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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지 마, 흔들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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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미경
80화무료 3화

자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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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하지 않은 사고로 자금난에 빠진 웨딩 컨설팅 회사 ‘Military March’의 대표 ‘백호아’ 빠른 상황판단, 석유 물류 거래에 필요한 과감한 투자와 관리로 ’보퓨엘의 세익스피어’로 불리는 남자 ‘서경호’ “내 결혼을 성공시켜요. 그럼 당신이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겠습니다.” 약혼녀를 도망가게 만드는 바람에 자신이 몇 달 동안 뼈 빠지게 준비한 이 결혼식은 물론, 줄줄이 다른 계약까지 취소되게 만든 장본인 ‘서경호’의 제안에 호아는 철면피 같은 저 낯짝을 확 긁어버리고 싶은 걸 겨우 참았다. “내가 필요한 건 결혼식장에서 내 옆에 있어 줄 여자, 오직 그뿐입니다.” 왜 하필 서로였을까?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수많은 여자 중에 유일하게 서경호의 슬픔을 본 여자가. 그리고 호아의 환한 미소 속에 가려진 웃지 않는 눈을 본 남자가. *** “나랑 무슨 대화가 통해요? 당신이 하는 말 제대로 이해 못 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예요.” “상관없어요. 우리 대화는 말로 할 게 아니니까.” 한 발짝 성큼 다가온 남자의 눈빛이 좀처럼 짐작하기 힘든 깊은 감정을 담고 호아를 마주했다. “경고하는데. 백호아.” 조금은 거칠고 뜨거운 남자의 호흡이 호아의 입술 바로 앞에 멈췄다. 그녀의 분홍빛 입술이 바르르 떨리자 그것을 바라보는 경호의 검은 눈동자가 호아를 담은 채 점점 더 어두워졌다. “나 흔들지 마.” 서로의 눈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두 남녀의 거리가 조금 더 좁혀졌다. “흔들리니까.”

#로맨스#현대#까칠남#재벌남#뇌섹남#능력남#집착남#냉정남#무심남#철벽녀#동정녀#털털녀

1화. 집중해요.








그는 좀 심하다 싶을 만큼 말이 없다.


그래서일까. 인간이 가진 가장 낮은 음역이라는 베이스 톤의 저음이 흘러나올 때면 여자는 단 한 마디도 놓치지 않기 위해 그 목소리에 몰입해야 했다.


“집중해요.”


결코, 이 네 글자 어디에도 야하다거나 음란하다거나 색스럽다거나 할 구석은 없었다.


그러나 그 말을 하는 남자의 혀가 조금 전까지 여자의 입술 안에 꽤 오래 그리고 거칠게 머물렀다면 그 의미는 아주 많이 달라진다.


여자가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키자 그녀의 가는 목이 부드럽게 굴곡을 그리며 울렁거렸다.


대수롭지 않은 이 행동이 왜, 무슨 이유로 남자를 자극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여자의 목에 얼굴을 묻고 있던 남자의 몸짓이 급격하게 빨라진 걸 보면 뭔가 이유는 있는 게 분명했다.


과연 이게 옳은 일일까. 여자는 잠시 고민했다. 그래도 자신은 명색이 대표고 이 남자는 고객님인데. 갑자기 닥쳐온 현실 자각 타임에 여자의 몸이 쭈뼛거렸던 것도 같다. 여자의 목에 쉽게 지워지지 않을 자국을 새기고 있던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녀를 마주했다.


예민한 사람이니 분명 지금 여자의 머릿속을 헤집고 있는 복잡한 생각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러나 남자는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이 생각이 많아 보이는 그녀의 얼굴을 빤히 응시하기만 했다. 더 다가오지도 멀어지지도 않은 채, 남자의 시선은 여자에게 붙들려 있었다.


차갑던 눈빛은 간데없이 헤집어진 욕망으로 인하여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무척이나 모순되는 상황이었지만 그동안의 경험으로 여자는 이 남자가 그녀에게 시간을 주고 있다는 걸 알았다. 지금이라도 그녀가 자신을 밀어내고 이 공간을 빠져나갈 수 있는 시간.


