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멸망한 세계를 도로 구하기 위해 팬픽 속으로 빙의한 흑마법사 주인공. 악역에 빙의해 아무것도 못하고 사형당하는 줄 알았는데... ... 살았다? 잘만 하면 이 세계, 구할 수 있겠는데?
세상엔 선과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균형을 맞추려는 세계와, 그 속에서 자신의 몫을 늘리고 보존하려는 욕심쟁이들이 있을 뿐이다.
자신들만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혹은 자신에게 피해가 올까봐. 그들은 위험분자를 잘라낸다.
‘모두를 위해 소수를 희생한다.’
이것은, 그 말이 당연시된 세상에서 벌어지는, ‘소수'의 이야기다. 혹은, 소설에 빙의한 인물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이야기.
“디벨리온 프로즈니아- 사형!”
판사의 큰 목소리가 재판장에 울려퍼졌다. 그의 앞에는 검은 머리 소년이 서있었다. 화려한 외형에 어울리지 않는, 수수한 옷차림을 하고.
예상했던 일이었다. 내가 빙의한 이 인물은 악역이었고. 악역에 걸맞은 일을 벌이다 이 재판장에서 죽음을 맞이했으니까.
한마디로, 죽을 운명이었다는 것이다.
소설의 내용과 미래를 전부 알고있음에도, 나는 그 운명을 바꾸지 못 했다. 그 이유는 내 전생에 있다.
나는 이 몸에 들어오기 전, 가난한 평민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무능한 흑마법사였다. 마법진을 팔아 돈을 벌고, 시체들을 조종하는. 그런 마법사.
귀족들이 배우는 것들을 알고있을리 만무했다. 우아한 몸짓을 하는 대신 흑마법으로 전투를 했고, 고귀한 이들에게 편지를 쓰는 대신 마법진을 그렸다.
‘귀족들이 겨우 발걸음으로 혼난다고는 생각 못 했는데.’
어쩐지 보이는 모든 귀족들마다 발걸음이 고고하고 각이 잡혀있더라니. 그래, 디벨리온을 연기하는 건 이미 옛적에 실패했다.
게다가 세부적인 것들이 적혀있지 않는 책에 빙의한 것 때문인지, 기억상실을 잃어버린 미치광이 도련님이라는 명예로운 타이틀까지 얻었다.
이 사실을 알게된 아버지, 그러니까 프로즈니아 공작은 그 즉시, 외부와의 교류를 차단시켜버렸다.
아무것도 없는 방에 가두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밥을 굶겼다. 왜 그런짓을 했냐는 말에 솔직하게 말해보기도 했지만… 신전에 들르는 날이 더 많아졌을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죄를 받는 날 꺼내졌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듣지도 못 했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알고 있다. 이 모든 건, 시작부터 잘못되었다는 것.
난 이 몸으로 태어난 날부터, 그 어떤 마법도 쓰지 못 했고, 무능해졌다. 바뀌지 않는다는 무기력함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밖에 하지 못 했다.
마침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까먹었을 때 즈음이었다. 그저… 미치지 않음에 감사해야할까.
헛웃음이 났다. 이렇게 허무하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잃어버리다니. 너무나 억울했다.
‘이번엔… 살고싶었는데.’
두 남자가 내 팔을 잡고 끌었다. 내 몸은 힘없이 그들을 따라 처형장으로 향했다.
‘내가 뭘 하려고 했더라. 분명… 무언가가 있었는데.’
절벽. 그 아래의 땅은 보이지 않았다. 검은색의 형체가 요동치고, 일렁이는 것만 보일 뿐이었다.
가까이 가는 것 만으로 빛과 생명을 삼켜버린다는, 죽음의 강이자 처형장. 아, 이제 하나를 더 추가해야하지.
‘내 무덤.’
시체 혹은 뼈조차 남지 않는다. 몸에 남은 모든 마나 역시 어둠에 삼켜져버려, 다른 이들의 마나처럼 세상에 남겨지지 못 한다. 떨어지며 지르는 비명 또한 삼켜지고 부서질 뿐.
떨어진 이가 느끼는 것은 공포와 고통. 그 뿐이었다.
‘두려워. 그치만… 사는 것이, 더 두려워.’
팔다리가 묶인 채, 나는 절벽의 가장자리에 섰다. 익숙한 힘이 느껴졌다.
검은 마나. 전생엔 너무나 익숙했던 힘이 공격적으로 나를 향해 튀고 있다. 마치 나를 잡아먹으려는 듯이.
