 네가 꾼 꿈, 그것이야 말로 가장 특별한 능력이지. 그것은 과거이자 미래이며, 닥쳐올 재앙이자, 막아낼 희밍이니깐."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모르겠는데.."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꿈에서 봤던 광경들을, 기억하고 있니?"
"네, 그게 그러니깐...커다란 지렁이 같이 생긴 괴물이 도시를 부수다가, 갑자기 검은 로브를 뒤집어 쓴.."
'내가 지금 이걸 왜 말하고 있는 거지?'
"음음, 그렇구나. 다행히 잘 기억하고 있나보네. 내가 이렇게 찾아온 너에게 아주 중요한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야."
"중요한거요?"
"그래, 세상의 멸망과 깊은 관련이 있거든."
"멸망?"
"음, 어디서부터 설명을 시작해야 할까.. 우선 꿈에서 봤던 괴물을 기억하니?"
"네. 사람들을 무참히 찢어 발기던 그 모습을..어떻게 잊겠어요."
"그래, 그것들은 '재앙' 이라 불리는 존재란다. 재앙은 총 50가지가 존재하며, 네가 봤던 건 첫 번째 재앙이야. 그리고 말도 안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재앙들은 곧 현실에 나타날거야."
"현실에요?"
"그래, 네가 봤던 예지몽은 앞으로 일어날 최악의 상황을 꿈의 형태로 볼 수 있는 능력이야. 꿈의 여신께서 하사하신 능력이지. 너는 그 능력을 기반으로 재앙을 막아줬으면 해."
"갑자기 그런 말을 하셔도.."
"나도 마음 같아선 천천히 시간을 들여 여러가지를 알려 주고 싶지만, 아쉽게도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거든."
"설령 예지몽을 통해 앞으로 다가올 재앙을 확인한다 해도, 저에게는 아무런 능력도 없어요. 저는 그냥 평범한 고등학생에 불과한걸요."
"맞아, 지금의 너는 아무런 힘도 없는 학생이지. 하지만 나도 무턱대고 재앙을 막아달라는 건 아니야. 너를 돕기 위해 여러가지 안배를 준비해뒀으니 그 힘을 취하렴."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2025.10.30 16:27
2025.10.30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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