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바다는 우리에게 두가지로 비춰진다. 청량감 공포 도와주는 사람 아무도 없는 섬. 비명이 난무하는 그곳에는 오지 않을 엄마 아빠를 기다리며 매일 새벽 소금을 긁어모으던 한 소년이 있었다. 이 이야기는 그 소년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심해 그 깊은 바다의 어둠을 다룬 이야기이다. 밤이 서린 바다 위, 그 곳. 피비린내 가득한 그곳에서 오늘도 어김없이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그 피는 누구의 것이려나.
잡고 있던 엄마의 손을 놓고는 회전목마 위 돌아가는 말들을 가리켰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미소 지었고, 아빠는 나를 단번에 들어 올려 자신의 가슴에 나를 안았다.
두근 두근
아빠의 심장 소리가 들려왔다. 주변의 소음에도 나에게 그 소리는 가장 선명하게 들려왔다. 엄마는 나에게 다가와 내 얼굴만한 손으로 양 볼을 살짝 꼬집었다.
포근한 향.
그 향에 나는 엄마한테 가려고 양팔을 뻗고는 있는 힘껏 칭얼거렸다. 아빠는 그 힘찬 몸부림에 못 이겨 알았다는 말과 함꼐 나를 내려놓으셨다. 나는 발이 땅에 닿자마자 엄마에게 걸어가, 그 포근하기만 했던 손을 맞잡았다. 회전목마를 지나고 보이는 넓다란 공원에는 같은 옷을 입기도, 동화에서만 봤던 머리띠를 쓰기도 한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그들한테도 엄마 아빠와 같이 행복해 보이는 미소가 잔뜩 머금어져 있었다.
한편에서는 때에 따라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가 들려올 때면 무서워 엄마의 치마폭에 얼굴을 밀어 넣었다. 그러면 좀 편해졌으니까.
‘가림아. 저것 봐봐’
나긋하면서 부드러운 목소리. 엄마의 말에 나는 치마폭에 폭하니 안겨있던 얼굴을 빼내어 엄마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비눗방울들이 하늘을 떠다니고 있었고, 무지갯빛으로 빛나며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 반짝임에 홀려 엄마의 품 안에서 벗어나 비눗방울이 떨어지는 그곳으로 걸어갔다. 다가갈수록 커져만 가는 그 반짝임에 나는 양손을 뻗었다.
그리고 내 손에 닿은 큰 방울이 아무 소리 없이 사라졌을 때, 아빠는 나의 오른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엄마가 서있던 그곳이 아닌 지나왔던 길을 따라 나와 함께 걸어갔다.
그곳의 사람들은 점차 화려함을 잃어갔다. 동화 속 곰인형은 탈을 벗었고, 달콤했던 향기는 이제 텁텁한 매연으로 바뀌어 있었다. 웃음 가득했던 사람들의 얼굴은 설렘으로 바뀌더니 이내 아무 표정도 남지 않았다.
나는 점차 소리가 멀어졌을 때, 고개를 들어 아빠를 올려다보았다.
사그라져 가는 비명소리.
가늘어져 가는 웃음소리.
흐트러지는 바람소리.
그리고 울음소리..
비명소리….
삐빕 삐빕 삐빕 삐빕
오늘도 버저 소리가 새벽에 울려 퍼졌다. 웃풍이 불어와 서늘한 방안에 더럽기만 한 먼지가 나풀거리고 있었다. 문밖의 개 밥그릇에 담긴 음식물들 탓이려나, 그 주변에 흩뿌려진 음식물 탓이려나, 지독한 냄새가 아침부터 탁하게 들이쳤다. 그런데 냄새는 뭐… 이제는 익숙해져서 그런가, 나름 괜찮았다. 나는 여태 울리고 있는 버저를 세 번 네 번 내리쳐서 끄고는 누더기 이불을 걷고, 나무판자 하나 덧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어두운 마당에 어느덧 서리 내린 겨울의 한기가 폐를 차갑게 얼리는 듯했다.
나는 그 새벽에 일어나 할머니 할아버지 방을 지나 부엌으로 향했다. 다 뜯어져 가는 신을 벗어 가지런히 처마 밑에 두고, 미닫이문을 열면 보이는 어두운 부엌, 그곳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따뜻했다.
