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평범 속의 비범한 여자와 복수에 미친 기계에 대한 이야기
서울의 아침은 늘 비슷했다. 회색 건물들이 서로의 그림자 위에 서 있고, 커피 냄새와 자동차 경적이 섞인 채 도시는 기계처럼 움직였다. 김태윤은 늘 그렇듯 카페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다. 문이 열리며 맑은 ‘띠링’ 소리가 울렸다.
“아, 태윤 씨 왔어요?”
카운터 뒤에서 여자 하나가 환하게 웃었다. 단발머리에 청색 앞치마를 맨, 서하윤이었다. 자신과 동갑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카페로 인해 사장 자리까지 차지했다.
그녀는 커피를 내리며 익숙하게 말을 걸었다.
“오늘도 지각 안 했네. 기특한데요?”
“지각할 이유가 없죠. 출근할 낙이 있잖아요.”
“출근할 낙?”
“하윤 씨 얼굴 보는 거요.”
“아, 됐어요. 그런 말 한다고 시급 안 올라요.”
서하윤은 웃음을 터뜨리며 컵을 건넸다.
“오늘 아침은 내가 쏠게요. 대신 점심은 태윤 씨가.”
“콜.”
태윤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쓴맛이 입 안 가득 퍼졌지만, 그건 이상하게도 하루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쓴맛이었다. 도심의 피로함 속에서도 이런 소소한 대화가 살아 있다는 게, 그에게는 위안이었다.
“요즘 이 근방에서 연쇄살인범이 돌아다닌데요. 진짜 세상 흉흉해서 살 수가 있나.”
서하윤의 투덜거림에 걸레로 바닥을 닦고 있는 김태윤이 대답했다.
“그러게요.”
“또, 또! 그렇게 차갑게 말하지 말라니까요?”
“노력해 볼게요.”
“3개월을 말했는데도 안 듣는다는 건 노력 자체를 안 한 거 아닐까요?”
“3개월동안 일 융통성 없는 사장 밑에 일하면서 안 그만두는 거 보면 나름 노력한 거죠.”
“아우, 진짜! 말 한마디를 안 져!”
서하윤은 짜증이라도 난 듯 냉장고에서 방금 꺼낸 얼음을 김태윤에게 던졌다. 김태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날아오는 얼음을 잡고는 입에 넣었다.
서하윤은 한숨을 쉬며 조용히 청소를 하는 김태윤을 바라보았다.
그는 평범했다. 대학을 중퇴하고, 공장과 편의점을 오가며 그날그날을 버티는 삶. 누구보다 현실적이었고, 감정에는 둔했다. 아니, 그렇게 보이길 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착하다’, ‘조용하다’, ‘참 멀쩡하게 살더라’고 말했다.
‘보면 볼수록 신기하단 말이지.’
보통이라면 딴짓을 하기 나름인데, 휴대폰도 안 보고, 꼼수를 부리지도 않고, 카페 비품을 몰래 빼먹지도 않았다. 심지어는 유행 자체에 관심이 없는 건지 5년 전 유행을 처음 장난감을 보는 어린아이처럼 바라보았다.
‘저렇게 살면 재밌나?’
김태윤은 뒤에 눈이라도 달렸는지 서하윤을 바라보지 않은 채 자리를 정리했다.
“혼자 그렇게 농땡이 필 거면 점심 안 사겠습니다.”
서하윤은 뜨끔 놀라며 곧바로 그의 옆에 서 일을 도왔다.
“도, 도울거에요!”
그때, 밖에 천둥치는 소리가 들렸다.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창밖을 바라보았다.
밖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느다란 빗줄기가 도로 위에 떨어져 번들거렸다. 김태윤은 편의점 천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또 비네요. 요즘 참 자주 오네요.”
“그래도 좋잖아요. 비 오는 날은 손님도 없고.”
서하윤이 계산대에 턱을 괴며 말했다.
“그리고 비 오는 날엔 그냥 마음이 느긋해지는 것 같아요.”
“전 반대예요. 비가 오면, 나쁜 일들이 떠올라서.”
