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것도 놓을 수 없는 자는, 아무것도 쥘 자격이 없다.' 패밀리의 손에 가족을 잃은 마리아는 패밀리 최고의 킬러, 청부인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새로운 질서와 함께.
비오렌치아 남부, 카타니아
성 에밀리오 성당
성 에밀리오 성당, 비오렌치아 남부 지방에서는 종교적으로 높은 위상을 가진 성당이었다. 카타니아의 시민들에게 개방적이고 주변의 정원도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었기에 늘 신자들이나 가볍게 산책을 즐기러 오는 사람들이 가득했으나, 오늘만큼은 엄숙한 분위기에서 모두가 장례미사를 드리고 있었고, 마리아는 먼발치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는 이제 우리의 관습에 따라 이 영혼을 하늘에 보내려 합니다….”
사제의 고별사는 거리가 좀 있었던 지라 작게 들렸다.
“첼리니아, 파트리지오를 죽인 게 누구였다고?”
“카를로 루치아노, 루치아노 패밀리의 보스야. 누군지는 알겠지, 파트리지오를 죽이고 농장과 와이너리를 차지했어.”
마리아가 관 속에 누워있을 친구를 떠올리고는 묻자, 옆에 있던 여인이 답했다.
첼리니아 레지아네, 남부 도시 카타니아를 장악하고 있는 마피아 조직인 레지아네 패밀리의 법률고문이었다. 그녀의 표정은 마리아와는 달리 그 속에서 슬픔과 분노를 겨우 억누르고 있다는 사실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루치아노 패밀리라, 대담해졌네.”
“새로운 보스를 향한 도전이지. 가능성은 적지만, 파트리지오의 농장과 와인 조합만 완전히 장악하면…”
“카타니아 경제의 한 축을 협상 카드로 쓸 수 있지.”
“물론, 그럴 일 없지만.”
사제는 여전히 고별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기억할 것입니다. 그가 베푼 선행과 영향력이….”
마리아는 난간에 기댄 채로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떠난 친구를 떠올렸다.
‘나도 돈은 좋아해, 마리아. 하지만, 난 그것보다 내 와인이 모두가 소중한 순간에 가장 먼저 찾는 그런 정겨운 와인이 되었으면 좋겠어.’
첼리니아는 눈시울을 붉힌 채 말했다.
“이제 패밀리는 패밀리의 일을 할 거야.”
“나한테 맡길 생각이지?”
“그래, 레지아네가 청부인 밤볼라(인형)에게 맡기는 마지막 청부야. 복수해야지?”
복수, 너무나 익숙한 것. 마리아는 기대고 있던 난간에서 물러나며 답했다.
“그럼, 해야지.”
…………………………
마리아는 풀밭 한가운데에서 흰 손수건으로 단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면서 말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몇 명의 사내들의 몸을 비집었다 나온 선혈이 묻은 칼을 말이다.
“못 본 사이에 꽤 대담해졌어, 카를로. 귀국 환영을 해줄 거면 직접 왔어야지?”
그러자 마리아와 마주하고 있는 사내가 답했다.
“밤볼라….”
카를로 루치아노, 젊은 그가 카타니아 안에서도 어엿한 마피아 조직인 루치아노 패밀리의 보스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건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무엇보다 목숨을 건 싸움에 있어서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 덕분이었다.
마리아는 부지런히 움직이는 눈동자를 보고는 말했다.
“미리 말해두겠는데, 움직이지 마.”
아무런 감정도 그 표정에서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과묵하게 칼을 닦고 있을 뿐인 마리아의 소름 끼칠 정도의 무표정한 모습은 금발과 푸른 눈이라는 외모와 함께 그녀가 인형이라는 의미의 밤볼라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이유를 간단히 설명해 주고 있었다.
“내 위치는 어떻게 알아냈지?”
“위치추적기, 네 친구한테 받았어. 아니, 받아냈다고 해둘게.”
그녀는 카를로의 물음에 답했다.
