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은 재앙을 부른다
profile image
도진구야
1화무료 1화

매주 일 월 화 수 목 금 토 연재 | 글링

조회수 34좋아요 0댓글 0

착각 속에서 수백 년을 기다린 남주. 나비효과로 뒤틀린 세계. 그리고 모든 비극의 시작점에 선 나. 회귀가 만든 재앙을 끝낼 수 있는 건, 그 시작점인 나뿐이다. 좋아하던 게임 속 세계에 빙의했지만, 게임과 달리 평화로운 세상. 쓸모없어진 게임 지식을 안고 살아간다. 그런데 어느날 눈을 뜨니, 같은 시간이 무한 반복되고 있었다.회귀를 끊으려 고군분투 하지만 그 끝은 점점 재앙을 부르는 결과로 이어진다.회귀할 때마다 만난 이들. 그들에게 남긴 작은 선의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쌓여, 내가 알던 게임 속 암울한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로맨스판타지#서양풍#게임#착각물#인외존재#타임슬립#피폐물#달달물#회귀#아포칼립스

"에이라! 안 돼!"

목소리가 절규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에이라가 내 품에서 서서히 차가워져 가고 있었다. 갈색 머리카락이 핏빛으로 물들어갔고, 커다란 녹색 눈동자는 이미 초점을 잃어가고 있었다.

"리나야..."

떨리는 손이 나를 향해 뻗어졌다. 가늘어져 가는 목소리에 심장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미안해... 네가... 말렸는데..."

"에이라, 제발... 눈 감으면 안 돼!"

필사적으로 상처를 막았지만 피는 계속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왔다. 따뜻했던 액체가 점점 차가워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울부짖었다.

"고마웠어... 리나만이라도... 나를... 좋아해 줘서..."

에이라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목에 걸고 있던 작은 은색 목걸이가 돌바닥에 굴러떨어졌다.

그 순간,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

쨍그랑.

또 시작됐다.

유리 파편이 바닥에 흩어지는 익숙한 소리가 고막을 찔렀다. 같은 침대에서 일어나며 내뱉는 한숨은 이제 폐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절망의 무게를 담고 있었다.

창밖 풍경도 언제나 그대로다. 볕에 바랜 지붕들과 저 멀리 보이는 금지된 숲의 어두운 실루엣까지.

정말 지겹다.

나는 지금 『세인츠 셀베이션』이라는 게임 속에 빙의해서 몇 년째 같은 시간을 반복하고 있다. 정확한 횟수는 세다가 포기했다. 너무 많아서.

처음에는 신기했다. 좋아하던 게임 속 세상에 들어온 것이니까. 모든 스토리를 알고 있으니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세인츠 셀베이션』은 다크 판타지 핵앤슬래시 게임으로, 절망적인 세계관 속에서 여러 영웅이 각자의 비극을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다. 나는 모든 배드엔딩을 경험했고, 마침내 유일한 해피엔딩을 찾아낸 완벽한 유저였다.

똑똑.

"리나야, 일어났니?"

에이라다. 이 모든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 지금은 평범한 동네 소녀지만, 실제로는 세계를 구원할 성녀의 후예다. 본인은 모르고 있지만.

"응, 금방 나갈게!"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며 대답했다. 오늘도 또 반복이 시작됐다.

이번엔 좀 다를까? 기대 반, 체념 반이다. 사실 지금은 반쯤 포기한 상태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패턴은 이미 완벽하게 파악했다. 에이라의 친구로 살다가 한 달 남짓 지나면, 그녀의 죽음이 찾아온다. 혹은 알 수 없는 실종과 함께.

처음 몇 번은 필사적으로 막아봤다. 에이라를 위험한 곳에 가지 못하게 하고, 수상한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두고, 심지어 마을을 아예 떠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항상 같았다.

에이라는 죽었고, 나는 다시 그 쨍그랑 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

수없이 반복하며 발견한 것은 단 하나. 회귀의 패턴이 주인공 '에이라'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었다. 그녀가 죽으면 시간이 되돌아가고, 그녀가 사라지면 모든 것이 초기화된다.

결국 에이라를 중심으로 서사를 풀어나가야만 미래로 넘어갈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던가.