“나쁜 일?”
“그냥… 옛날 이야기요.”
태윤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건 눈가에 닿지 않는 웃음이었다.
“뭔데요? 우리 태윤 씨의 나쁜 일이?”
서하윤이 눈을 반짝이며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자, 김태윤은 그녀의 얼굴을 밀며 저지했다.
“남의 프라이버시는 지켜주시죠?”
고슴도치처럼 자신의 몸을 말며 가시를 세우려는 김태윤의 모습에 서하윤은 볼을 부풀며 한 발 물러섰다.
“흥, 하여간 자기 개인정보 안 알려주는 건 알아봐아 해.”
“그건 모르겠지만, 지금 시간은 알겠네요.”
김태윤은 손가락으로 째깍거리는 시계를 가리켰다. 퇴근 시간은 금세 다가왔다. 하윤은 우산을 펴며 말했다.
“같이 가요. 지하철역까지.”
“괜찮아요. 전 좀 들렀다 갈 데가 있어서.”
“그럼 조심히 가요.”
그녀가 손을 흔들었다. 그 손끝에 묘하게 불안한 그림자가 어렸다. 하지만 태윤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 ⁜ ⁜
어깨까지 내려오는 은빛 머리카락, 햇빛처럼 반짝이는 눈동자,
그리고 그를 더욱 빛나게 해주는 잘생긴 외모 덕분에
카페를 찾는 손님의 9할이 여손님일 정도였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얼굴이 붉어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곧 고개를 흔들며 자신을 다잡았다.
‘이런 생각은 그만해야지…’
그렇게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주머니를 뒤지던 그녀는 휴대폰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앗, 카페에 두고 나온 건가?”
하윤은 마음이 급해져 발걸음을 재촉했다. 비는 이미 굵어져 있었다.
검은 우산 위로 빗방울이 쏟아졌고, 도로 위의 불빛들은 물결처럼 흔들렸다.신발 밑창이 물을 튀겼고, 젖은 머리카락이 뺨에 들러붙었다.
열쇠로 문을 열었을 때, 안쪽에서는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누가 있나?”
불을 켜자, 조용히 커피를 홀짝이는 여자가 하나 있었다. 하얀 가운을 걸친 채, 웃는 입술 끝이 이상하리만치 올라간 얼굴.
그 옆에는 덩치 큰 남자 둘이, 마치 경호하듯 서 있었다. 둘 다 검은 정장을 입고, 귀에는 통신기가 달려 있었다.
“저… 저희 가게는 문 닫았어요. 지금은 영업 시간이—”
“그 아이를 본 적 있나요?”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짙은 회색 눈동자가 불빛 아래서 차갑게 반짝였다.
그녀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머리는 백발, 눈은 노란색. 아주 예쁜 아이예요. 한눈에 보면 잊히지 않을 거예요.”
순간, 서하윤의 머릿속을 스쳐간 얼굴이 있었다.
'…태윤 씨인가?’
하지만 말도 안 됐다.
그 여자는 아무리 많아 쳐 봐야 스물 후반으로밖에 보이지 안았다.
두 눈을 비벼 봐도 그런 나이의 아들을 둘 리가 없어 보였다.
“본 적… 없어요.”
“그렇겠죠.”
여자는 미소를 유지한 채,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하지만… 거짓말은 못 하네. 봤구나.”
그 말과 동시에, 덩치 큰 남자 둘이 서하윤을 덮쳤다. 그녀는 비명도 내지 못한 채 바닥에 눕혀졌고, 차가운 손이 그녀의 팔을 꺾었다.
“뭐, 뭐 하는 거예요! 이거 불법이에요! 경찰 불러—”
“그 아이를 숨겼지요.”
2025.11.02 18:03

허걱....기계인간...
25.11.05
뷰컴즈 주식회사
대표 : 김학성 | 전화 : 1811-8389 | 이메일 : help@gling.co.kr
사업자 등록번호 : 492-88-01088 | 통신판매업신고번호 : 2022-서울영등포-1768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당산로 171, 13층 130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