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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가 저주가 아닌 게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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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과제뼈
148화무료 5화

자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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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왕가 직속 기사단 ‘로열 바인’의 기사, 아리스티데 데시우스. 본명은 아리엘이며, 기사단에 들어오기 위해 남장을 했다는 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귀족 자제들로 이루어진 이 번드르르한 기사단 도련님들은 대부분 나보다 약했거든. 하지만 기사단이 마녀를 무찌르러 갔던 날. 나는 동료들에게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들키고 마는데, 녀석들의 반응은……. “아리스티데가 여자로 변했어! 마녀의 저주다!” 저주받은 거 아니거든, 이 멍청이들아! 하지만 원래 여자였다고 고백할 수도 없잖아? 제일 친한 친구는 저주가 안 풀리면 결혼하자고 헛소리. 기사단 입단과 남장 생활을 도와주던 친척 오라버니는 매일같이 한숨. 내 여자 모습을 목격한 상사 때문에 여장(?)하고 사교계에 데뷔하게 되질 않나. 멋대로 나를 라이벌이라 부르던 놈은 내가 안 보이니까 안절부절못한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나를 한결같이 대하는 리더도 짜증 나기는 마찬가지. “아리스티데. 넌 고향으로 돌아가 옛날처럼 곰이나 잡고 살지 그래?” 웃기시네, 나는 돌아가지 않을 거야. 동경하던 그 기사님을 닮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로맨스판타지#서양풍#남장여자#로코물#오해물#권선징악#능력남#능력녀#사이다녀#걸크러시#털털녀#쾌활발랄녀#성장물#츤데레남#판타지

1화








“마, 마녀가 나타났다!”


호기롭게 숲길을 앞서나가던 동료가 외쳤다. 보이던 태도와는 달리 살려달라는 듯 애타는 목소리다.


기사단의 리더, 앨비온이 짧은 한숨을 삼키고는 우리를 돌아보았다. 잿빛 머리카락 사이로 빛나는 그의 청회색 눈동자가 순식간에 우리를 붙잡아 이끈다. 우리는 기사이며, 이 숲에 마녀를 잡으러 왔음을 잊지 말라는 듯이.


“로열 바인 나이츠, 모두 전투태세.”


올려다볼 수밖에 없는 눈높이에서 냉정한 목소리가 울렸다. 앨비온의 지시에 우리는 각자의 검을 뽑았다.


어느새 숲은 안개로 가득 찼다. 동료들은 본능적으로 숨을 참았다. 오직 나만이 몸을 낮추며 짐승처럼 숲 냄새를 훑었다. 덜 썩은 낙엽, 억센 녹색 풀, 이끼에 점령당한 흙 냄새. 그리고 수인 특유의 짐승 비린내.


조금 떨어진 곳에 늑대인간으로 추정되는 실루엣들이 굼실댄다. 남자들도 혼자서 들어오지는 않을 깊은 숲속. 진한 약초 냄새를 풍기는 마녀가 우리 앞에 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여자다. 로브 후드를 넘기며 생긋 웃는 그 얼굴에 요사스러운 기운은 눈곱만큼도 없다.


“손님이 많기도 하네. 무슨 약을 사러 오셨을까?”


목소리 또한 시장 여자들과 다를 게 없다. 하지만 두 자릿수의 검날 앞에서도 긴장하지 않는다는 점이 위화감을 부풀린다.


앨비온이 한 발짝 내디뎠다. 차가운 시선이 마녀를 향한다.


“왕가의 검이자 방패, 로열 바인 나이츠. 전하의 명을 받들어 마녀의 수급을 취하러 왔다.”


“로열 바인? ……아하, 그 도련님 기사단! 들어본 적 있어. 소문대로 다들 잘 생겼네. 그리고-”


장난이라도 걸듯 가볍던 목소리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앨비온의 아밍 소드가 잠시의 틈도 주지 않고 마녀의 배를 찔러 들어간 것이다. 치명상을 입히기 위해 아밍 소드가 반 바퀴 돌아간다. 마녀의 몸이 잘게 떨린다. 목소리가 끊긴 입은 밭은 숨을 내뱉는다. 갈색 로브가 서서히 젖어간다. 그걸 바라보는 내 동료들이 긴장으로 숨을 흡 들이마셨다.


멍청이들아, 실전이 처음이라는 거 동네방네 광고할 셈이야? 이 타이밍에 협공해야 할 거 아냐!


나라도 돕기 위해 한 발짝 내딛는데, 앨비온이 갑자기 검을 뽑더니 뒤로 물러났다 왜 그래?


“다들 세 발짝 밖으로 거리 유지!”


“어? 앨비온, 무슨-”


앨비온이 허공을 향해 검을 거칠게 휘둘렀다. 나는 그제야 검을 적신 게 마녀의 피가 아니라 녹색 액체라는 걸 깨달았다. 마녀는 로브 안에서 깨진 유리병을 꺼냈다. 유리병에서 액체가 떨어질 때마다 땅에서는 녹색 연기가 피어오른다. 엎지른 물을 바라볼 때처럼 왠지 싸늘한 기분이 들었다. 마녀는 혀를 찼다.


