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본 작품은 동일한 작품명으로 15세이용가와 19세이용가로 동시 서비스됩니다. 연령가에 따른 일부 장면 및 스토리 전개가 상이할 수 있으니, 연령가를 선택 후 이용해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늘 함께가 당연하다. 넌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을 이 명제가 나는 이상하게 느껴진다. 같이 놀자며 나를 부르던 그 입은 이제 결혼하자는 농담을 버릇처럼 내뱉는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줄도 모르는 채. “이제 사귀면 좋겠다고. 너랑, 나.” 너는 과연 어디까지 피할 수 있을까. *** [네가 존이구나. 반갑다.]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서 불렀단다. 오늘 전학 온 학생이 있는데 도와줄 수 있겠니?] 교장 선생님은 내 앞으로 몇 걸음 더 다가오셨다. 알 수 없는 위압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제 나오렴.] 말이 떨어지자마자 교무실 안쪽에서 마른 인영이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왔다. 행정직원과 교장 선생님. 그리고… 무척 낯익은 얼굴 하나. “오, 잘 있었어?” 한동안 잊고 지냈던 해맑은 얼굴이 눈앞에서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나 보고 싶었지?” 씩씩한 목소리에 뻔뻔한 것까지 완전히 그대로였다. “잘 지내 보자, 정우야.” 그때부터 서기현과 나의 인연은 제대로 시작되었다. 주중에도, 주말에도, 일 년 내내, 언제나 함께.
1화
* 소설 속 등장인물이 나누는 대화 중 한국어는 “ ”, 영어는 [ ]로 표기되었습니다.
* 작품 내 과거 시점은 모두 2019년 이전을 기준으로 합니다.
0. 프롤로그
임정우
“어? 뭐라고?”
그새 또 딴청을 피운 이가 되물었다. 맥주병이 가득 든 상자 뒤로 핏기 없는 하얀 얼굴이 불쑥 고갤 내밀었다.
“뭐라고 하는지 못 들었어. 이제 뭘 한다고?”
서기현은 기어코 그 많은 병을 마른 몸으로 혼자서 옮기곤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여태 내가 한 말은 그 어느 하나 제대로 듣지 않았다. 그냥 못 들은 게 아니라 단 한 문장도 못 들은 게 분명했다.
서기현은 항상 그랬다. 내가 입양 사실을 털어놓았을 때도, 친부모를 찾았다고 말했을 때도, 그들이 누구인지 설명할 때도.
마치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딴청을 피우다 얘기가 끝나면, ‘아, 그랬냐.’
그 단조로운 대답을 듣고 나면 몇 년 동안 고민했던 일도 허무하리만큼 아무렇지 않아졌다. 그리고 그제야 깨닫곤 했다. 누군가 내 아픔을 공감해 주기보다는 그게 뭐 대수라고, 차라리 별것 아니라고 말해 주기를 바랐다는 것을.
서기현과 있으면 내가 걱정하는 모든 것이 시답잖게 느껴졌다. 평생 나를 따라다니는 외로움도, 소외감도, 혀를 내두를 만한 집착까지도.
과연 오늘도 그럴까.
“이제 사귀면 좋겠다고.”
“…어? 누가? 누구랑 누가 또 사귄대?”
지금도 서기현은 딴소리를 했다. 제대로 듣질 못했으니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을 터, 연이어 나오는 물음에는 그 어떤 의심도 없었다.
“뭐야, 누구랑 누구냐니까.”
누구긴. 이제 와서 관심 있는 척 재촉하는 걸 보고 있으니 속으로 웃음이 났다.
서기현은 단순하고 솔직하다. 그렇기에 숨겨 놓은 내 시꺼먼 진심은 그 앞에 점점 더 꺼내 놓기가 어려워졌다. 하지만 언제나 끝이 있듯, 참을 만큼 참아 왔던 인내심이 결국엔 한계에 다다랐다.
무심한 목소리가 절로 툭 튀어나왔다.
“너랑, 나.”
한번 보자. 이번에도 넌 아무렇지 않을지.
1. 여름 방학
서기현은 처음부터 그랬다.
무더운 여름, 미치도록 심심한 동네에 불쑥 나타났을 때부터.
[존, 곧 마트에 갈 건데 함께 가겠니?]
[짐을 들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라면 집에 있을게요.]
[정말? 레이와 톰이 분명 서운해할 거야.]
[다음에 같이 간다고 전해 주세요. 혼자서 농구 연습을 하고 싶어서요.]
그 당시 홈스테이를 하던 호스트 가정은 썩 나쁘지 않았다. 사는 환경이나 식생활 등은 평범했지만, 가장 중요한 가족 구성원이 상당히 괜찮았다. 수염이 덥수룩한 아저씨와 빨간 머리의 아주머니는 상냥하셨고, 그들의 두 아들 역시 밝고 유쾌한 성격이었다.
사기라 해도 믿을 정도로 완벽하기만 한 이 가족은 호스트의 역할에 언제나 최선을 다해 주었다. 그래서 홈스테이를 하다 보면 분명 여러 가지 불만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때까지 난 딱히 불편한 점을 찾지 못했었다.
[남편은 오늘 좀 늦을 거야. 그동안 너 혼자서 있어야 하는데 괜찮겠니?]
[그럼요. 당연하죠.]
불편한 점을 더더욱 찾을 수 없었던 이유는 그 당시 그 집에 사는 사람이 그들과 나뿐이었기 때문이다. 보통 홈스테이 가정의 경우 유학생 여러 명을 한꺼번에 수용하지만, 해당 가정이 승낙한 유학생은 오로지 나 혼자였다.
2025.11.03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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