나는 할머니나 할아버지의 잠을 깨울까, 불도 켜지 못한 채 부지런히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할아버지는 국이 없으면 안 되었고, 할머니는 나물 반찬이 없으면 안 되었다. 혹여 하나라도 준비하지 않았다가는 일 끝나고 밥그릇으로 머리가 아플 수도 있으니, 나는 언제나 그 두어 가지는 꼭 하는 편이었다.
해가 깃들기 전, 부엌 한편에 걸려 있는 얇은 옷을 주워다 입고, 처마 밑에 있는 하얀 장화를 신고 빠르게 일터로 향했다. 일터는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곳으로, 그곳의 풍경은 너무도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산능선이 겹겹이 쌓이고 그 능선의 틈에서는 물안개가 자욱이 일어났다. 일출에 이는 붉은 어스름은 그 안개를 물들였고, 그 아래 네모나게 각진 구획들은 하늘을 비춰 산을 하늘에 띄운 듯한 신비로움을 연출했다.
밤에도 그러하면 얼마나 좋을까나…
‘누…누렁이 왔어?’
한 씨 아저씨는 오늘도 누구보다 일찍 나와 나에게 손을 흔들어 주셨다. 지적 장애가 있으신 아저씨는 말이 어눌했지만 힘은 우리 중 가장 강했고, 일은 우리보다 잘했다.
‘아저씨 모자 삐뚤어졌어. 이리 와봐’
아저씨는 항상 모자를 이상하게 쓰고 오셨다. 삐뚤게…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뒤집어쓰는 것도 아닌데 그냥 정말 신기하게 쓰고 오신다. 내 일과의 시작은 항상 그런 아저씨의 모자를 고쳐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오…오늘 아..아저씨도 오셔?’
할아버지에 관한 얘기이다.
‘아니. 오늘은 뭐 중요한 일 있다고 거기 가신다고 하셨어. 그래서 나 조금 있다가 밥 차려드리러 가야 해. 안 가면 나도 채 씨 아저씨 마냥 흙덩이 돼버릴걸’
채씨 아저씨는 나랑 같이 지내던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어린 나를 보며 자기 아들이랑 같은 나이라고, 좋아하시며 나를 정말 애지중지 아껴주시고 챙겨주셨다. 그런 채씨 아저씨는 나에게는 거의 아빠와 같은 사람이었다. 말을 알려주고, 글을 알려주셨으니까. 그런 아저씨는 종종 어디론가 사라지셨다가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오셨었다.
한 번은 항구에서 잡혀서
다른 한 번은 경찰이 데려와서
또 다른 한 번은 동네 아줌마한테 잡혀서.
그래도 아저씨는 항상 나에게 웃어주며 눈을 감으셨다. 그렇게 강하던 아저씨가 석 달 전부터 아프셨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몸이 펄펄 끓어오르고, 피부에는 점차 선홍빛 열꽃들이 올라왔다. 아저씨는 그럼에도 항상 일을 나가야 했다. 나가지 않으면 할아버지한테 맞거나, 마을 사람들한테 맞을 테니까. 그럴 바에야 일하는 게 백번 낫다고 하면서 말이다. 열꽃이 점점 더 진해져 가는 아저씨는 나를 매일 안아주었다.
추운 이곳에서 자기가 가장 따뜻하다면서 말이다.
그런 아저씨가 3일 전 해가 아직 숨어 있던 그 밤에,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던 그날에, 내 등 뒤에서 천천히 식어 갔다. 소금을 대파(밀대)로 끌어모으고 있던 나는, 그 작은 몸으로 아저씨를 끌고 염전 밖으로 나와 바닥에 눕혔다. 한씨 아저씨는 그런 나에게 다가와 빨리 주인님한테 연락해야 한다며 자기 집으로 뛰쳐나갔다.