그리고 죽음의 끝에서, 나는 기억해냈다. 이 소설에 들어온 뒤, 아니. 들어오기 전, 나의 목표를.
나의 목표이자, 이 세계에 들어온 이유. 그것은 이 세계의 주인공이 되거나, 아름다운 여주인공과 사랑을 하는- 흔한 판타지가 아니었다.
나는 그저… 이 세계를 구하고 싶었다.
이 세계. 그러니까 내가 빙의한 이 소설은 평범한 소설책이 아니었다. 내 전생의 실존 인물들로 쓴, 일종의 팬픽소설이었으니까.
실제 세계를 배경으로 쓴 팬픽 소설. 그 소설로 빙의하기 위해 흑마법을 쓴 것은, 일종의 도박이었다.
그 누구도 실행해본 적 없는, 실행할 생각을 하지 못 한. 그런 도박.
‘원래의 세계와 똑 닮은 세계를 다시 만드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한마디로 작은 꼼수였다. 생명을 매개로, 모든 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이 세계를. 한 번 더 겪기 위한 나의 꼼수.
그러기에 이 소설 속 세계는 내가 있는 마치 다른 세계선의 또다른 세계인 것처럼 똑같았다. 멸망하고 있다는 그 사실까지도.
내가 흑마법사임에도 인정받을 수 있고, 마법진으로 근근히 먹고살 수 있었던 이유. 숨어사는 것보다 전투를 하는 것이 익숙했던 이유.
그것은, 나의 세계는 이미 멸망을 겪고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마지막 몇년은 기억나지 않지만- 저 목표들만은 기억이 난다. 이것은 내게 있어서 또다른 기회였다. 멸망을 막고, 죽은 이들을 다시 만날 기회.
멍청한 로맨스의 주인공들의 행동이 아니었다면, 이 악역 가문의 등신같은 짓거리만 아니었다면.
내 목소리가 들렸다면, 내 나이가 조금만 더 많았다면, 하다못해 이 몸의 주인이 흑마법을 쓸 수 있었다면.
변했을 것이다. 멸망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나의 세계는 붕괴했다. 사람들은 죽어나갔고, 그 중에는 날 돌봐주었던 스승님이 있었다.
- 다시는… 반복하지 않아.
그렇게 주먹을 쥔것이, 반년 전.
나는 모든 계략을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결과가, 사형선고.
‘... 나는 왜, 또…’
도망을 갈걸 그랬나? 다음에는… 이번 죽음 이후에 새로운 삶을 얻게된다면…
그 땐 일단 도망쳐서 내가 아는 사람들을 찾아볼까? 찾아서… 멸망을 막자 설득해야지. 근데… 어떻게 설득하지? 그 사람들은 이 세계에 있을까? 그리고…
다음이 있다고, 어떻게 확신하지? 멸망이 도래하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증명할거야?
난…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아.
“꾸물거리지 마!”
“윽…!”
누군가 나의 팔을 세게 잡아끌었다. 나를 절벽 아래로 내던지기 위해 온 기사가 분명했다.
‘안 돼…’
끝이다.
퍽. 아득하고, 아찔한 감각. 몸이 세게 밀쳐졌다는 걸, 뒤늦게 인지했다.
비명을 채 지르기도 전에, 솟구친 마나에 휩쓸렸다. 그리고 그대로, 절벽 밑바닥으로 끌려갔다.
마나가 폐를 가득 채웠다. 숨을 쉬고 싶지 않아도 끊임없이 차올랐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빨라지는 호흡과 심박수.
이번 생에는 구하고 싶었는데. 마지막으로, 붉은 달로 손을 뻗었다. 뻗은 손 역시, 마나에게 금방 삼켜질 것을 알면서도. 무력감이 온 몸을 가득 채운다.
그것이 악역 디벨리온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 * *
“허억…!”
눈을 떴을 때, 처음으로 느낀 건. 더 이상 아프지 않는 가슴과 차분한 호흡이었다.
‘숨이… 쉬어져.’
나는 몸을 일으켜 내 손과 다리를 바라보았다. 잡아먹힌 흔적 하나 없이 멀쩡했다.
그래. 설명하자면… 처음 디벨리온이 되었을 때와 비슷한 감각이었다.고통과 공포의 흔적은 전혀 없는, 그저 차분하고 편안한 몸.
‘처음으로 되돌아간건가…? 아니면 새로운 몸으로?’
2025.11.16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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