자신은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언제든 원하면 제 품에서 벗어나라는 지독히도 쿨한 여유로움. 일부러든 아니든 남자는 여자를 자극하는 법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유치한 승부욕이 들끓었다.


이 평온한 얼굴이 본능을 이기지 못해 일그러지고 조금이라도 조급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그래서 사는 내내 자신이 그를 흔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조금은 우쭐해할 수 있기를. 그 대단치 않은 감정 하나를 가지기 위해 그녀는 아낌없이 자신을 내던질 생각이었다.


만약 성공한다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에게는 대단하게 가치 있는 일이 될 테니까.


여자는 남자의 어깨 위에 올라가 있던 손끝을 세워 아주 천천히 그의 목덜미를 따라 쓸어 올렸다. 마침내 그녀가 남자의 목을 모두 감싼 순간 긴 목에 드러난 핏대가 조금은 꿈틀거린 듯도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은 저 지긋지긋하게 침착한 표정을 깨부수고 말 테다. 남자의 목덜미를 끌어안은 여자는 제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노력해봐요. 내가 당신 말고는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게.”


웃은 건가? 남자의 입매가 살짝 비틀려 보인 것 같다는 의문을 가진 순간, 그의 얼굴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여자는 이내 자신의 답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가슴에 닿는 뜨거운 사내의 입술과 온몸을 훑어내리는 거친 손길. 그리고 기대했던 것만큼 눈을 만족시킨 사내의 나신. 그 무엇 하나도 여자를 한눈팔게 할 만한 것은 없었다.


남자가 주는 거칠고 치명적인 쾌락에 숨이 넘어갈 만큼 정신없이 헐떡이면서도 여자는 그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제발 그 무표정한 얼굴이 조금이라도 비틀려 있기를. 하다못해 이마 아니 콧등이라도 치밀어 오르는 욕망을 참지 못하고 주름져 있기를.


“아흑!”


예고도 없이 찾아온 고통에 그녀가 남자의 어깨를 꽉 끌어안았다. 여자는 희열과 함께 의구심으로 떨리고 있는 남자의 몸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 움직임을 멈춘 남자의 입에서 거칠어진 호흡으로 인해 더 낮아진 저음이 그녀의 귓속으로 스며들었다.


“당신…… 설마.”


가까이서 듣는 그의 떨리는 저음은 장중한 첼로의 멜로디처럼 그녀의 깊은 곳을 울렸다. 이런 느낌일 거라고 예상했지만 실제로 들으니 더 짜릿했다. 만족감에 젖은 여자의 몸이 남자를 자극하기라도 한 건지 그의 허리가 움찔하며 그녀 안에서 요동쳤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보기 드물게 당황한 남자가 자신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있는 여자를 떨어트리려 애썼다. 여자는 더욱더 그의 어깨에 매달리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집중해요.”




***




스물여섯에 창업을 선언한 이후 백호아의 사전에 여유란 말은 존재하지 못했다. 당장이라도 이 일을 때려치우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그럴 때마다 호아는 자신의 책상 앞에 놓인 원목의 명패를 바라보며 의지를 다졌다.


<Military march 대표 백호아>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일명 스.드.메가 전부이던 웨딩 컨설팅 업계에 호아가 던진 ‘신랑분은 뭘 원하시나요?’라는 질문은 제법 신선한 반향을 일으켰다.


과거와 달리 결혼이라는 이벤트에 남성의 참여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결혼식은 당연히 두 사람이 함께 준비해야 한다는 호아의 개인적인 의지가 담긴 ‘Military march’는 예상보다 빠르게 시장에 자리를 잡아갔다.


물론 그 일에는 지금 호아 앞에 서서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있는 저 중년 여인의 실력이 주요했다는 걸 호아는 절대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Military march’ 의 실질적 지배자 이진영 실장은 ‘내 말이 맞지?’라는 질문을 표정에 담아 호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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