나는 그냥 그 자리에서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그날, 채씨 아저씨는 할아버지가 들고 온 수레에 실려 저 능선 어딘가에 묻혔다. 그리고 삽을 들고 온 몸을 흙으로 뒤집어 쓰고 온 할아버지는 나를 잡아다 흠씬 두들겨 때리셨다. 일을 못 했다고 욕하는 듯한데, 하필 귀를 맞아, 그 먹먹함에 정확한 말은 듣지 못했다. 그 탓이려나, 그날 밤부터 내 귀에는 이명이 심해졌다. 그러고 다음 날, 여느 날과 달리 셋이 아닌 둘이서 마주한 한씨 아저씨와 나는 멍든 서로의 눈두덩이를 보고 그냥 한참을 웃고 또 울었다. 물론 일하면서 말이다.
‘ㄱ…그건 안돼!’
‘안 그래 걱정 마 아저씨. 천천히 준비하고 와 나 먼저 일하고 있을게’
나는 아저씨가 들고 있던 나무 대파를 들어다 바다가 만든 결정을 쓸어 한곳에 모았다. 물 먹은 그 하얀 결정은 바다의 땀이려나 내 땀이려나, 무겁기만 더럽게 무거웠다. 내 키보다 큰 밀대를 밀어붙이기 위해 나는 온몸에 힘을 주었다. 얼마 안 가 숨이 거칠어졌고, 손도 팔도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힘들 때면 바닥을 보았다.
해가 깃든 얕은 소금물에, 그리운 엄마와 아빠 얼굴이 보였으니까.
나는 그거면 살아갈 수 있었다.
‘누렁이. 이제 슬 가야할 때 아냐? 다녀와 얼른. 누렁이 흙덩이 되면 나 혼자야 안돼’
‘맞다! 고마워 아저씨 나 금방 갔다 올게!’
해가 깃든다는 것은 곧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일어난다는 뜻이다. 그 전에 밥을 차리지 않았다가는…. 진짜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대파를 염전 한 편에 던져두고 빠르게 집으로 달려갔다.
‘제발 닭아 울지 마라 제발 제발’
나는 닭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미친듯이 달렸다. 근데 이놈의 닭은 아침이 와서 우는 건지 아니면 내가 보여서 우는건지, 항상 내가 문을 여는 그 찰나에 목을 하늘 높이 쳐들고서 울어댔다.
꼬끼오
나는 빠르게 장화를 벗어두고 미닫이 문을 열어 부엌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빨리 가스불을 켜 아침에 준비해 둔 국을 데우고 준비해 둔 나물 반찬을 꺼내다 그릇에 옮겨 담았다.
‘누렁이 밥 다 됐냐?’
할머니가 방문 뒤에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네 다 되어가요. 조금만 기다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언가가 방문을 강하게 내리쳤다.
‘저 썩을 거, 저거 밥 하나 딱딱 못 맞추냐. 아침부터 뒤지고 싶은가 보네. 저게’
‘냅둬 검은 머리 짐승 새끼가 뭐 할 수 있다고 냅둬 지 애미 애비 보고 싶지도 않나 보지. 아야 너 그렇게 쭉 해쳐먹으면 니 애미 애비고 뭐고 더 안 찾아볼 거다’
‘죄송해요…. 밥 다 차렸어요. 나와서 식사 하세요.’
나는 빠르게 식탁을 펴다가 위에 밥과 반찬 그리고 국을 가지런히 놓았다.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방문이 열리기 전에 얼른 숟가락과 젓가락을 들어다 밥그릇 옆에 가지런히 올려 두었다.
‘넌 오늘도 일 두 세배로 해야 해 알겠지. 채 머시기 마냥 아프다고 병원이라도 가면 이번에 죽는 거야 알겠어?’
‘병원비만 하이고…. 저 새끼 애미 애비 찾는 값보다 더 나오겠어 아주’
‘하여튼 네가 이 값 다 물어내고 가야해. 연대 책임이여 연대 책임!’
할머니는 언제나 할아버지가 하시는 말에 맞장구를 쳐주셨다. 그 덕에 나는 장구보다 더한 타작을 맞고 있긴 했지만, 이제는 어느덧 익숙해져서 그럴까, 그렇게 아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이 이야기를 들을 때면 언제나 불안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엄마 아빠를 찾아주지 않을까 봐.
2025.11.04 22:00

주인공이 안타깝네요....
25.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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