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표지
고귀한 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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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한지
142화무료 5화

자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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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들어온 황후의 몸에 적응하기 바빴다. 겨우 여유가 생기자마자 이 세계의 문제점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보호받지 못하는 황녀, 썩어버린 기사단, 배척받는 이종족…. 눈 감으려면 눈감을 수 있지만 인간적으로 이건 아니잖아! 고민하는데 확실한 중립인 후작이 날 도와준다. 대체 무엇을 숨기고 있는 걸까? 기사단 내부 따돌림과 폭행으로 죽은 기사의 일기를 건네받고 후작에게 말했다. “똑같이 때리고, 똑같이 해주었으면 하오.”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매일 찾아와 도와주는 후작이 말한다. “하고 싶으시면 하시면 됩니다.” 뭐든 마음대로 하라는 조력을 받으며 하나씩 세계를 바꿔나가는 황후의 이야기.

#로맨스판타지#복수#친구>연인#다정남#계략남#오해물#권선징악#소유욕/독점욕/질투#직진남#존댓말남#능력녀#사이다녀#동정녀#외유내강#힐링물

1화





인터넷으로 옷을 사면 가끔 어울리지 않는 옷이 배송되는 경우가 있다.


분명 맞을 것 같아서 주문했는데 받은 옷은 다른 옷이다.


아주 무언가 미묘하게 다르다. 그러면 보통은 환불을 하거나 교환을 하게 된다.


만약 환불이나 교환을 할 수 없다면? 그럼 꼼짝없이 입어야 한다.


지금 내 상황이 그러하다.


가슴부터 허리까지 조여지는 코르셋이나, 섬세하게 만들어진 주름과 레이스, 보석들 모두 너무 낯설다.


곱게 틀어 올린 머리나, 화려한 귀걸이, 목걸이, 반지와 머리에 올린 왕관 또한 적응하기 어렵다.


벌써,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내 마지막 기억은 회식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중이었다.


몇 걸음만 가면 분명히 우리 집이었던 것 같은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낯선 천장이었다.


예전에 엄마가 중세의 그림을 모아 놓은 책을 산 적이 있다.


굉장히 고풍스럽고 재질 좋고 묵직한 비싼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책을 몇 번 훑어보긴 했는데 지금 보이는 천장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네모모양의 선이 균등하게 그어져 있고, 그 안에 사람의 그림이 있다.


천사도 있고 기사도 있고 왕도 있고 등등 뭔가 일화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언제부터 내 방 천장이 이랬나?


분명 그냥 평범한 아이보리 빛 벽지였는데…….


잠시 숙취 때문에 헛것이 보인다고 생각하고 몇 번이나 눈을 깜빡였다.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다시 눈을 감고 잠에서 깨어나면 내 방의 천장이지 않을까?


다시 눈을 감아보려다가 문득 내가 덮고 있는 이불마저 이상한 느낌이었다.


침대 매트리스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내 침대는 사용한 지 오래되긴 했지만 이런 느낌은 아니다.


오래 누워있으면 허리가 아파서 일어나게 만들었던 침대가 왜 이렇게 부드러울까?


내가 덮은 이불은 오래돼서 가볍고 재질도 많이 낡았는데 왜 내 손에 잡힌 이불은 부드럽고 무게감이 있을까?


숙취 때문인가? 다시 눈을 깜빡이다가 생각하기를 거부하고 눈을 감았다. 자는 게 좋다.


하지만 나는 다시 눈을 뜨고 말았다.


숙취 때문이 아니다.


언뜻 이곳이 내 방이 아니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내 방은 작고 물건도 빼곡하다.


살림이 많아 수납공간도 부족했는데 이 방은 내 방보다 훨씬 넓다.


그냥 넓은 게 아니라 내 방 5개를 붙여 놓은 정도로 넓다.


침대에 앉아 방을 둘러보았다. 엄마가 샀던 책에서 보던 의자나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아니, 좀 더 전체적으로 차분한 기품이 느껴지는 모데라토 톤의 블루와 포틀랜드 블루가 적절히 꾸며진 방이었다.


벽난로에 그림과 도자기나… 내가 언제 박물관에 왔나?


취해서 박물관에 와서 잠을 잤나? 손을 펼쳐보니 하얀 손이 보였다.


가늘고 고운, 일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손이다. 네일까지 되어 있어 손을 쓰기 어려울 정도다.


입고 있는 옷도 부드러운 재질로 된 긴 잠옷인데, 소매에 있는 섬세한 레이스가 눈에 들어왔다.


이게 무슨 일이지?


얼굴을 만져봤다.


머리를 만져보니 머리는 분명 내 머리였다.


근데 이렇게 부드러웠나? 이렇게 길었나?


만져지는 감촉도 그렇지만 길이가 달랐다.


붙임머리? 아니, 누가? 취객에게? 소름이 돋았다.


말도 안 돼. 거울? 거울이…….


다행히 멀지 않은 엔틱 화장대에서 거울을 찾을 수 있었다.


거울을 보자마자 놀라 비명을 지를 뻔했다.


거울 속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고 느끼는 순간 극심한 두통이 덮쳐왔다.


한꺼번에 많은 정보를 머릿속으로 욱여넣는 감각이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머리를 감싸고 이 고통이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


이곳이 어디고 내가 누구였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등 뇌세포에 이식되는 느낌이었다.


고통이 옅어지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안도의 긴 숨을 내쉬었다.


화장대 앞 의자에 앉아 거울을 다시 들여다봤다.


흑요석을 떠올리는 네추럴 블랙 색상의 머리카락, 금빛을 발하는 연한 베이지색 눈과 마주쳤다.


선이 곱고 청초한 미모의 여자와 시선을 마주했다.


손을 뻗어 거울을 만져봤다.


거울 속 여자도 손을 뻗어 거울을 만졌다.


“하…….”


나직이 짧은 숨을 뱉었다. 이건 내 얼굴이 아니다.


이게 일주일 전이었다.


분명히 나는 33살, 대한민국의 평범한 직장인인데. 자다가 일어나니 황후라고 한다.


시디카 드 아페르나 그레이윈.


제국의 가장 고귀한 여성.


황후였다. 한 달 벌어서 한 달을 먹고 사는 직장인인데 갑자기 황후라고 하니 얼떨떨했다.


그나마 조금 위안이 되는 건 시디카의 나이는 32살이었다.


굳이 위안을 찾자면 그랬다.


“폐하, 날이 쌀쌀합니다.”


시선을 돌리니 시녀장인 라렌이 모피를 둘러주었다. 그러고 보니 조금 쌀쌀한 것 같기도 했다.


모피가 둘러지고 나니 새삼 추웠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 몸이 완쾌되지 않으셨습니다.”


라렌의 걱정스러운 말에 산책을 그만하고 들어가는 것으로 정했다.


이곳은 제국, 그레이윈이다.


나는 이 기울어가는 제국의 황후였고, 2주 전 음독 사건으로 사경을 헤맸다.


그러다 내가 깨어났고, 사람들은 의사를 부르고, 신관을 부르고 난리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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