처음에는 게임 지식을 활용해서 뭔가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에이라가 성녀의 후예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녀를 올바르게 각성시킬 방법도 알고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웬걸.

내가 뭘 해도 상황은 더 꼬이기만 했다. 에이라에게 정체를 알려주려다 오히려 혼란에 빠뜨렸고, 위험을 미리 경고해도 믿어 주지 않았으며, 강제로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려 하면 더 반발만 샀다.

결국 현재의 반쯤 포기한 상황이다.

문을 열고 나가자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에이라가 환하게 웃어 보였다. 볕에 바랜 갈색 머리카락이 햇볕에 반짝이고, 커다란 녹색 눈동자에는 항상 호기심이 가득했다.

"에이라, 너 또 성 밖 구경?"

"응! 마을에선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해맑은 목소리였다.

그 말이 항상 가슴을 아프게 한다. 사실상 고아에 외지인인 에이라는 마을에서 완전히 겉도는 인물이다. 아무도 그녀의 출생을 모르고, 아무도 그녀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나를 제외하고는.

마을 사람들은 에이라를 '이상한 아이'라고 부른다. 가끔 혼잣말하는 것처럼 보이고, 때로는 아무것도 없는 곳을 뚫어져라 바라보기도 하며, 어쩐지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그 이유를 안다.

에이라는 성녀의 후예다. 그녀 안에는 아직 각성하지 못한 거대한 힘이 잠들어 있고, 그 힘이 때때로 새어 나와 주변 사람들이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모르는 마을 사람들에게 에이라는 그저 '기묘한 아이'일 뿐이었다.

그래서 에이라는 항상 성벽 너머로 펼쳐진 넓은 세상을 동경했다. 이 작은 마을이 아닌, 어딘가 다른 곳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 곳을.

"오늘은 어디로 갈 거야?"

"음... 오늘은 숲 근처까지 가 보려고!"

금지된 숲.

그 말에 움찔했다. 금지된 숲은 키르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그곳에 함부로 다가갔다가는...

"안 돼, 에이라. 그쪽은 위험해."

"왜? 리나는 항상 그곳이 위험하다고 하는데, 정확히 뭐가 위험한 거야?"

에이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수백 번도 넘게 나눈 대화였지만, 그녀는 항상 같은 질문을 했다. 그리고 나는 항상 같은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위험해. 마을 사람들도 다 그러잖아."

원작에서 주요 인물들은 이미 수백 년 전 인물이라 서사가 완성된 상태다. 카일리스, 아르셀리아, 에스피라, 키르... 그들의 이야기는 이미 끝났고, 그들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다. 내가 어찌할 수도 없다.

결국 시작점인 에이라를 통해 무언가를 해야 하는 상황.

오늘도 나는 에이라의 소꿉친구라는 명분으로 그녀를 관찰한다. 그녀의 작은 변화도 놓치지 않으려고, 혹시라도 뭔가 다른 일이 일어날까 봐 바짝 긴장한 채로.

하지만 결과는 항상 같을 것이다.

에이라가 내 손을 잡으며 밖으로 끌고 나간다. 그녀의 손은 따뜻했고, 미소는 여전히 해맑았다.

"그런데 리나, 너는 왜 항상 나랑만 놀아? 다른 친구들도 사귀면 좋을 텐데."

"에이라가 내 친구인걸.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정말?"

"정말이야."

그 말은 진심이었다.

비록 처음에는 게임 지식 때문에 다가갔지만, 이제는 정말로 이 아이가 소중하다. 수많은 반복을 함께 겪으면서 에이라의 모든 면을 알게 되었고, 그럴수록 더욱 아끼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든다. 나는 에이라의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에이라는 나의 진실을 전혀 모른다. 이게 과연 진정한 우정이라 할 수 있을까?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야 할까. 언제까지 같은 하루를 반복해야 할까. 그리고... 정말로 이 굴레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기는 한 걸까.

뷰컴즈 주식회사

대표 : 김학성 | 전화 : 1811-8389 | 이메일 : help@gling.co.kr

    고객센터이용 약관개인정보처리방침청소년보호정책유료 콘텐츠 제공 약관

사업자 등록번호 : 492-88-01088 | 통신판매업신고번호 : 2022-서울영등포-1768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당산로 171, 13층 1301호

Copyright © viewcommz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