“평민에게 지킬 매너는 없어, 도련님?”


“마녀에게 지킬 도리는 없다. 주민들에게 무슨 약을 팔아치운 거지?”


“지금 네가 깨트린 건 해열제야.”


“거짓말.”


앨비온은 마녀의 말을 일축했다.


임무 투입 전, 무술 교관은 우리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했다.


‘마녀들은 단순한 시골 약사 겸 마법사가 아닙니다. 그들은 질서를 좀먹음으로써 힘을 얻습니다. 질병을 퍼트려 약을 팔아치우고, 신전에 불을 지름으로써 백성들이 제 발로 신전을 떠나게 만드는 식이죠. 뭐라 변명해도 절대 속지 마십시오.’


지금도 마녀의 품 안에는 치료약과 질병의 매개체가 사이좋게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앨비온이 낙엽 위로 한 발짝 내디디며 검을 들었을 때. 마녀는 웃으며 말했다.


“너희 소문을 이야기하다가 끊겼잖아. 너희들……. 사실상 왕자님들의 장난감 병정이라며. 정말이야?”


정답! 박수라도 쳐 주고 싶네.


하지만 박수를 칠 시간도 없다. 나는 발끈해 마녀에게 달려들려던 동료를 밀치며 외쳤다.


“멍청아, 저따위 도발에 넘어가지 마!”


“뭐? 누가 멍청이야, 이 시골뜨기가!”


난 시골뜨기라는 정직한 명칭에 대꾸해주는 대신 아밍 소드를 뽑았고, 어느새 다가온 늑대인간의 어깨에 검을 꽂았다.


“키에에에에에!”


늑대인간의 근육이 검을 옭아맨다. 나는 한 발짝 물러났다. 놈은 검을 뽑아내려 하지만 검신을 더듬는 털투성이 손은 피에 젖어갈 뿐이다.


이때 목을 쳐야 하는데. 동료 놈은 내가 아까 넘어뜨린 자세 그대로 엉덩이만 들썩대고 있다. 빨리 일어나! 이러면 마녀 말마따나 장난감 병정이랑 다를 게 뭐야?


분개하는 사이, 마녀 쪽을 바라보던 동료가 얼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느, 늑대인간들이……. 몰려왔어…….”


마녀의 약이 늑대인간들을 부른 모양이었다. 놈들은 약 냄새를 찾아 늑대의 코를 킁킁거리다가, 마녀가 뻗는 손가락 끝을 쫓으며 인간의 다리로 일어났다. 마녀는 자식에게 심부름시키는 투로 말했다.


“쟤들 좀 쫓아줘.”


마녀의 명령을 이해한 듯, 그것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잇새에 이름 모를 짐승의 살점이 덜렁거린다.


나는 주저앉은 동료의 검을 빼앗아 늑대인간의 목을 날렸다. 등 뒤에서 동료가 울먹인다. 젠장, 집에 가서 울어!


몇몇 용감한 동료들이 늑대인간과 맞서고, 내가 네 번째 늑대인간의 목을 날려버렸을 때. 흩뿌려지는 핏방울 너머로 마녀가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다. 어우, 저게!


다행히도, 마녀를 주시하고 있던 사람은 한 명 더 있었다. 앨비온이 내 이름을 불렀다.


“아리스티데, 이쪽으로 와! 마녀를 추격한다!”


나는 검을 휘둘러 피를 털어낸 후 마녀 쪽으로 달렸다. 앨비온도 늑대인간을 상당히 베어 넘겼는지 피에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청회색 눈만 흉흉히 빛난다. 그는 귀찮다는 듯 제 머리카락을 거칠게 쓸어 넘겼다. 건틀릿 위로 수인들의 핏방울이 굴러 떨어진다. 나보다 고작 두 살 위인데 이 위압감은 뭘까. 난 이 녀석이 차가운 북쪽 대지의 전장에서 용병 노릇하다 왔대도 믿을 거다.


그런 앨비온이 나만 콕 집어 마녀 추격을 제안한 이유는 간단하다. 실전에 쓸 만한 실력자는 나뿐이니까.


우리는 왕가 직속 기사단 ‘로열 바인’. 귀족가의 사내만 입단 가능하며, 서류상의 기사단장은 국왕 폐하. 기사단장 대행인은 제 1, 2 왕자님들.


여기까지 들으면 번쩍번쩍한 위상 높은 기사단이지만 실체는 개판이다. 귀족 가문은 최소한 아들 한 명을 로열 바인에 3년간 복무시킬 의무를 진다. 즉, 로열 바인은 왕가가 귀족을 견제하기 위한 인질과도 같은 수단이라는 거다. 그렇다고 귀족 자제에게 험한 일을 시킬 수도 없잖아? 우리는 평소에는 훈련이나 받다가 가끔 왕가 행사에 동원되어 폼 잡는 게 일의 전부다.


그런데 며칠 전. 제2 왕자가 우리에게 직접 명령했다.


‘수도 인근, 한 마녀가 늑대인간을 부려 주민을 위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너희는 그 마을에서 갈고 닦은 검 실력을 보임으로써 기사의 도리가 무엇인지를 만인에게 알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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