카를로는 그가 가장 믿고 아끼는 부하에겐 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항상 자신의 위치를 바로 파악할 수 있게 손을 써두었다.
“루카를 어떻게 한 거냐?”
카를로는 증오심이 겉으로 드러나서 살짝 일그러진 표정으로 물었고, 그의 손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나이프로 다가가려 하자, 마리아가 여전히 부동의 자세로 말했다.
“그만, 그거 빼면 죽을 거야.
루치아노 패밀리의 보스인 그조차도 눈앞의 여인에게 저항할 수 없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원초적인 본능, 집단의 힘이 아닌 순수한 개인의 무력에서 느끼는 압도감이 카를로 본인이 스스로를 약자로 자처하게 만들고 있었다.
“네 부하들은 내가 살살 다뤄서 안 죽을 거야.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일에 끼지만 않으면 말이야. 근데, 선을 조금이라도 넘으면 전부 너와 함께 묻힐 거야.”
그러자 카를로가 답했다.
“그거 고맙군.”
“뭐, 하는 거 봐서 너도 살 수 있어.”
“날 처형하겠다고 청부인을 보낼 줄은 예상했는데, 널 이렇게 빨리 보낼 줄이야.”
마리아와 같은 레지아네 패밀리의 청부인들은 패밀리 내에서도 손꼽히는 강자들로서 패밀리의 명령에 따라 레지아네를 배신하며 동료를 해하거나 죽인 이들, 혹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 죄 없는 사람을 해하거나 죽인 다른 군소 마피아 조직원들을 추적하여 그에 맞는 대가를 치르게 하거나 처단하고, 더 나아가 카타니아에서 레지아네가 정한 규율을 어긴 조직이 생긴다면 지워내는 것이 주된 일이었다.
“파트리지오를 죽이고 농장과 조합을 차지한 건 실수였어. 우리 보스께서 생전에 그를 아끼셨다는 걸 알고 있었을 텐데?”
그러자 그가 답했다.
“목적을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건, 나뿐만이 아니지. 너희가 카타니아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날 죽여 본보기로 삼겠다는 것과 뭐가 다르겠어?”
뻔뻔한 태도로 나올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마리아에게 그가 한마디 덧붙였다.
“너희 살바토레 보스가 죽은 지금, 레지아네가 얼마나 갈 것 같지?”
살바토레 레지아네. 마리아가 몸담은 레지아네 패밀리를 세운 보스이자, 레지아네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로 카타니아 내에서는 레지아네는 곧 살바토레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었다. 지닌 세력과 무력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엄연히 살바토레보단 약했던 카를로가 이토록 대담하게 규율을 어길 수 있었던 것은 구심점이었던 살바토레 보스가 사라짐으로 인해 레지아네가 쉽게 흔들릴 줄 알았기 때문이다.
“착각이 심한 걸?”
수완도 좋고 인망도 두터운 그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바로 큰 결정을 앞두고 자극적인 결과에 눈이 멀어버려 판단력이 흐려진다는 것. 물론, 사소한 것 하나에도 판단력이 흐려진다면 그 자리까지 오지 못했겠지만, 농장과 조합이라는 건 그의 눈을 가릴 만큼 중요한 패였다.
“레지아네는 떠난 분께 의존하지 않아. 이제 레지아네는 새로운 보스가 이끌어.”
마리아는 그에게 다가가며 덧붙였다.
“그리고 새로운 보스께서 널 처단하라 하셨어. 하지만, 네게도 고해성사할 기회는 줄 거야.”
고해성사, 레지아네가 처형 대상인 자에게 항상 마지막으로 참회할 기회를 주는 것으로, 레지아네의 규율 아래에서 활동하는 군소 패밀리들에게는 잘 알려진 규칙이었다. 규율을 어긴 처형 대상이 고해성사로 자신이 행한 죄를 전부 고한 후에 자신이 이룬 전부와 한쪽 눈을 두고 떠나는 것이었다.
2025.12.16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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